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제국 리스본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_^
연재했던 글은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1599년 가을, 런던 시장에서 후추 가격이 1파운드당 3실링에서 갑자기 8실링까지 폭등했다. 이 같은 가격 폭등의 배후에는 향료 무역을 독점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있었다. 유럽인이 동양으로 가는 새 항로를 발견 한 후 광활한 바다는 부를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해상에서의 실력을 앞세워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가 차례로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 <기업의 시대> / CCTV다큐제작팀 지음 -
“웃왓! 저기다!”
우릴 태운 15번 트램이 벨렘지구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웅성인다. “행님, 저건 뭔데 저렇게 크나요?” 길이만 300미터. '우와 크다크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그 옛날 대항해 시대 때, 선원들이 항해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자리를 기념에 지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이 해상무역으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당시, 무역 품에 대한 세금이 이 수도원 건축자금의 원천이었다.
그렇게 리스본 항구를 통해 인도로부터, 아시아로 부터, 그리고 저멀리 남미로 부터 진귀한 물품들이 들어왔을 것이고 그에 따른 세금은 따박따박 매겨졌을 게다. 결국 웅장한 건축물의 규모는 당시 해양 제국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 “우와~ 행님. 항해하기 전날이면 막 설레기도 하고 별생각이 다 들었겠네요. 저도 이번 여행 전날 설레서 잠 못잤는데 말이죠. 하하” 처룽이가 넉살좋게 얘기한다. “아니지 않아? 대항해 시대 항해라면 목숨걸고 가는 걸텐데.” 지노말이 맞다. 인도까지가는 바닷길이 뚫려 있지 않던 시절, 몇 달간이나 항해를 떠난 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할 당시에도 많은 선원들이 죽어나갔다. 처음 항해를 시작할 때 175명이었던 선원들이, 다시 리스본에 왔을때는 44명 뿐이었다고 하니 생환율이 절반도 안되는 셈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미지의 세계는 공포의 다른 말이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공포까지야. 형, 어차피 사는게 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지. 바스코 다 가마는 그렇게 항해한번 다녀와서 몇 백년이 지나고도 이렇게 길이길이 기억되는거 아냐.” 지노가 받아 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몸소 삶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업가라 그런지 생각이 남다르다. “오~ 그럼 말야. 만약에 넌 대항해 시대에 태어났으면 막 보물찾아서 떠난 선원이 됐겠다. 그치?
“미쳤어. 그래도 그건 너무 하이 리스크 잖아. 하하” 그런가? “처룽아 셀카 그만 찍고 빨리 가자” “네 형님~” 인도라고 하면 커리 전문점만 생각나는 나에게 여전히 멀기만 한 나라, 인도. 그곳으로가는 길목에서 항해사들은 무슨생각을 했을까. 그 옛날 선원들이 느겼을 두려움과 걱정스러움과 결연함과 대담함과 호기심과 또 약간의 셀렘의 체취가 어쩌면 이 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곳이 단순한 수도원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형! 사진좀 그만 찍고 이제 나와!” 망상과 감상속에서 이 기분이 담긴 사진을 찍으려는데 지노가 재촉한다. 만약, 대항해 시대때 지노와 내가 태어났다면. 그리고 지노가 선장인 배에 내가 올랐다면, 나는 아마 노를 증기기관처럼 저어야 했을지 모른다. 다행히 현실은 대항해시대도 아니고 지노가 모는 배도 없다. 아, 근데 우리 여행의 선장은 저자식이 맞는 것 같다. “아랐어 인마!”
제로니무스 수도원 길 건너편에는 ‘벨렘탑’이 있다. “행님. 근데 꼭 저기 안에 들어가야 하나요?” 안에도 별개 없을것 같다는 처룽이의 말이다. 테주강을 끼고 있는 벨렘지구에서 이 탑은 등대이자 요새역할을 했다. 망망대해 대서양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관문이자, 새로운 세상을 보고 돌아온 항해자들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했다. 낭망과 그리움과 반가움이 버무려져 있는 항해도시 리스본. 바로 이 곳의 상징물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탑안에 꼭 들어와 보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아! 여기 지하가 감옥이야!” 사실 벨렘 탑을 집접 보고 싶었던 이유중에 제일 큰 건 바로 이 지하 감옥 때문이었다. 주로 정치범을 수용했다던 지하 감옥은 만조 때 강물이 감옥안으로 들어찼고 간조때 물이 빠졌다고 한다. “아니 그럼 행님, 비 많이 내리는 날엔 수장인가요?” 그랬다. 이 감옥에 있는 이들은 그렇게 하루에 두번씩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행님 그럼 빨리 나가시죠 테주강 넘칠것 같아요.” “그래 빨리 가자 크크크” 실제로 보니 눈높이로 넘실거리는 강을 보는 것 자체가 공포다. 어느 시대 어느사회나 정치범에 대한 처벌은 혹독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잃어 버리는 것일테니. 지하감옥의 혹독한 처벌은 바로 온세상을 향한 경고나 다름없는 것 아니었을까.
