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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Oct 06. 2015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독일아내와 한국남편의 한국 생활기

독립을 하는 시기는 사회나 개인에 따라 조금 이르거나 조금 늦을 수는 있지만, 대개는 결혼을 기점으로 구분이 된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당사자에겐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과정이고 부모님에게는 품안의 자식이 둥지를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도와주는 기간이다. 요즘은 자식이 둥지를 떠나 가는 게 아니고 부모가 관리하고 돌보아주어야 할 둥지가 자식 수 만큼 더 늘어나는 상황으로 지금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부모님이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다 보니 부모도 보살핌이라는 부모의 일차적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식들도 완전한 독립을 미루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면서 그 만큼 사회가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듯이 나의 부모님도 아들 내외가 결혼 준비에 있어서 부모님과 함께 상의를 하며 결정을 할 것으로 생각하셨다. 아들, 며느리가 입을 예복도 같이 가서 정하고, 결혼 날짜와 예식장도 미리 상의해서 정할 것으로 생각하셨다. 하지만 예비 며느리는 결혼 만큼은 결혼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준비할 것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결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배재가 되어 버렸다. 왠 걸 모두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 대견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 독립을  하는구나 하고 느낄 새도 없이 한 순간에 멀어져버리니 한편으로는 많이 서운하셨던 것이 사실이긴 하다.


내게 결혼 준비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달프고 힘든 과정이었다. 토요일에 출근 안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용인하는 일반적인 결혼식의 모습과 그녀가 원하는 결혼식의 모습을 조율해가며 하나씩 진행해야 했다. 그러자면 우선 내가 양쪽의 문화와 생각을 충분히 이해해야 했으며, 그러다 보면 근본적인 질문에 자주 부딪히며 절망하곤 했다. 왜 우리의 결혼식에 턱시도를 입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 왜 결혼도 전에 많은 돈을 들여가며 결혼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지, 왜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결혼을 해야 하는지, 폐백은 왜 또 따로 하는지, 친구들이 축가 부르는 것이 왜 당연한 절차가 되어 버렸는지, 결혼식은 꼭 해야 하는지... 남들이 하니까, 남들이 하는 대로 그저 따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 모습은 서양의 결혼식을 따왔는데, 내용은 우리의 것을 담고 있어야 한다. 마치 제사 지낼 때 깔끔하게 양복을 입고 절을 하는 우리의 어설픈 모습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렇지만 나는 혁신의 선구자는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를 내 기준에 우리가 회사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도록 많이 강요했었다. 대결 구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누가 더  양보하느냐 하는 대결구도가 되었으니 어리긴 어렸다.


