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Soo Seo Jan 27. 2016

#07. 에그타르트 끝판왕,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렘

리스본 음식특집 - Pasteis de Belem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_^ 
연재했던 글은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저긴가? 저기저기?!"

길게 늘어 선 줄을 보니 분명 저기가 맞는 것 같다. 에그타르트의 끝판 왕. '꽃보다 할배'에서 신구 할아버지도 반한 바로 그 집. 리스본 맛집의 최고봉 '파이테이스 드 벨렘'이다. 리스본에 와서 여길 들르지 않았다면 리스본에 온 게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리스본 필수 맛집이라고나 할까. 1837년부터 5대째 이어 온 이 집은  여행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로부터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파스테이스Pasteis라는 말은 Pastel의 복수형. 밀가루 등의 만죽을 만들어 속에 내용물을 넣는 방식의 파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해서 Pasteis de Belem은 '벨렘의 파이(?)’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마무시 한 맛집의 명성과는 달리 심플한 이름이다. 


리스본 최고 맛집, 파스테이스 드 벨렘. 긴 줄 제일 뒤에 서면 여행 초짜

마침내 도착한 파스테이스 드 벨렘엔 역시 명성대로 긴 줄이 이어져있다. 흡사 아이돌 콘서트를 기다리는 팬클럽 같은 줄이랄까. 이 땡볕 아래에서 오직 에그타르트 한 조각을 위해 이런 인내를 발휘한다니 그런 줄을 보고 있자니 더 구미가 당긴다. 사실 이 줄을 보고 줄 제일 뒤 쪽에 터덜터덜 자리를 잡아 서면 여행 초짜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절대 줄을 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 줄은 포장을 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안에서 앉아서 먹을 생각이라면 줄은 무시하고 거침없이 실내로 들어가면 끝.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들은 주구장창 땡볕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사실 이건 묵고 있는 리스본 민박집 사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꿀팁이었다.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도 긴 줄 뒤에 서 있지 않았을까. 일단 들어선 실내에는 좁은 입구와 달리 개미굴처럼 이방 저방 수십 개의 식탁이 들어차 있다. 그렇게 개미굴을 탐험하다 빈 탁자에 얼른 앉으면 먹을 준비는 다 된 것.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오는데, 먹고 싶은 만큼 숫자를 외치면 된다. “텐!” 우선 10개만 먹어보기로 한다.  


“와 진짜 왜 이거 먹으러 리스본에 온다고 하는지 알겠다!"

음식에 관해 유난히 엄격한 기준을 가진 지노가 감동을 하며 말한다. 겉은 바삭한 페스츄리의 느낌인데, 속은 계란의 부드러움이 녹아들어 있다.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양극단의 서로 다른 맛이 입속에서 퍼진다. ‘빵pao’이라는 말은 포르투갈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혹시 에그타르트를 처음 맛본 조선인이 빵~ 감동하며 지은 건 아닐까. 지금 먹어도 놀라운 이 맛을 조선시대 누군가가 상투를 틀고 먹고 또 먹었을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한판 더?"

레슬링 선수 같은 웨이터가 오더니 “와 너네들 진짜 남자다!!”라며 어깨를 두드려 준다. 나타 Nata! 이곳에서는 타르트를 '나타'라고 부른다. 우린 약에 취해 전쟁에 투입되는 학도병처럼 웨이터와 어깨동무를 하고, 나타 나타를 외치며 에그타르트를 쑤셔 넣었다. 포르투갈은 에그타르트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에그타르트를 안 파는 곳이 없다. 그런데 이 곳에서 먹은 타르트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퀄리티 차이가 있었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내내 그 어디에서도 이런 맛을 다시는 찾을 수 없었을 정도니 말이다.  


사실 요즘 한국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도 ‘나타 Nata’라고 이름 붙인 에그타르트를 파는 곳이 있다. 판교에 있는 한 카페는 포르투갈 원조 에그타르트 집에서 공수해 온 것이라며 포르투갈 사진을 붙여 놓기도 하고 말이다. 한국에돌아와 그런 곳을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를 주문 해먹 어보지만 역시나 리스본의 그 맛이 아니다. 원료를 있는 그대로 공급해 온다 하더라도 물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옆에 앉아서 먹고 있는 사람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리스본이라는 도시의 낭만스런 분위가 없다. 그렇기에 원본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는 쉽사리 복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그만 좀 먹어라. 너 화장실에서 계란 낳겠다.”

꾸역꾸역 먹고 있는 지노에게 한마디 하자 웃음이 터진다. 사실 이렇게 맛있는 에그타르트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도사들이 덕이 크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수도복을 빳빳하게 다리기 위해서 계란 흰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일종의 풀 먹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흰자만 사용하다 보니 자연히 노른자가 남게 됐고, 그 노른자의 사용을 위해 에그타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 노른자에도 수도사들의 기도가 담겨 있었던 탓일까. 대를 거듭하며 지금과 같이 뭇사람들의 입맛을 매료시키는 맛으로 완성되어 왔다고 한다. 


하나에 1 유료가 조금 넘는 금액. 포르투갈의 물가를 생각해 보면 결코 싼 게 아니지만, 하루에도 2~3만 개의 에그타르트가 팔린다고 하니, 이곳이 과연 닭들의 무덤이라 불릴 만도 하다. 사실 맛도 맛이지만 대를 이어 온 자부심과 수도원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버무려져 이곳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아닐까. 


에그타르트 하나에 시커먼 장정들이 뭐 이리 호들갑이냐 싶을 수도 있으나 그 짧은 새, 리스본의 수도사도 돼 봤다가 에그타르트를 수입하는 대박 부자도 돼 봤다가, 으하하 떠들며 웃기까지 했으니 남는 장사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상상보다 더 좋은 건 상상할 필요도 없이, 우걱우걱 온전히 맛에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이것이야 말로 여행이 줄 수 있는 참 매력인 듯하다. 그 아무리 똑같은 에그타르트를 서울에 들여온들 이 시간만큼은 들여오지 못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사소한 듯 보이는 바로 그 짧은 시간. 그 찰나를 위해 우리는 그렇게  여행을 떠나는지 모르겠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 - 


/ 다음 편 계속 / 







 1화: 프롤로그. 나를 여행가라고 소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화: 조금 느린 여행 준비

 3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4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2)

 5화: 리스본,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즐거움

 6화: 리스본의 아침, 온세상의 채도를 높이다

 7화: 대항해 시다의 로망을 간직한 도시, 벨렘지구

 8화: 에그타르트 끝판왕,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렘

 9화: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10화: 달동네 꼭대기 '오래된 창문'

11화: 우연이 즐거운 이유

12화: 무한한 일상 속, 유한한 휴가를 대하는 자세

13화: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아

14화: 신트라! 왕궁보다 골목




이 글의 풀스토리! 출간된 책 보러 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06. 대항해 시대의 로망을 간직한 도시, 벨렘지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