“뭐가 그렇게 무서웠길래?” 지노가 시크하게 묻는다. 그러게. 지킬게 많은 이들은 무서워 해야 할 것도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무서워 하는게 없나? “무슨 소리야 형, 비행기 타는것도 엄청 무서워 하면서.” “크하하 그런가?” 테주강을 끼고 걸으며 시덥지 않은 소리를 주고 받는다.
한여름이지만 강바람은 시원하기만 해 무슨 말을 해도 다 용서해 줄것만 같다. 그 옛날 항해를 떠났던 이들도 이 곳에서 같은 강바람을 맞았을 터였다. 대한민국보다 작은 나라 포르투갈. 유럽의 변방이었지만 해양제국으로 온 세상을 주름잡던 이들의 시작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생각하니 바람마저도 특별해 보였다.
테주강을 따라 걷자 얼마 못가, 커다란 탑이 보인다. 벨렘지구의 또 다른 스타. 벨렘탑과 양대 산맥으로 리스본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예외없이 등장하는 탑. 바로 발견 기념비이다. 범선의 앞부분을 잘라 만든 듯한 탑에는 항해 영웅들이 조각되어 있다. 해양왕 엔리케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500년 전 포르투갈의 아성은 실로 대단 했다. 겨우 인구 100만, 한국보다도 더 작은 유럽의 구석 나라. 그곳에서 인도로, 동남아시아로 일본으로 그리고 남미로 가는 바닷길을 개척했다.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곳곳에 식민지 까지 개척하며 인류 항해사를 새로 쓴 작은거인같은 나라라고나 할까. 그러한 밑바탕에는 당시의 건조술, 항해술, 관측술 등의 과학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런 밑바탕을 깐 사람이 바로 엔리케왕자인게다. “아~ 형 그래서 이 사람이 인도에 다녀온거지?”
아니다. 엔리케는 우리나라의 이순신장군 만큼이나 포르투갈에서 칭송받는 사람이지만 항해길을 직접 뚫지는 않았다. 그 초석을 깔았다고나 할까. 항해학교를 만들고 실질적으로 먼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흩어져 있는 지식들을 모아 기술을 집적하고 후학을 양성한 사람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아 행님. 그럼 이 사람 아니었으면 진짜 대항해 시대의 포루투갈이 없었겠네요?”
“글쎄.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 하하.” 지중해 무역의 변방에 있었던 포르투갈. 게다가 이슬람 상인들이 북아프라카에 까지 진출하며 득세하던 배경을 생각해 보면, 사실 먼 바다로 나가는것 이외에 달리 선택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직장에서 몰릴대로 몰려, 도저희 휴가를 떠나지 않으면 안된 형같이?” “크크크 그렇다고 볼수 있네."
“어 행님! 여기좀 보십쇼! 여기 우리나라도 있습니다."
발견 기념비 앞 광장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다. 대항해 시대때 정복했던 나라들을 표시한 지도랄까. 우리나라도 어렴풋하게 그려져 있다.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남겨 놓은 이곳에 서자 기분이 묘하다. 사실 포르투갈 입장에서야 한 때 영광스러운 시간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지만, 반대로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입장에서야 두고두고 분해 할 상처일테니 말이다. “으흠 15~16세기면 우리나라는 뭐지?”
“뭐긴, 16세기 말에 임진왜란 시작됐으니까... 뭐 편안하진 않았겠다.” 그러니까 이들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범선을 이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항해를 하고 식민지를 개척했던게다. 포르투갈이 그 때의 찬란했던 문화를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하는게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누구나 자신의 최고 시절을 기억하며 살 듯, 좋은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듯한 리스본의 맨얼굴을 본 느낌이었다. 언젠가 나도 길고 긴 시간이 흘러 과거를 돌아봤을 때 “으음~ 그땐 그랬지.”라며 씨익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면. 그 중에 이 곳 리스본에서의 여행이 포함될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그렇다면 난 두고두고 추억할 최고의 시간을 지금 보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의미에서 여기서 점프샷 한장 찍을 까?” 대답은 언제나 같다. 콜!
/ 다음 편 계속 /
1화: 프롤로그. 나를 여행가라고 소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화: 조금 느린 여행 준비
3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4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2)
9화: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10화: 달동네 꼭대기 '오래된 창문'
11화: 우연이 즐거운 이유
13화: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아
14화: 신트라! 왕궁보다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