그녀와 살면서 종종 겪는 일인데, 그녀가 뭔가 기존 사회의 통념에 맞지 않는 무언가를 시도하면 나는 기존 사회의 통념과 그녀의 새로운 시도를 조율하느라 고생을 한다. 말이 조율이지 사실은 그녀를 끼위 맞추는 작업이었지만... 그리고 얼마 후에 내가 그렇게 이해시키려고 했던 그 기존 사회의 통념이 그녀의 생각을 따라 변해 버리는 황당한 경험을 한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하우스웨딩이 많이 퍼졌다. 많은 하객을 초대하고  정해진 식순대로 삼십 분 만에 끝나는 보통 결혼식이 아닌 작고 예쁜 공간에서 파티 같은 분위기로 결혼하고 싶어 하는 젊은 신부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얼다가 처음 원했던 것이 바로 그런 방식이었다. 그러나 많은 친척들 그리고 부모님 하객들을 생각해 보면 안 될 말이었다. 최소 이백여명은 될 것인데 하우스 웨딩이라니. 나는 그런 면에서 보면 지극히 보수적이다. 기존의 통념에 어긋한 새로운 시도는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 반해 그녀는 그런 나를 계속해서 흔들어댄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그녀가 맞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 나는 이제 그녀가 하자고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다. 그녀를 따르는 길이 조금 앞서 가는 일임을 체득했다. 하우스 웨딩을 생각하고 있던 그녀인데 그녀의 생각에 맞는 예식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매주 주말이면 예식장을 돌아다녔다. 어쩌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말도 안 되게 비싸거나 또는 너무 좁았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종로타워 꼭대기에 있는 예식장이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겠지만, 그 당시에 이것저것 음식 간단하게 해서 일인당 식사를 4만 원 후반에 맞출 수 있었다. 보통 축의금이 5만 원임을 감안하면 괜찮았다. 왜냐면 다른 부대 비용을 과감히 줄여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웨딩플래너와 그녀와의 싸움에서 중간에 끼어버렸다. 단체 사진 촬영도 안 하겠다고 하고, 웨딩드레스 대여도 턱시도 대여도 안 하고 청첩장 조차도 따로 하겠다고 하니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들도 남는 게 별로 없는 결혼식이었다. 우리에게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남기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여러 명이 한 번에 같이 찍을 수 있는 단체 사진은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절차다. 그런데 그녀에게 단체사진은 어렸을 때 동독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었고, 단체 사진을 찍는 대신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개별적으로 사진을 찍고 각자에게 사진을 전달하겠다고 한다. 급진적인 시도였다. 하루 빌려 입는 턱시도 가격이 100만 원 가까이 했는데, 물론 나는 그냥 플래너가 제안하는 패키지에 있는 대로  하자했으나, 그녀에겐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 돈을 주고 잠깐 입고 마느니 평소에도 입을 수 있도록 정장을 맞추자고 한다. 그래서 성수동 가서 25만 원짜리 지극히 평범한 회색 정장을 맞췄다. 그리고 지금도 소중히 잘 신고 있는 구두를 샀다. 그리고 그녀는 100만 원이 넘는 웨딩드레스를 빌리느니 한복 살 돈에 조금 더 보태서 드레스로도 입을 수 있게 개량 한복을 맞추겠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윗 저고리만 하나 더 하는 걸로 해서 80만 원에 한복 드레스를 맞췄다. 부케와 머리 꽃장식은 신혼집 1층에 있는 꽃집에서 5만 원에 해결했다. 결혼 촬영을 대게는 미리 하지만, 결혼 촬영은 결혼식에 하면 된다며, 실제로 결혼식이 끝나고 그 복장 그대로 남산에 가서 처제가 찍사가 되어 사진을 찍었다.


청첩장이라도 웨딩플래너가 추천하는 디자인으로 고르면 체면이라도 좀 섰으련만, 레이스 달린 청첩장들이 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을지로를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결국 고른 것이 금붕어가 그려진 단순한 디자인으로 청첩장을 골랐다. 보통 하는 결혼식에 비하면 엄청 절약을 한 것이다. 발품은 무지하게 팔았지만...


- 목 차 -

00장. Prologue

01장. 만남

   1) 낯선 곳에서의 인연

   2) 종을 뛰어넘은 표범의 사랑과 훔친 머리카락

   3) 네가 나무를 알아?

02장. 반찬의 나라로

   4)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5) 반찬의 나라로 편도 티켓

   6)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7) 먹 가는 독일 처자

   8) 낯선 곳으로 씩씩하게 내 디딘 첫 걸음    

03장. 결혼 (가제)

   9) 검정 턱시도와 검정 구두? (결혼 준비)

   10) 결혼 할래? 출장 갈래?

   11) 왜 하필 한국 사람이니?                

04장. 씩씩한 독일 여전사

   12) 한국은 극단주의인가봐

   13) 비닐봉지는 "No"

   14) 외갓집 차례지내기

   15) 아름다운 대한민국

   16) 명품 가방

05장. 아이 키우기

   17) 임신과 출산

   18) 혼혈아에 대한 생각

   19) 금지하는  것보다 위험함을 가르치는 것

   20) 육아휴직과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어린이집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

   22) Bilingual

06장. 한국 회사와 외국인

   23) 외국인을 위한 자리

   24) 우리의 현실

   25) 우리는 왜 이렇게 일에 미쳐있나

07장. 세계 속 한국, 한국 속 세계

   26) 다문화 사회

   27) 국제커플에 대한 인식

   28)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29) 한류에 대한 생각

08장.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

   30)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결심

   31) 계속되는 방황

   32) 철밥통을 버리다.

09장.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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