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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현 Oct 13. 2016

15. 직장인의 슬럼프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며, 새로운 재밋거리가 필요하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거의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가는 것이 슬럼프(slump)다. 대개 운동선수가 평소보다 경기 결과가 계속 안 좋을 때, 슬럼프에 빠졌다는 표현을 쓴다. 국립국어원 설명에 따르면 '운동 경기 따위에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가 계속되는 일'이라고 한다. 슬럼프 이외의 단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는 거의 일상용어처럼 쓰고 있다. 그만큼 직장생활에도 슬럼프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누구는 신입사원 시절에 겪었다 하고, 누구는 매년 주기적으로 겪는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슬럼프에 빠질 틈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럼프는 당사자에게는 힘들고도 중요한 문제다. 다음 신문기사를 보면,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까지도 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337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 중 슬럼프 겪은 경험’을 주제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9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85.8%가 ‘슬럼프를 겪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슬럼프 증상(복수응답)에는 ‘무기력·의욕상실(75.2%)’이 대표적. 그다음으로 △잦은 피로 누적(52.3%), △신경과민(45.6%), △집중력 저하(42.8%), △자신감 상실(39.9%), △화 등 감정 절제 못 함(30.6%), △업무 성과 저하(25.4%),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함(17%) 등의 순이었다.
슬럼프가 미치는 영향(복수응답)은 어떨까? 응답자 74.7%는 슬럼프로 인해 직장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세부적으로는 △업무성과 저하로 평판·평가 나빠짐(33.8%), △점점 직속 상사의 신뢰 잃음(32.6%), △충동적으로 퇴사하게 됨(30.6%), △자꾸 혼자 있다 보니 고립됨(27.9%), △동료와 다툼 등으로 껄끄러운 관계 발생(22.3%) 등을 들었다. 이로 인해 68.9%는 퇴사 충동까지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퇴사로 이어진 경우는 26.5%를 차지했다. [출처 : 동아일보 2015.6.9]


무려 86%의 직장인이 슬럼프의 경험이 있고, 그 당시에 무기력과 의욕상실이 찾아왔으며, 약 70%는 어려움을 넘어서 퇴사 충동을 느꼈고, 27%는 실제 퇴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흔히 '기분 탓이니 잠깐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넘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승진이나 고과 면담 같은 개인별 평가의 시기나, 날씨가 쌀쌀해지는 늦가을 계절에 자주 찾아왔던 것 같다. 일단 슬럼프에 빠지면 대처하기가 힘들다. 일하고자 하는 의욕은 나지 않는데, 주위를 보면 다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동료들과 나 자신과 비교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될 것 같아 억지로 자신을 또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슬럼프에 빠진 나를 믿어주고 꺼내 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 pixabay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초반 몇 년간은 슬럼프로 고생했다. 계속 일을 배워가는 단계로써,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입사 1년, 3년, 5년 차에 퇴사 결심의 위기가 온다는 공감대를 다들 가졌었다. 무언가 업무의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슬럼프의 벽이 다가왔던 것이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나도 실제로 다른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다가, 서류면접에서 탈락했던 경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회사가 받아주지 않아서, 이후로 마음을 잡고 다시 회사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다 보니 슬럼프는 몇몇 부적응자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현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이 슬럼프는 현대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옛날 성인들도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논어의 한 부분을 찾아봤다


子曰(자왈) 德之不修(덕지불수)와 學之不講(학지불강)과 聞義不能徙(문의불능사)하며 
不善不能改(불선불능개)는 是吾憂也(시오우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학문을 익히지 못하는 것과, 의(義)를 듣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과, 선하지 못한 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걱정거리다.” 
- 논어 술이(述而)편 3장


공자께서도 자신의 수양에 부족함이 있다고 하시는데, 하물며 평범한 직장인들이 슬럼프 한 번 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슬럼프에 빠졌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을 고치는 것도 내가 우선 그 병을 인정하고, 의사의 치료법을 따르는 게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것보다, 더 큰 병이 되기 전에 정확한 진단을 받아 치료하는 것과 같다. 대부분 운동선수들의 사례처럼, 슬럼프의 원인은 매너리즘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일 때문에, 변화나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게을러졌다고 질책하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한다. 하지만, 일어서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데, 일어서는 게 잘 될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슬럼프를 계속 즐기라는 말은 아니다. 일어서는 게 힘들다면 앉아서 하는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늘 해오던 일이 아닌 색다른 분야의 일을 찾아보거나, 평소 해보고 싶던 취미나 흥미로운 일들을 해보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슬럼프로 흔들리던 입사 초반 시기에, 수작업으로 힘들게 작성하던 생산현황 리포트를 엑셀 프로그래밍을 통해 자동화하는 재미에 빠졌었다. 또한, 지루한 보고서 작성에 힘이 들 때면, 프로그램 코딩을 하며 오류 없이 실행되는 재미를 찾기도 했다. 최근에는 1인 기업으로써 글쓰기에만 전념하느라 생각이 막힐 때면, 그림 그리기 세미나에 참석을 하거나 도형심리검사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머리로 생각을 하는 것도 글과 그림을 적절하게 나누어 본 것이다.


몸이 너무 무리를 하면 병이 나듯,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슬럼프가 온다고 생각한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이라면 슬럼프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며,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나에게 삶의 재미를 주어야 한다. 슬럼프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계속 더 깊이 빠져들 수도 있고, 극복을 통해 더 큰 성장의 길로 갈 수도 있다. 평소와 달리 주눅 들어 있는 나 자신을 낯설게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언젠가는 스스로 다시 일어설 내가 아닌가. 세상 누구보다 나를 믿어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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