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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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닥으로 살아가기-인터뷰(2): 인터뷰와 그 후
에필로그 : 대학 교수의 길
질문 받습니다 : https://brunch.co.kr/@cnam/80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포닥에 대한 이야기를 씁니다. (제 지난 연재 시리즈 : 포닥 자리찾기, 포닥 탈출기)
한 2년 정도 독립적인 사람으로 지내보니 포닥 생활때 이렇게 지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부분들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글 제목을 좀 정답을 아는 것처럼 적은 것 같은데 클릭을 이끌어내기 위한 낚시질이었습니다..ㅎㅎ 그냥 생각나는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1. 골방에 갇혀있지 말기.
포닥 기간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견디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은 온전히 제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했던 랩의 사람들 외에 특별히 노력해서 사람을 사귀지 않았습니다. 연구관련 회의하는 것 외에는 제 연구실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회의가 하루에 몇 시간씩 있던 것은 함정...ㅠ). 일주일에 한번 남짓 학과 세미나 찾아듣는게 거의 유일한 연구실 밖 외출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런저런 연구를 진행하고 학회도 가고 하다보니 포닥했던 학교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마주할 기회가 많더라구요. 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학생들, 교수들은 당시 제가 랩 문을 열고 나가서 학과 social이나 각종 이벤트들, 모임들에 열심히 참여했다면 쉽게 인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연구 네트워크를 만들 기회들이 많이 있었는데탑티어연구자맛집이었는데ㅠ 그 문을 열지 않고 제 방에 스스로를 가둬놨던 시간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포닥을 하고 계신 분들은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2. 학생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기.
포닥 1년차에는 무조건적 예스맨이었습니다. 제 포닥생활 글들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계약연장의 문제로 말 잘듣는 순한 맛 포닥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계약연장이 좋은 핑계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학생의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다보니 주어진 일들만 급급하게 하게되고 조금 더 긴 호흡의 연구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포닥 기간은 연구의 장기적인 방향을 잡기 좋은 시간인데 저는 포닥을 마치고도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방향성을 잡으려고 하다보니 절실함도 부족하고 뒷심도 부족해서 가속이 붙질 않는 요즘입니다.
3. 싱어송라이터가 되기.
알고리즘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로봇 하드웨어를 만져보는 일은 딱히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디자인한 알고리즘을 코드로 짜고 테스트하는 정도가 제가 하던 개발이었는데 그나마 맷랩에서 파이썬으로 개발환경을 옮긴 것이 포닥 생활 동안의 유일한 기술적 발전이었습니다. ROS라는 로봇운영체제도 쓸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직접 다루기 보다는 학생들에게 맡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로봇 하드웨어는 더더욱 다룰 생각을 안했습니다. 이론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만이 연구고 그 알고리즘을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일은 단순하고 사소한 개발에 불과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밤, 뜬금없지만 가수 아이유의 "밤편지"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생각을 깨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가수이면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그녀를 보면서 로봇 연구의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봇 연구에서 싱어송라이터란 풀스택(full-stack) 연구자, 즉 상위 레벨의 알고리즘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포함한 전체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제가) 정의했습니다. 의도적으로 ROS 환경에서 개발을 하고 개발된 프로그램들을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일들을 많이 해보고나니, 편협했던 기존의 시각을 많이 허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정들이 떡칠된 이상 속에서의 연구를 벗어나 이젠 세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학생 때는 이론적인 내용에 파묻혀 있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문제까지 깊게 깊게 들어가보는 경험은 학생 때 아니면 해보기 어려우니까요. 졸업할 때쯤이 되면 자신만의 편안한 영역이 생기는데 포닥 기간에는 그 영역을 벗어나는 경험을 해보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가장 불편한 곳을 향해 움직여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일이 진정 postdoctoral "training"에 어울리는 일입니다.
지금 포닥 과정에 계신 분들, 그리고 앞으로 가실 분들은 제 시행착오를 참고하셔서 알찬 포닥생활을 해 나가셨으면 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많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