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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Aug 10. 2018

왜 게임 번역이 어려운가?

게임 번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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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channel/UCDv0ZRVwcRvI2xfpEh5EPBw/videos


<외국어 편 14>


1. 외국어를 배울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2.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영어 편

3.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결혼으로 배우는 일본어

4.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중국어와 중국문화

5. 외국어와 문화장벽의 상관관계?

6. 외국어 배울 때 콘텐츠 잘 골라야 하는 이유

7. 보면서 배우는 외국어, 이게 최고다

8.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영화란? : 영어 편

9.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영화란? : 일본어 편

10.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영화란? : 중국어 편

11. 왜 번역을 보며 화를 내야 하는가?

12. 좋은 번역이 돈이 되냐고?

13. 왜 번역가를 안 바꿔?

14. 왜 게임번역이 어려운가?


2013년 기대의 신작 '그란 세프트 오토 5 (GTA 5)'를 구매한 저자는 깜짝 놀랐다. 번역이 너무 잘 되어 있었다. 외국 명문대를 졸업한 친구조차 모르는 관용구도 멋들어지게 번역했고, 화면 자막의 길이가 적절해서 읽는데 부담도 없었다. 아니 게임 내의 대부분의 텍스트가 두 번 생각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출처 : GTA V]


물론 눈에 불을 켜고 보면 오역이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 오역 없는 제품은 하나도 없다. GTA 5는 게임 자체도 게임업계에 대한 도전장이지만 번역 퀄리티 자체도 번역자들에 대한 도전장인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번역이 잘 되어있는 걸로 굳이 놀랄 필요가 있는가? 정답은 있다. 


대부분의 게임 번역이 이 수준이기 때문에 [출처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Tango를 탱고라고 번역하고 (Target, 즉 목표물 격추 or 임무 완료가 정답), Fire in the hole (폭발물을 던졌으니 피하라는 지시, 이것저것 던질 때마다 쓰니 '피해'가 적절)을 구멍 안에 발사라고 발 번역하는 상용화 게임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심지어


유적을 가족으로 맞는 전설까지 쓰는 마당에 [출처: 다키스트 던전]

저 정도 번역이 나왔으니 안 놀랄 리가 없다. 그만큼 게임 번역은 여러 가지 문제로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힘든 구조다. 



문제점 1: 환경에 대한 이해


우선 게임 번역의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다. 여긴 맥락을 잡아서 번역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이 존재한다.


게임의 텍스트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시스템, 하나는 대화/시나리오다. 여기서 시스템은 그리 큰 문제가 안된다. 무슨 버튼을 누르라던가, 온라인 로비에 접속하라는 텍스트 등으로 의뢰사가 직접 정한 용어(glossary)가 제대로 되었다는 전제하에 이건 문제없이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대화다. 그리고 이 대화는 게임에 창의적인 시도가 들어가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대화라는 건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달리 진행된다. 게다가 일본어는 화자의 연령/직업/나이에 따라서 달라지며 한국어쯤 되면 여기 더해서 어미마저 달라진다. 모든 대사가 '다'로 이어지지 않고 밥 먹었어? 힘들지? 하는 식으로 맥락에 따라 복잡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의 번역은 영화, 만화, 책 등의 완성된 콘텐츠에선 문제가 안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맥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다. 모든 맥락은 게임 상황에 따라 제어되기 때문이다.


[출처: 메탈기어솔리드V 팬텀 페인]

화면의 캐릭터(아마도 카즈히라 미러)는 '적의 공세는 거의 다 끝났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대사는 아마 전투 상황이 끝났을 때 출력되도록 프로그램된 대사일 것이다. 이렇듯 게임 텍스트는 게임의 특정 조작이 끝났을 때 나오는 대사가 제법 된다. 


