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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l 31. 2019

월간 김창우 : 2019년 7월

드림위즈


1999년에 드림위즈 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난 당시 korea.com, hanmail.net 등의 이메일 계정을 난잡하게 사용하다가, 드림위즈가 출범하자마자 기존 메일 계정들은 스팸 받이로 남기고 잽싸게 갈아탔다. 화면도 깔끔했고, 새 집 냄새가 폴폴 풍겼다. 게다가 당시 한국의 빌 게이츠 같은 분이셨던 한글과 컴퓨터 이찬진 대표가 만든 인터넷 포털 사이트였기에 앞으로도 많은 기대가 되었다. 


드림위즈가 메일 계정을 오픈하자마자 난 회원 가입을 했다. 블루보틀 1호 손님이 되려 자정부터 줄을 섰던 사람들이 조상으로 삼을 만한 행보였다. 평소 나의 스타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니아성 플레이였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호 고객이 되기 위해 움직였던 이유는, 내가 원하는 아이디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내가 원하는 이름은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였기에, 뒤에 0이나 1이나 2 같은 똥을 달고 다녔다. 이번엔 깔끔한 이메일 계정을 원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렇게 오픈 첫날 만들어 쥐메일로 갈아타기 전까지 10년 이상 내가 주력으로 사용했던  boxer@dreamwiz.com 계정이 만들어졌다.


드림위즈가 20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7월 말일자로 종료한다.

그동안 고마웠다, 드림위즈. 너도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사람들의 추억들 잘 묻어두고, 먼저 잘 가라. 난 이제 반 온 것 같다. 미안.

멀리는 못 나간다. 내 오랜 친구여, 안녕.


참고로 당시 드림위즈 포털을 들락거리던 브라우저는 explorer가 아닌 netscape였고, 시작 페이지는 yahoo.co.kr이었다. 내 나이 어쩔.



나는 나비


알을 깨고 나왔다. 


온몸을 감싸고도는 바람 느낌이 너무 좋아 꿈틀거려 본다. JO MALONE의 FRENCH LIME BLOSSOM 향수 냄새가 나는 걸 봐서, 아카시아 꽃밭이구나. 일단 배를 좀 채우자. 눈 앞에 푸른 잎사귀들이 무성하다. 나보다 먼저 나온 녀석들이 갉아먹은 구멍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다행히 좋은 시대에 태어나 천적들로 보이질 않는다. 공룡 시대에 태어났어봐, 트리케라톱스 같은 초식 공룡들이 나뭇잎에 붙어 있는 나까지 먹어버렸겠지. 그래도 난 유산균처럼 장까지 살아서 갔을 거다. 이 좋은 세상, 행복하게 더 살아야지. 


얼마 후, 난 입에서 끈끈한 실을 뽑는 개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걸로 전통놀이 실뜨기를 하다가 소눈깔 포지션에서 실패한 후 온몸에 감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런 날 보고 번데기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옷 갈아입는 것이 부끄러워 잠시 이 안에 숨는 것뿐인데. 이곳에서 내가 10일 정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난 잠시 머문 번데기 에어비앤비를 떠나, 온몸에 힘을 주었다.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기 위해 똥꼬에 힘을 주는 것보다 더 집중했다. 좌아악~! 와우, 난 짙은 아이보리색 나방이 아니라 노란색 나비였구나. 이 날갯짓은 비상을 의미한다. 내 꿈을 펼치자. 나비가 되어 온 세상을 날아다니자.


훨훨~ 훨훨 날자~ 너무 좋은 세상~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세상~

아, 좋다~ 시원한 공기~ 따스한 햇살~ 이게 행복이여라~ 눈을 살포시 감고~ 아~ 행복ㅎㄷ악


쿵!


방금 어이없게 주행 중인 내 차에 부딪쳐 죽은 나비는 이런 생애를 살았겠지.


꽃밭에서만 암술과 수술 놀이하면서 날아다니지, 찻길로는 왜 나와서.

이 세상, 그래도 살만한 곳인데.

R.I.P. 이름 모를 Yellow Butterfly. 



아카시아


어릴 때, 어머니의 핸드백 속에는 항상 아카시아 껌이 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난 어찌 그리 예쁘다는 그 껌을 씹기 위해 어머니의 핸드백을 뒤지곤 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껌을 반 개씩 씹으셔서, 남은 반개는 내 몫이었다.

은은한 그 향기가 참 좋았다. 어머니의 향기.


갑자기 궁금해졌다.

정말 아끼신다고 반 개씩 씹으셨는지, 아님 내가 뒤지는 걸 아시고 

나 먹으라고 반 개씩 남겨 두셨는지.

둘 다 우리 어머니답다.


아카시아 꽃말을 찾아보니 '품위'라고 한다.

어머니가 남긴 아카시아 껌 반 개를 기분 좋게 씹던 내가 30년이 흘러서,

우리 아이들 지우, 지아의 이름에 품위 있을 우(優), 품위 있을 아(雅), 

품위 있는 '우아'를 반 씩 넣어 지은 것은 운명이었나.



졸업사진


고딩 친구가 단톡방에 뿌린 24년 전 졸업앨범 사진.


학교 이발관 아저씨는 아이보리 색으로 변한 흰색 가운을 입으시고, 난이도 높은 양아치 상고머리까지 포함하여 어떤 대가리 건 두당 7~8분을 넘기지 않으셨지만,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방망이 깎는 노인에 버금가는 가위 장인이셨구나.


10분 쉬는 시간에

머리 깎고 매점 가서 500원짜리 우동까지 먹고

3분 늦게 교실에 들어가서,

감정 없이 뺨따구 한 대 쫘악 맞고 

쿨하게 자리에 들어가곤 하던 낭만이 있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이발관 아저씨는

10분 근무에 45분 휴식을 하던 꿀보직이셨구나.


그런데 어쩌나, 

난 아직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이 아이다.


#18세나 #42세나 #같은 아이 #66세도 #90세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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