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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Mar 21. 2020

만나진 못해도 연대는 합시다.

강원 옥천초 운산분교 박민석 선생님

 2월 중순, 책상과 의자를 닦았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닦은 적은 없었다. 교실 바닥이 실내화를 벗고 들어올 수 있는 장판으로 되어 있어서 그랬는지도, 처음 작은 학교로 전입한 나로서는 작은 일에도 괜히 정성을 기울이고 싶어 그랬는지도 모른다. 책상, 의자의 위아래와 다리, 바닥에 닿는 고무 부분까지 말끔히 닦아 둥글게 배치해 놓은 아홉 개의 책상을 바라보며 책상 위로 동동 떠 있을 아이들의 얼굴과 책상 아래에서 꼼지락거리는 18개의 다리들, 그 앞에 서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3월은 교사들에게 그런 달이다. 

새로운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들, 처음 만나 아직은 서로 어색한 아이들, 그래도 쉬는 시간만 되면 왁자지껄해지는 아이들의 목소리들. 새로운 환경에 아이들을 보내고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의 모습들. 이 모습들을 바라보며 1년이라는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 ‘교사로서의 1년’으로 변하게 된다. 3월의 만남은 ‘교사로서의 1년’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씨앗인 셈이다.     

 3월도 어느새 절반이 훌쩍 넘어선 지금, 나는 텅 빈 책상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과 따뜻한 눈 마주침, 서로 부대끼며 생활하는 학교의 모습은 슬프게도 바이러스 집단 감염과 지역전파의 진원지가 되기 딱 좋은 환경이다. 따뜻한 봄바람마저 바이러스가 포함되어있지는 않은지 걱정하며 온 국민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마스크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2020년은 교사들에게 3월이 가지는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해로 기록될 것이다.

아이들과의 만남과 교감이 있어야 할 3월을 재택근무로 대신하고 있다. 학기 초 교육 활동의 공백을 막기 위해 학부모님 한 분 한 분과 통화를 하고 온라인 플랫폼 등 비대면 방식을 이용한 전혀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교사들에게는 초조하고 예민한 시기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한 장소에 모여서 하는 단체 회의를 많이 줄이고 있다. 서로 만나 눈을 맞추고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카카오톡 채팅 창의 노란색 네모 칸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기분이다. ‘교사로서의 1년’이 시작된 것인지 아닌지마저도 헷갈린다. 교사가 되고 몇 년이 지난 나도 이리 혼란스러운 마음인데, 2020년 3월 1일 자로 첫 발령 받은 신규선생님들의 마음속은 어떨지 가늠해 볼 수조차 없다. 4월에 개학이라고는 하지만 이마저도 상황에 따라 바뀔지도 모른다. 씨앗을 뿌리기는 고사하고 씨앗을 어디에다가 얼마 동안 보관해야 할지도 막막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은 바이러스를 차단하는데 효과적인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파편화된 개인으로만 남아있으면, 그래서 막연한 불안감을 공유하지 못하고, 구성원들 간의 심리적 거리마저 멀어지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균열과 갈등이 생겨날 것이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학생, 교사, 학부모들은 서로의 입장과 불안감을 공유하고 소통을 해야만 한다.      


 다행히 이러한 노력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주변의 선생님들은 개학이 연기되자, 주 2회 학생들의 건강을 체크하라는 사무적인 지침이 내려오기 이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사들이 불안한 만큼 학부모들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에 대해 미리 알고 있으면 좋은 점은 없는지, 일을 나가셔야 하는 부모님들에게는 아이들을 맡겨놓을 곳이 없어 더 걱정이지는 않은지 함께 걱정하고 불안감을 공유하며 공감했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교사의 전화에 당황스러워할 법도 했지만, 학부모님들은 반가워했다. 전화를 받는 내내 웃음을 터뜨리시는 아버님도 계셨고, 학습과 관련된 걱정을 털어놓으시는 부모님도 계셨다.     


개학 전, 미리 아이들과 관계를 형성하려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네이버 밴드나 클래스팅 등 SNS를 통해 아이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주는 선생님도 계셨고, 아이들이 집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미션을 통해 라포를 형성하려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학급 운영비를 활용해 집에서 할 수 있는 교육 관련 만들기 키트를 사서 택배로 보내주는 것이었다. 학부모님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이들이 마치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은 것처럼 정말 좋아했다고 했다. 

교사들끼리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상으로라도 서로를 다독여주고 생각을 공유하는 중이다. 

개학일 전까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교육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지하고 한 덩어리로 굳게 뭉친다. 파편화된 개인으로 존재하는 교사가 아닌 생각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로 묶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교사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규선생님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특히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하고 전화로 학부모를 만나야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신규선생님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경력이 있는 선생님들은 선배 교사로서 신규선생님들을 위해 경험을 공유하고 수시로 그들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학교 내에서 그러한 문화가 만들어지면 더욱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교사 단체에서 그러한 플랫폼을 제공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전례 없는 상황이다. 누구나 다 불안하고 누구나 다 예민한 시기이다. 바이러스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이상 사회적 거리 두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불안함과 초조함의 근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염병만 돌면 민심이 야박해지던 과거와는 달리 우리는 불안감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만나지는 못해도 연대하자. 학부모와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전화를 건 순간, ‘교사로서의 1년’은 이미 시작되었다. 



들어가는 글_새넷 2020 특별호


1. "우리집에 ON 우리반", 경기 대덕초등학교 구자혜 선생님


2. "교사로서, 내 삶의 주인으로서", 부산 금성초등학교 백점단 교장선생님


3. "아이들이 있어야 학교다." ,경기 남수원중학교 강문영 선생님


4. "만나진 못해도 연대는 합시다.", 강원 옥천초 운산분교 박민석 선생님


5.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우리는", 경기 선행초등학교 유향우 교감선생님


6. "담임교사인 제가 알아야 할 것이 있을까요?", 제주새넷 이문식 선생님


7. "경기새넷 희망백신", 경기새넷 김명희 선생님


8. "충남교사 지혜모으기", 충남 우강초등학교 김대현 선생님


9. "코로나19로 인한 돌봄상황과 온라인학습에 대한 의견", 서울 상천초 이준범 교장선생님


10. "새로운학교네트워크 휴업일지", 새로운학교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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