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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Nov 30. 2017

월간 김창우 : 2017년 11월

월간 김창우 Again


<월간 김창우>가 5월부터 사라졌다. 비록 아무도 시키진 않았지만, 매달 있었던 일들을 마감에 쫓겨 억지로 하나씩 포스팅하던 것은 스스로 선택한 나와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졌다. 물론 나와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이긴 것도 또 다른 나라고 외치던 후배 재인이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나 또한 게으름을 사랑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도 사랑하기에, 기꺼이 이번 승리를 바친다. 역시 정신승리 방법도 가지가지다.


물론 5월 이후 핑곗거리는 많았다. 대신 영화 후기와 대안 학교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고, 아직 공개하진 않았지만 여름에 다녀온 세 번째 하와이 여행기도 썼고, 틈틈이 기존의 글들도 교정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역인 '시시껄렁한 잡담'들은 X세대답게 인스타그램을 활용했다. 핸드폰 메모장에는 뇌를 거치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만 갈겨놓은 날 것 그대로의 글들도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한 달간의 파편들을 모아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월간 김창우>를 부활시켜본다. 어쨌든 나의 일부가 이길 수밖에 없는 '나와의 싸움'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나와의 약속'으로 바꾸었다. 물론 지난 싸움에서 이긴 또 다른 나는 벌써부터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며 속삭이고 있다.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으니 나 또라이 같. 그만하자. 그냥 쓰자.


다행히 여기저기 끄적여놓은 것들이 많이 때문에 짜깁기만 하면 된다. 나의 2017년 11월.



모기형 인간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욕을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욕을 하지 않고 살아왔고, 지금도 욕을 안 한다. 어머니 말씀을 참 잘 듣는 아이였다. 그때 만약 어머니께서 "돈 없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하셨다면, 난 지금 건물주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내 입에서도 무의식 중에 욕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잠을 좋아하는 내가 고이 잠들었는데, 모기 앵앵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을 때다. 그냥 피 한 컵 조용히 마시고 지나가지, 빡돌게 왜 귓가 근처에 오냐 말이다.

처서(8.23)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은 이제 잊자. 이 녀석들은 계속 출몰하고 있는 살인 개미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곧 첫눈이 내려도 이상할 것 없는 11월 초에, 난 어제도 세 마리나 잡고 잠이 들었는데도, 새벽에 "ㅆㅂ"를 외치며 다시 깼다.

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녀석을 뒤로하고, 분한 마음에 모기 퇴치를 검색해봤다.

페트병에 뜨거운 물과 설탕을 넣고 페트병 윗부분을 잘라 뒤집어 넣으면 모기지옥이 만들어진다는데, 자다 깼을 때 내가 그 맛있는 설탕물을 마시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패스. 혹은 모기가 싫어하는 계핏가루를 그릇에 담아 집구석구석에 놔두라는데, 계피향을 싫어하는 나도 모기와 함께 집을 나가게 될 것 같아서 패스.

그러다 며칠 전 경훈이가 보내준 사진에서 내가 모기처럼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아, 이래서 모기들이 "행님 행님 춥소"하며 나를 찾아오나 보다. 갑자기 짠했다.


오늘부턴 녀석들에게 욕은 안 해야겠다.


#모기형인간 #인간형모기 #이제 곧 겨울 #또한 살



극강 70대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로 시작하는 글 뒤엔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로 시작하는 글로.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운전하실 때,
누군가가 무례하게 끼어들거나 시끄럽게 빵빵거리는 건 참으셨지만,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순간 우리 차의 목적지가 바뀌었다. 아버지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이 되어 그 차를 쫓아가셨다. 그렇게 욕을 하고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컨테이너를 싣고 가는 트럭 운전사 분들이거나 유독 어깨 근육만 발달한 채 짧은 머리를 한 분들이었다. 나름 거칠게 살아가는 분들이라 욕까지 날리며 지나갔을 것이다.

아버지는 욕한 사람을 맹렬하게 쫓아가, 영화처럼 그 차들 앞에 우리 차를 조용히 세우셨다. 그리고 가만히 차에 앉아계셨다. 그러면 피지컬 괴물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들을 창의적으로 조합하여 쇼미 더 머니 결승전처럼 찰진 욕랩을 쏘아대며 뛰어왔다.

