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으로 살아가기-컨택(2): 추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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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닥으로 살아가기-컨택(5): 커버레터
포닥으로 살아가기-인터뷰(1): 인터뷰 준비
포닥으로 살아가기-인터뷰(2): 인터뷰와 그 후
에필로그 : 대학 교수의 길
질문 받습니다 : https://brunch.co.kr/@cnam/80
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많이 바빴던 11월이네요. 한국은 시국이 많이 어지럽네요. 지구 반대편에서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한 마음입니다만 실제로 그런 여러 사건들을 마주하고 계신 분들은 얼마나 더 답답할지 상상이 안 갑니다.
그래도 할 이야기는 계속 이어가야겠지요. 지난 글에 이어 PI 찾기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사실 "어떤 PI를 찾는 것이 좋은지"는 개개인의 케이스에 맞추지 않는 한 꽤 피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 있는데요. 그냥 제가 아는 내용들을 다 말씀드리면서 읽으시는 분들께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용을 제 연구분야(컴퓨터과학, 로보틱스)에 국한시켜서 되도록 덜 피상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각 분야별로 유형을 나눠보고 저는 어느 유형에 집중했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연구 분야
a. 박사과정에서 연구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연구분야
하던 연구를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라 본인도 가장 효율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고 (논문을 써낼 수 있을 것이고)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효율적으로 돈을 쓰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이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박사과정 중에 많이 읽어본 논문들을 쓴 연구실, 리뷰를 많이 해본 논문들을 쓴 연구실이 있다면 바로 그 곳이 이 경우에 해당할 것입니다.
b. 박사과정에서 연구했던 것과 교집합이 있는 분야
이 경우는 포닥 본인의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박사과정에서 했던 것만 평생 팔 수는 없겠지요. 연구활동을 해나가며 조금씩 확장을 해나가야하는데 포닥과정에서 새로운 분야를 자신의 전문분야에 접목시켜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동시에 자기만의 분야를 개척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뽑는 사람입장에서도 이 부분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실적을 내야하는 PI들은 이런 후보자를 최우선으로 두진 않을 것 입니다. 다만 기존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였고 앞으로 어떤 분야를 접목해도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c. 박사과정에서 연구했던 것과 많이 다르지만 내가 가진 기술/지식을 아주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는 분야
이 경우는 요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딥러닝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딥러닝을 박사과정에서 연구하여 이론이나 개발 모두에 실력을 갖춘 경우 참으로 많은 분야의 연구실에서 탐을 낼 것 입니다. 유용한 기술과 개발능력을 보유한 경우 좋은 곳에 얼마든지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겠지만, 도구적으로 사용되다보면 본인이 핵심적인 기여를 한 1저자 논문을 쓰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저는 이 중에서 a와 b에 집중했고 a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잡은 포지션은 b에 해당했으나 X영역의 교수님이 Y로 확장하시면서 저를 뽑으셨기에 a에 집중한 제 전략이 맞아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거의 동일한 연구분야에 계신 분이었기에 저의 지난 연구결과와 실적을 좋게 봐주실 수 있는 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다른 분야로만 넘어가도 사실 연구의 본질까지 꿰뚫어보기 쉽지 않고 결국엔 눈에 보이는 성과로만 판단하기 쉬우니까요.
2. 지도교수
a. 테뉴어 전 신임 교수
신임교수는 보통 포닥을 뽑을 만큼 넉넉한 재정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분야에서 테뉴어 받기 전에 포닥을 쓴다는 것은 조금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테뉴어 심사에는 박사과정생 지도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는데 (성공적으로 박사를 마친 학생이 있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음) 그 시기에 포닥을 쓴다면 학생을 상대적으로 덜 뽑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의 교수들은 연구에 대해 의욕이 넘치기 때문에 보통 포닥이 하는 역할까지 혼자 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랩 셋업, 제안서 작성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닥을 쓴다면 무언가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봐야하겠구요. 아마 상당한 시간을 연구실 셋업에 투자해야할 것이고 논문 쓸 시간은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b. 테뉴어 막 받은 교수
이 경우는 이제 테뉴어도 되었고 마음에 여유가 조금 찾아오면서 실적내기 좋은 연구보다는 자기가 정말 하고싶은 연구에 집중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습니다. (그러면서 연구에 손을 놓는 케이스도 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경우에 포닥은 연구지도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일만 많이 하게 될테니까요.) 일반화하긴 어렵겠습니다만 연구가 참신하고 새로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라이징 스타라고 할까요. 펀드도 이제 좀 생겨서 손가락 빨 정도는 아니고 그래서 학생들도 좀 넉넉히 지도할 수 있고 장비도 예전보다 덜 빠듯하고.. 재밌는 연구를 추진력있게 가져갈 수 있는 유형이 아닐까 싶네요. 다만 의욕만큼 연구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치고 들어오므로 포닥이 연구를 주도해나가는 느낌은 아니겠죠. 보조해나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포닥이니 보조 중에 대빵같은 보조?
