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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Aug 17. 2023

쉼표 하나. 지나온 길의 이정표

그동안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일이 기본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아직 모호해  보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의 요소들과 진행 과정을 좀더 세세하게 구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여러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일과 이야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잠깐 멈춰서 그동안의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이정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열세번째 길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방법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말을 취소하고 <논고>의 진술 형식을 빌려 요약했습니다.  



1. 세계는 일어나는 일들의 모임이다. (11)

1.1. 세계는 통합된 하나이거나 분리된 여럿일 수 없고, 하나이면서 여럿이어야 한다. (6, 7)

1.2. 세계는 사물들의 모임도 아니고, 사실들의 모임도 아니고, 생성들의 모임이다. (13)

1.3. 일은 지난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해 가고 있다. (16)

1.3.1. 일이 일어나는 바탕은 먼저 일어난 일들이다. 세계의 확고한 바탕의 의미로서의 실체는 일이다. (22)


2. 우리는 일들이 진행하는 이야기를 모아서 엮고 있다. 

2.1. 일은 정지된 그림에 담길 수 없고, 생생한 이야기에 담긴다. (13)

2.2. 생명체는 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이야기로 엮어서 활용하는 일의 모임이다. (21)

2.2.1. 삶의 이야기가 합쳐지면 출처를 알기 힘든 본능이나 습관이 되고, 개별적으로 남으면 사례로서의 기억이 된다. (21)

2.3. 철학은 삶과 세계의 이야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엮어서 활용하고자 한다. (3, 4)


3. 일은 시도와 결과의 리듬으로 진행한다.

3.1. 시도는 다양하지만 불확실한 상태로 전개되고, 결과는 시도의 일부만을 확고하게 드러낸다. (17)

3.1.1. 시도와 결과의 리듬은 다시 네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24)

먼저 어떤 뚜렷한 결과는 자체적으로 확장해 나가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한다(펼침).

시작된 일은 가까운 일들과 만나면서 다양성은 확대되고 새로운 효과들을 발생시킨다(만남).

만나는 시도들의 내용에서 함께 실현하기 어려움이 쌓임에 따라 확장은 끝에 이른다(한계).

다양한 시도들 중 일부는 뚜렷한 결과가 되고 일부는 미완결된 시도로 남는다(결과)

3.2. 일의 리듬은 일정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22)

3.2.1. 물체에서 시도와 결과의 리듬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일어난다. (22)

물체는 보통 뚜렷한 결과, 희미한 시도, 만남, 한계에서 결과로 진동한다. 만남과 진동의 단조로움과 빠름으로 인해 그대로 머물러 있어 보이는 특징을 갖게 된다. 

3.2.2. 미완결된 시도와 기록들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 일을 시도한다. (21)


4. 일을 통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일의 차원이라 할 수 있다.(25)

4.1. 일은 다양하면서도 확고한 일의 진행을 지향하는 가치의 차원으로 도약한다.(2024, 25)

4.2. 일의 시도는 다양한 시도로 번져 나가면서 상상의 차원으로 도약한다.

4.3. 어떤 일의 시도는 다른 시도들과 만나면서 공간의 차원으로 도약한다.

4.4. 다양한 시도로의 불확실한 확장은 한계에 이르고 결과를 도출하는 시간의 차원으로 도약한다.  


5. 일과 이야기는 분리되고 합쳐질 수 있다. (23)

5.1. 일의 시도는 불확실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성격이 있는데, 곧바로 실현되지 못한 시도는 일의 진행과 분리되어 이야기 상태로 다음 일을 시도한다.

5.1.1. 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실현되지 못하고, 구체적인 일의 안내자로 작동하면서 일한다. 

5.1.2. 이야기는 일과 분리되면서 구체성을 잃는 대신 현실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는다.


6. 새로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처럼 이야기는 다시 쓰여져야 하고, 이야기 놀이는 계속되어야 한다. (4)

6.1. 우리는 말하기 힘든 느낌적인 느낌에 대해 새롭게 말할 수 있다. (1)



요약해 놓고 보니 체계적이긴 하지만, 

잠깐 쉬며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시험 공부하는 듯한 글이 되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제한된 종이에 <논고>와 같은 압축되고 난해한 책을 쓰게 된 상황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글쓰기는 너무나 편리합니다. 

더 편리한 만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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