하지만 게임 번역 텍스트에는 이런 건 알 바 없이 그냥 한 캐릭터의 대사가 모두 몰린 경우가 꽤 된다. 설령 이를 피하기 위해 상황이 고정된 대사는 대화처럼 수록하더라도 한 캐릭터가 특정 물체나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출력되는 대사는 몰아서 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셜록 같은 게임은 주인공 홈즈가 특정 캐릭터나 증거에 다가갈 때마다 대사가 나온다. 그런데 증거는 그렇다 쳐도 특정 캐릭터가 왓슨이라던가 레스트레이드라던가 하는 캐릭터면 그에 따라 대사를 맞춰줘야 하는데 번역 원문엔 그런 설명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런 대사는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는 한 제대로 번역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번역사보다는 개발사, 유통사 PM의 헌신적으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런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는 가뭄에 콩 나고 수준이고 설령 PM이 알고 있어도 상사가 이를 이해해주고 후작업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주는 경우는 한지민 씨가 여자 친구가 될 확률보다 낮다. 


결국 구조 문제로 볼 수 있겠다. 게임 번역은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플레이하면서 QC를 거쳐야 퀄리티가 올라갈 텐데 회사의 낡은 사업구조 때문에 이런 시간조차 얻지 못한다. 이렇게 우리는 나이프로 사과를 죽이고, 유적을 가족으로 맞아들인다.



문제점 2 : 사업 시스템


이런 건 번역사가 요구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블리자드 같은 경우에는 내부의 QC시스템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못 잡아낼 것 같은 것도 다 잡아낸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 회사는 번역사가 게임 번역에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를 밖으로 내주는 것 외에는 거의 다 들어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의 경우 번역은 우선순위가 낮다. 저런 자료를 전달해주는 것은커녕 기본적인 환경조차 마련해주지 않는다. 여기서 기본적인 환경은 무엇일까? 우선 텍스트 옆의 주석을 들 수 있겠다. 예를 들어 


Allow introduce myself : (Game Boss) pointed gun to Girl


식으로 텍스트가 붙어있다면 번역자는 실수할 확률이 낮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심지어 다국어로 게임을 출시하는 회사조차 이렇게 배려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게 개발사가 아니라 유통사쯤 되면 개발사한테 이걸 부탁할 리가 없다. 그것도 다 돈이니까. 



문제점 3 : 시간과 비용


사실 시간을 여유롭게 주는 회사가 극히 드물다. 우선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게임 개발 작업 스케줄 다 잡아놓고 나중에 남는 '찌꺼기 시간'을 번역 시간으로 잡는다. 그래서 A4 500페이지 분량을 1달 내에 번역해야 하는 기적 같은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경우마저 생긴다. 하루에 17페이지 수준, 절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터져 나온다. 우선 하청문제다. 이번 다키스트 던전 사태에서도 나왔듯 번역 에이전시는 이렇게 무리한 분량을 수주하면 여러 번역사에게 나눠준다. 다만 이렇게 나눠준다면 최종 번역자가 최종 체크를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 자체가 없다. 당연히 나눠준 번역자 수만큼 다양한 개성의 결과물이 나오는데 이게 한 게임에 들어간다. 그래서 캐릭터는 특정 상황에서 말투가 바뀌고, 캐릭터의 이름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트라도스를 많이 쓴다. 트라도스는 번역 프로그램으로써 매크로에 입력된 문장을 자동 번역함으로써 작업 시간을 줄여준다. 예를 들어 Press A button 같은 것이 있으면 커서만 맞추면 자동으로 'A 버튼을 누르십시오'로 번역해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트라도스도 결국 시스템 번역에만 도움이 되지 시나리오 번역엔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시간을 대폭 줄이진 못한다.


번역에 정말 신경 쓰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업체, 발 번역으로 혼난 업체는 QC시스템을 잘 갖춰놓는다. 하지만 이 QC에서도 많은 문제가 태어난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이 QC마저 외주를 주는 것이다. 저자는 초창기에 아르바이트로 이 QC를 맡았다가 급 후회한 적이 있다. 거의 재번역 수준으로 번역이 엉망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엉망이 보였던 이유는 저자가 그 게임 시리즈를 모두 플레이하고 다 꿸 정도의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헤일로보다 분량도 많고 작업도 복잡한 게임에 1/4 정도의 기간만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마니아가 딱 걸리는 건 희귀한 일,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QC에 들어간 시간은 훨씬 적고, 제대로 하려면 재번역 수준이 필요한데 이건 불가능하고, 제대로 QC 하려면 게임을 하면서 체크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절대 주지 않는다. 물론 소소한 오류는 잡을 수 있지만 직접 플레이해야 나오는 오류는 거의 못 잡는다.