c. 중견 교수
이 경우는 대단히 새로운 연구를 하기엔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 방향이 있고 시스템이 있어서 관성이 좀 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 좀 덜 재밌는 연구를 한다고 할까요. 대신 연구실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공장"같은 느낌이 난다고 할까요. 효율성은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네트워크도 잘 갖춰져 있어서 포닥을 잘 마친 경우에는 추천서가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짧은 기간안에 많이 배우고 실적 쌓아나가기엔 가장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d. 은퇴할 나이에 가까운 교수
이 경우 포닥을 뽑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습니다. 첫째로 이제 언제 은퇴를 할지 모르므로 최소 4년 이상 지도해야하는 박사학생을 새로 뽑기 부담이 될 것 입니다. 학생의 졸업이 늦어진다고 하면 난감한 상황이 생기겠죠. 그래서 계약으로 얽히는 포닥의 경우가 부담이 적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런 분들은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한 분야의 대가이실텐데 그러다보니 연구 자체가 아주 흥미롭고 새롭기는 어렵습니다. 수업시간에 교과서에서 배우는 잘 정립된 분야에 가깝지 요즘 핫한 최신 논문들에 가깝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뛰어난 학생들이 줄을 서서 랩에 들어오려고 열성이진 않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포닥을 아웃소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저는 이 중에서 b와 c에 집중했습니다. c에 해당하는 교수님께도 오퍼를 받았으나 최종적으로는 d에 해당하는 교수님과 일하고 있습니다. d의 경우엔 장단점이 있을텐데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일단 굉장히 high-level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좋으십니다. 큰 그림을 보는데 익숙한 분이시죠. 그러다보니 제안서 쓰는데도 아주 도가 트신 분이고 덕분에 펀드 걱정은 없습니다. 단점이라고하면 디테일을 봐주시지 않아 (그럴 시간이 없으시기도하고 이제 최신의 테크니컬한 디테일은 쉽게쉽게 따라가시진 못합니다) 거의 모든 것을 저 혼자 해나가야합니다. 제가 박사때 하던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을 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는데, 새로 배워야하는 부분이 있는지라 사실 좀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교수님의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긴 합니다만 이제 몇 년 뒤면 은퇴하실 분이라 "끗발"이 예전같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3. 주요업무
a. 프로젝트
b. 제안서
c. 개발
d. 멘토링
-> 보통 포닥의 역할이란 과제에 참여해서 주요 역할을 하는 건데요 (자기 연구를 하고 때론 학생들과도 같이 하고 논문 쓰고 등등). 여기에 a, b, d가 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도교수님의 제안서 작성을 돕는 것도 주요 업무일텐데 사실 이것은 논문이 나오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적게 할 수록 좋습니다. 저는 요즘 제안서 작성에 에너지를 많이 뺏겨서 연구가 지지부진하네요. 제안서 작성에 얼만큼의 시간을 써야하는지 미리 파악을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포닥을 딱 한명만 쓴다면 아마 교수님의 다양한 뒤치닥거리를 하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literature survey, 제안서 초안 작성, 제안서에 들어갈 그림 그리기 등등). 학생의 경우 수업도 들어야하고 각종 시험 (스크리닝, 퀄, 프릴림, 디펜스 등등)에도 시간을 쏟아야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제안서 업무를 과중하게 맡기진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엔 박사학위 기간에 제안서나 과제 보고서, 발표자료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다 지도교수님꼐서 맡아 하셨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본인의 메인 업무가 "연구"가 될 수 있는 곳을 찾아야하고 생각보다 의외로 이게 뜻대로 안되는 곳이 많다는 점 입니다.
4. 계약기간
a. 1년
b. 다년
-> 계약 자체는 1년마다 갱신을 하게 되어있는데 이걸 몇 년을 보장해주겠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도 있고 보통은 "일단 1년 계약하고 그 뒤로는 너의 성과와 나의 펀드 사정에 따라" 결정을 하겠다고 합니다. 후자가 굉장히 보편적입니다. 사실 첫 1년 동안 "깽판"만 치지 않으면 보통 2년까지는 무난하게 연장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도 포닥이 오자마자 1년 안에 상당한 실적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응기간 등) 1년 동안 실적 없다고 연장을 안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가능성은 보여줘야겠죠.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기엔 1년은 충분한 시간입니다. 실적을 보여주기엔 짧더라도 말이죠. 또한, 1년 계약 후 해지하고 새 포닥을 뽑는 것도 교수님들께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왠만하면 2년 이상은 데리고 있으려고 할 것입니다.
