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만에 68kg가 61kg까지 몸무게가 빠진 이후, 살 찌우는 것이 정말 힘들다. 저울에 올라갈 때마다 스트레스다. 지난 1년 간 1kg 찌웠다. 아침에 62, 저녁에 63까지 왔다. 65 까지만 만들고 싶은데, 위도 작아졌고 입맛도 여전히 별로라 도통 살이 찌질 않는다. 투병 초기에는 그래도 먹고 싶은 음식들이라도 많았는데, 요즘은 딱히 떠오르는 메뉴도 없다. 그래도 더 빠지진 않으니 만족해야 하나. 조3모4, 오전에 63, 저녁에 64까지만 도달하면, 이제 집 나간 근육을 만들자.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2000년, 제주도에서 먹은 수박이다.
과외비를 만 원짜리로 두툼하게 받아 집으로 돌아오니 재성이(skt 박재성 부장)이 내 방에 와 있었다. 열쇠를 숨겨놓는 곳을 알고 있어서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녀석이다. 그 날은 제멋대로 비디오도 빌려와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재성이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던져줬다. 내 돈이 니 돈이고, 니 돈이 내 돈이던 시절. 우리 둘은 이 돈으로 뭐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솔깃한 제안이 나왔다.
“우리 제주도나 갈까”
우린 씨익 한 번 웃고, 가방에 속옷만 몇 개 넣고, 정확히 10분 후 집을 나섰다. 그리고 2박 3일간 내 봉투의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제주도를 돌아다녔다. 제주도에 있던 재성이 지인으로부터 차를 빌린 후, 우린 그 차를 타고 델마와 루이스처럼 돌아다녔다. 덤 앤 더머스처럼 인가.
밤에는 소주 한 병 사서, 청양고추를 벌칙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때 기억 속의 수박을 먹었다. 당시 제주도에 수박밭이 많았는데, 우린 수박 서리를 한 후 이름 모를 바닷가로 가서 돌로 수박을 깬 후 반 통씩 들고 먹었다. 뜨거운 여름이라 수박도 따뜻했지만, 밭에서 막 따서 먹는 수박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혼자 수박을 먹다가 갑자기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다. 수박 서리가 아니었다. 우린 수박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돕기 위해 차에서 내렸고, 그 뙤약볕 아래에서 수박을 따는 것을 도와드렸고, 돌아서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수박 한 통을 주셨던 것이다. 난 왜 지금까지 20년을 수박 서리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친구들에게 허세 잔뜩 넣고 수박 서리한 걸로 MSG 치고 이야기한 것이 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