문제점 4 : 단가, 노력


한때는 일 때문에 번역사 단가표를 옆에 놓고 살았고 업체 단가도 꿰고 사는데 게임 시장의 단가가 많이 낮은 편이다. 한 예로 저자는 한 자동차 업체로부터 '내부 사정상 제대로 챙겨줄 수 없지만 좀 맡아달라. 잘하면 다음 일은 반드시 주겠다'는 팸플릿 번역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전혀 불만이 안 생겼다. 당시 게임업계 중 가장 번역비 잘 쓰는 회사의 무려 4배 수준이었으니까. 


반면 게임 쪽은... 제일 짜게 주는 회사는 업계 최하위 번역사에게 주는 번역 단가 수준으로 일을 맡긴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즉 그 회사의 일을 에이전시가 하려면 직접 내부에서 하던가, 최하위 번역사에게 반값 이하로 맡겨야 수지가 맞는다.


어지간한 게임 로컬라이제이션 기획 및 번역을 하는 것보다 제조업 관련 매뉴얼, 자동화기기 로컬라이제이션 기획을 하는 게 돈이 더 된다. 이런 기기는 주석도 충실하다 못해 매뉴얼 수준이라 Process 같은 단어가 나와도 상황에 맞게 진행, 작업, 과정 등으로 나눠 번역할 수 있기 때문에 노력도 덜 들어간다.


반면 게임의 경우 직접 해보지 않으면 완벽한 번역이 나오기 힘들다. 여기서 두 가지 희비가 교차하는데 우선 엔씨소프트, 넥슨 같은 곳은 아예 내부에 번역팀이 있다. 왜냐하면 개발 중인 제품을 플레이해야 하는 보안상, 절차상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즉 이런 회사의 번역은 어지간하면 프리랜서/ 부업 번역자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 외에 나머지 번역이 남는데 우선 보안의식이 강하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야 하는 걸 아는 업체는 단기계약직으로 고용한다. 다만 담당분야가 넓은 번역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계약직 급여보다는 차라리 (돈을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영세 출판사의 출판 번역을 하는 게 돈이 더 될 정도기 때문에 기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설령 게임계에 관심이 있어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다른 번역 군은 기술에 관한 이슈만 접하면 번역 퀄리티가 유지가 되는데 게임은 새로운 형식의 게임에 익숙하지 못하면 손도 못 대는 일이 허다하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 게임할 시간도, 체력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즉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단가가 적으며, 단가를 높게 쳐줄 정도로 시스템이 있는 회사는 내부에서 처리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런 번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유저가 분노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 번역사가 아무리 의식을 갖고 요구해봐야 '시간이 없어 안돼요', '회사 시스템상 어려워요' 같은 답변밖에 못 듣는다. 아니 그나마 이 정도면 양반이다. 대부분은 군소리 없이 번역해주는 사람으로 교체해버린다.


이런 배경에는 '어린애 논리'가 있다. 게임은 애들이 하는 거지라는 논리가 배경에 있고 애들이 그런 거 잘 모른다는 의식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 이상 게임은 아이의 취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닌텐도의 게임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게임은 성인지향이며 게임기 가격이든, 스팀 플랫폼을 구동할 수 있는 PC 가격이든 아이 놀잇감의 가격이 아니다. 이미 주요 유저는 30~40대이며 광고 내용/광고 시간대도 이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이건 모바일 게임 주요 소비자층만 봐도 딱 드러나는 사실이다.


[출처: 다키스트 던전]

이런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느낀 회사가 다키스트 던전의 개발사일 것이다. 현지화 약속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에이전시에게 맡겨서 이게 하청에 재하청을 거쳤고 결국 번역 역사상 길이 남을 발 번역이 되었다. 문제는 게임의 소비자는 성인이었고, 이에 분노해서 조직적으로 평점 테러를 하는 바람에 다른 나라 매출에도 타격이 가버린 것이다. 


이 현상은 두 가지를 증명한다.


1. 게임은 더 이상 아이들만의 놀이가 아니다.

2. 번역에 신경 안 쓰면 소비자가 반발하고 이게 타격을 준다.


게임 번역은 많이 어렵다. 하지만 이를 잘 알고 맞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가 분명히 있다. 결국 발 번역 게임을 내는 회사가 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려면 소비자가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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