창문을 부술 듯 쿵쾅쿵쾅 내리치면, 그제야 아버지는 창문을 내리시고 얼굴을 보여주셨다. 대사도 중저음으로 "이노무쉑히" 정도면 충분했다. 그다음 장면들은 대략 비슷했다.

아버지 얼굴은 자석 같았다.

그렇게 맹렬하게 S를 향해 뛰어오던 N극 덩치들이, 자신보다 더 강한 N극의 기운을 느끼는 순간,
한 순간에 뒤돌아서 멀어져 갔다. 씩씩대며 뛰어와서 팔을 높이 치켜들었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까 일은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어르신"하며 사라지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 거제에서 만난 아버지.
햇빛에 살짝 인상을 쓰신 장면에서 당시 어깨들이 보았을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N극은 강렬하게 살아있었다.

#전세계 할아버지 중 최강의 피지컬
#몸이 여전히 돌덩이 #70대 효도르.



출근길


남양주 7년을 살면서, 출근길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버스, 택시, 지하철, 자가운전, 도보 등을 섞어가며 다양한 조합으로 다녔는데, 최근 가장 만족스러운 방법을 찾았다.


장인어른이 8시 10분쯤 도농역까지 나와 와이프를 라이드 해주시면, 거기서 급행을 타고 상봉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탄 후 청담역에 8시 55분에 도착한다. 이 코스에는 많은 장점들이 녹아 있다.


우선 지우가 8시 5분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 아침을 함께 준비하는 모습은 한 편의 연극 같다. 매일 동일한 출연진이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표정과 대사를 반복하는 연극. "밥 한 술 더 먹어! 자, 이것도 마시고. 치카치카했어? 양말 신어야지! 준비물은 다 챙겼어? 머리 빗자. 로션도 바르고. 이 추운데 잠바도 안 입고 나간다고? 아니야, 빨리 잠바 입어. 지퍼도 올려야지!" 대사들이 매일 무한 반복된다.


그렇게 신발을 구겨신고 뛰어나가 아슬아슬하게 스쿨버스를 타지만, 등교를 준비하는 딸과의 아침 연극제는 매일 보아도 지겹지가 않다. 그리고 둘째 지아도 이 시간에 함께 일어난다. 5살 말년이 되어가며 다행히 울면서 일어나는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아빠 엄마 언니가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쫑알쫑알 한 마디씩 거들다가 우리 셋이 다 떠나고 나면, 다시 이불을 들고 소파로 간다. 그리고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잠이 든 후, 10시쯤 일어나서 매일 유치원을 지각한다.


추억의 도롱뇽이 기어 다닐 것 같은 이름을 가진 도농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영화나 미드를 보기 시작한다. 최근엔 경훈이와 주노가 추천해서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미드를 보고 있는데 시즌2가 끝나간다. 솔직히 다음 편이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은 아니었지만, 시작한 거 끝은 내자는 마음으로 보고 있다. 이제 시즌2 마지막 편만 남겨두고 있는데, 마지막 편이 이렇게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이 출근 코스의 백미는 청담역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이 청담대교를 지날 때면 살얼음이 살짝 덮여 있는 한강을 잠시 쳐다본다. 21년 차 서울 사람이지만 여전히 한강을 보면 설렌다. 참고로 63벌딩의 설렘은 이미 졸업했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영화를 끄고 뮤직 스타트를 한 후, 사무실까지 20분간의 아침 산책을 시작한다. 특히 경기고등학교 옆 언덕길은 계절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다.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 가끔씩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이 언덕에서는 내가 이문세다.


올 첫눈도 이 길에서 맞았다. 가을을 끝자락이라 오르막 길에 여전히 노란 은행잎들이 쌓여 있는데 그 위로 흰 눈이 떨어졌다. 그때 나오던 곡이 데이브레이크의 '꽃길만 걷게 해줄게'였다. 그 순간 춤을 추면, 내가 또라이 같을까 아니면 라이언 고슬링 같을까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확실히 고슬링 쪽은 아니었다. 그냥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만 까딱까딱하고 고개만 앞뒤로 5mm씩 그루브 타는 걸로 첫눈의 반가움을 표현했다.


