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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Sep 06. 2023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 숙종실록

정통성과 뒤집기 전략

 대신들의 위세에 눌려 미처 자신의 뜻을 펼치기도 전에 승하한 현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숙종, 무려 14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섭정을 하지 않았다. 어린 숙종이었지만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기에 친정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효종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정통성’이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적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하는데 조선 왕들을 몇 안 되는 적장자 승계에 해당하는 왕이 바로 숙종이기 때문에 성리학으로 무장한 그 어떤 세력도 숙종이 가지고 있는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거나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경신환국을 통해 군강신약의 초석을 마련했고,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고 희빈 장 씨를 중전으로 삼기 위한 구실로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기 위해 기사환국을 단행했다. 그리고 새로운 중전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숙종은 다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기 위해서 갑술환국을 단행했다. 자신의 애정 때문에 두 번이나 환국을 거행했던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던 숙종이다.


 4대에 걸쳐 선대왕을 섬기며 조선 유교정치와 붕당세력의 거목이었던 송시열을 유배 보내고 사약을 내릴 수 있는 왕은 숙종밖에 없었고 속으로 불만을 가졌을지언정 그 누구도 입 밖으로 송시열의 사사에 대한 불만과 항소를 할 수 없었던 것도 정통성을 등에 업은 숙종의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숙종의 환국 정치 파트너로는 남인이 최상이었다. 서인 세력에 눌려 양송 같은 걸출한 인물이 이끄는 산당세력에 비교할 수도 없던 남인은 효종 재위시절 정계를 장악할 수도 있었지만 급작스런 효종의 죽음으로 기회를 누릴 수 없었다. 현종 대에는 더욱 가속화된 당쟁으로 진정한 군약신강의 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숙종 대에 이르러 드디어 숙적 송시열을 제거함으로 서인 세력을 장악하고 권력의 중심부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권력의 달콤함도 잠시 환국으로 인해 숙종의 뒤집기 전략으로 남인은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지게 된다. 뒤집기의 달인 숙종이었지만 역사적 폐자에 대한 신원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사대부로부터 환심을 살 수 있었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공정왕으로 불렸던 정종은 숙정 때에 이르러서야 묘호를 올릴 수 있었으며 방석과 방번 형제에게도 대군의 위호를 돌려주었고 노산군으로 무덤마저 찾기 힘들었던 단종을 추상하였다. 소현세자빈 강 씨도 신원함으로 자신에게 있는 정통성을 기반으로 왕실의 존엄함과 정통성을 새롭게 부여하거나 회복시켰다.


 아버지 현종은 온천행군을 빌미로 청나라의 의심을 사지 않는 군사 훈련을 하였다면 숙종은 능행을 빌미로 해서 군사훈련을 하며 효종의 북벌 정책을 계승하는 모습을 보이며 삼전도의 굴욕을 잊지 않고 궁궐에서 이동하기에 거리가 먼 남한산성 대신에 북한산성을 정비함으로써 국방 분야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국방력 강화에 힘썼지만 정작 군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의 왜란과 두 번의 호란으로 황폐해진 국토는 숙종 때에 이르러 농사기술의 발달로 수확량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현종 때와 같은 가뭄으로 인한 기근도 없어서 백성들은 삶은 점차 윤택해지기는 했지만 지배세력의 수탈은 변함없었다. 고구마와 고추 같은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며 <상평통보>와 같은 화폐가 원활히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숙종 때의 일이다.


 강력한 정통성을 기반으로 어린 나이부터 수렴청정 없이 직접 친정을 하면서 자신이 마음먹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했던 숙종은 카리스마와 로맨스를 동시에 가진 군주였지만, 인현왕후를 폐위했던 환국과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는 결정을 직접 내리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만연했던 뇌물 수수 협의에 대한 조사는 강력한 모습이 아니라 우유부단한 처사와 함께 확실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이중성의 대가 중종의 모습을 보기 이도 했다.


 경쟁과 지지, 배신이 남무 하던 정치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했던 몇 안 되는 왕으로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 숙종은 뜨거운 사랑의 대상인 희빈 장 씨를 위해 왕후를 바꾸는 역사적 사건을 단행하기도 했던 조선 최고의 사랑꾼이기도 했다. 이런 숙종과 희빈 장 씨 사이에서 출생한 경종, 훗날 또 다른 번영기를 이룩하였던 영조시대의 기반을 만들어 준 것도 숙종의 뒤집기 전략을 통해 자신의 후손들이 강력한 왕권을 가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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