포닥의 입장에서도 1년만으로 끝내기 어려운 것이, 일단 앞서 말씀드린 실적의 부분이 있을 것이구요. 두번째로는 추천서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포닥을 하고 취직을 할 때에 포닥 지도교수로부터 좋은 추천서를 받지 못하면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 분들은 한국처럼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마인드로 포닥이 어떻게 했든 좋은 추천서를 써주고 서로 해피하게 헤어지는 그런 분들이 아니라 솔직하게 다 사실대로 쓰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추천서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죠) 1년으로는 좋은 추천서를 받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1년 마치고 나가려면 1년차 시작하고 얼마 안 있다가 여기저기 학교든 회사든 원서를 넣고 인터뷰를 하고 추천서를 내고 해야하는데 이 시점이 포닥 시작하고 몇 달 안되었을 때 입니다 (여긴 어디든 프로세스가 느려서 일 시작 희망일의 4-5개월 이전부터 구직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죠). 당연히 지도교수의 입장에서는 좋은 말을 써주고 싶어도 같이 일을 한지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진짜로 이 포닥이 뛰어난 사람인지 판단이 어려울 수 있고 좋은 말을 쓴다한들 그 근거로 댈 예들이 적을 것입니다. "이 친구는 진짜 최고야. 꼭 뽑길 바래."라고만 쓰는 추천서는 좋은 추천서가 아니며 "이 친구는 이런이런 과제를 했을때 이런이런 아이디어로 연구를 엑설런트하게 이끌고 갔기 때문에 나는 이 친구를 강력 추천해."라는 추천서가 좋은 추천서인데요. 몇 달 경험으로는 이런 좋은 추천서를 받기 어려우므로 2년 이상 일할 생각으로 시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1년 차에는 계약 연장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살수 밖에 없고 말 잘듣는 예스맨노예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혹시 2년 계약이 명시된 포지션이 있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5. 학교
a. 본인의 분야, 학과에 특화된 학교
b. 일반적으로 모든 학과가 좋은 소위 "탑스쿨"
-> 제 개인적인 의견은 박사는 a와 b 어느 곳에서 받아도 좋다고 생각하구요. 포닥의 경우는 a이며 동시에 b인 학교가 가장 이상적입니다만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한다면 a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포닥 과정 중에는 관련 분야에서 네트워크를 늘려가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가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a에 있다보면 아마도 해당 분야의 소위 "핫한" 연구자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을 것 입니다.
팁
1. 박사기간동안 인터랙션 해온 교수님들 찾아보기
-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어서 그 연구실에서 나온 논문을 많이 찾아 읽어보거나 리뷰를 해본 연구실, 학회에서 만나서 연구에 대한 의견을 나눠본 교수 등을 먼저 찾아보시면 의외로 빨리 집중공략할 연구실을 찾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박사과정 중에 학교 바깥의 연구자들과 인터랙션을 일부러라도 많이 하시는 것이 좋겠죠?
2. 그랜트 검색
- 관심있는 교수님들이 있다면 펀드가 있나없나 검색해보실 수 있습니다. 연구실 웹사이트 가면 나와있는 경우도 있지만 과제 그랜트를 명시적으로 적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NSF 과제의 경우 웹에서 검색이 가능하니 (DARPA, AFOSR, NURI 등의 경우도 오픈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찾아보시고 포닥 뽑을만한 펀드가 있나 한번 살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3. 인맥활용
- 사실 젤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냥저냥 어쩌다 한번 얘기해본 사이 말구요. 지도교수님 통해서 지도교수님과 가까운 분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잘 연결해주신다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4. 내부자 연락
- 교수님들 컨택에 앞서 관심랩에 있는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 포닥 자리가 있을지 분위기가 어떤지 등등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주저했습니다만 하지만 한번 시도해 보심직 합니다. 기회가 닿아서 관심랩의 포닥분을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네.. 쓰다보니 여러가지 고려사항들을 나열만 해둔 것 같습니다.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네요. 보시고 필요한 부분 캐치해가시고 궁금하신 부분은 댓글 등으로 질문주시면 답변을 드려볼게요. 사실 저도 제가 막 많이 아는 것처럼 적어두었지만 사실 괜한 오지랖인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도 저처럼 시행착오를 많이 겪지 않으시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글이었으니 참고 정도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제 관심가는 PI를 찾았으니 다음 글에선 어떤 접근방식을 택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