청담 살면 느끼지 못하는 남양주인의 아침 여행, 그리고 경기고 언덕길의 이문세와 고슬링.

참 정신승리 방법도 가지가지다.




까마귀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는 애절했다.

어릴 때 피부가 까만 애들은 한 번쯤 까마귀라는 별명을 가져봤을 것이다. 까마귀는 짱구, 싸이코, 돼지, 마이콜, 안경 등과 함께 가장 흔한 별명 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깜상, 깜디와 같이 조금 더 저렴한 단어들로 옮겨갔지만, 일단 까마귀로 시작했다.

나도 까마귀라 불린 시기가 있었다. 바다는 좋고 선크림은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름에 ‘마귀’가 들어갔을까. 물론 까만 마귀라는 뜻으로 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까마귀’라는 이름은 너무 심했다. ‘까마구’ 정도로 해주지.

그리고 한자를 배울 때도 놀랬다. 버젓하게 새 조(鳥)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검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며 눈을 표시하는 획을 하나 뺀 까마귀 오(烏)가 따로 있는 것이었다. 이건 피부색으로 놀리는 것 아닌가. 얼마 전 축구시합에서 눈을 찢는 포즈로 동양인을 비하한 선수를 탈탈 털 정도로 인종차별을 극혐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대놓고 지구촌 다른 거주자에 대해 피부 색깔로 종차별을 하는 것을 놔두고 있다니. 내가 까마귀였으면 오(烏)가 아닌 조(鳥)로 불리고 싶었을 것 같았다.

속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단다. 기가 찼다. 억울할 때조차 까마귀를 들먹였다. 칠월칠석에 오작교를 이어준 미담의 주인공인 것은 기억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불쌍한 존재들이 또 있을까.

얼마 전 바다에서 오랜만에 까마귀들의 떼창 소리를 들었다. 까악까악까악~ 평소보다 데시벨이 높은걸 보니, 먹이를 발견한 기쁨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주위를 보니 이 물체가 떠 있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영역에 처음 보는 괴물체가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섹시한 자태로 비행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울어댔던 것이었다.

그들의 울음소리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녀석, 맹금류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원망하는 녀석, 일단 한 번 들이받아보려는 녀석 등등.
자, 까마귀들아. 한 때 까마귀라 불려봤던 형으로서 말할게. 쫄지도 말고 들이받지도 마라. 별거 아니다. 이 형도 나이 40줄에 들어서니, 주위에 드론 같은 젊은 멋쟁이들이 출몰하고 있지만, 하늘은 같이 날아다녀도 될 만큼 충분히 넓다.

그래도 불안하면, 너도 피자배달 같은 개인기나 연마하자. 이 형도 그렇게 살아간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퇴근길 #너무 멀어 #글이 길어짐 #죄송
#인스타 페북 이렇게 길게 쓰는거 아니라고
#드론같은 신세대 후배들에게 혼남



체육인


장미란 재단이 주최한 장소에서 스포츠 스타 및 유망주들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주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커리어 코칭'이란 제목을 걸어놓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했다.


난 체육인 집안에서 자랐다. 나의 출발점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엘리트 체육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여전히 체육관의 땀냄새를 좋아하고, 체육인들을 좋아하고, 날 키워준 스포츠인들에게 큰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리라면 규모나 장소 따위는 상관없이 뛰어간다. 예전엔 복싱체육관 관장님 몇 분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도 있다. 단 한 분이라도 필요하면 뛰어갈 생각이다.


이렇게 순수한 분들이 은퇴 후 거친 사회로 나와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런 모습을 아버지와 주위 분들을 통해 40년간 봐왔다. 내가 여러 커리어를 거쳐 현재 투자업에 있는 이유는, 이 분들을 도우라는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꾼들이여, 왔니? 앉아라. 니 내 뉘긴지 아늬? 나 투자업계 장첸이야.

운동한 사람들 뒤에는 모기형 인간이 있으니 앞으로 얼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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