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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KI Jun 12. 2016

#15.신트라! 왕궁보다 골목

동화 속 예쁜 성 신트라 왕궁, 페나성, 무어성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이 드.디.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_^ 
연재했던 글은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아니 하배우 진짜 우리랑 같이 갈 수 있어!?"

리스본에서 우연히 만난 하배우(https://brunch.co.kr/@tavelove/21). 혼자 포르투갈을 여행 중인 그녀는 사실 오늘부터는 우리와 헤어져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바로 가 먼저 귀국. 그리고 우리는 신트라를 거쳐 오비두스, 나자레 등 포르투까지 연결된 소도시들을 여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 길을 가기로 되어있는 오늘 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같이 가지 뭐 까짓꺼! 재밌을 것 같아!” 그녀가 일정을 바꿔 우리와 동행하기로 마음먹은 것. “우왓 대박이다!” 그렇게 화통한 하배우였지만 실상은 어젯밤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다고 한다. 다음 도시에 예약한 숙소며 버스 편이며 모두 날려야 할 판이니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탈한 그녀는 숙소비용을 아끼려 16인실 호스텔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처럼 재밌는 여행 동행을 만났으니까 이만하면 남는 장사 아냐! 하하.” 재간둥이 처룽이가 또 넉살 좋게 받아친다.


똬리트는 양갈래 길. 어디로 가나요?

“자자 그럼 빨리 타자!”

하배우가 동행한다니 우리 일행은 이제 나, 지노, 처룽을 포함해 네 명으로 늘었다. 네 명이 탑승할 수 있고, 캐리어도 실을 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매우비싼)의 차도 빌렸겠다 이제 맘 편히 자동차 여행을 즐기기만 하면 끝. 우리 셋이 여행할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않고 차에 올라 마음껏 달려 보려는데 “아형! 거 좀 앞으로 붙으면 안 돼?” 내 안전운전에 지노가 딴지를 건다. 해외에선 원래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면서 신뢰감 있게 드라이빙하는 게 진짜 고수인데, 여행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이 꼭 이런다.


“아형! 그냥 내가 운전할게! 답답해서 못 보겠네.” 그렇게 난폭운전의 아이콘 지노가 핸들을 잡는다. 이제 우리 차는 해골바가지가 그려진 검은 깃발은 올리고 캐리비안해로 떠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진짜 해적처럼 온 얼굴에 사포 같은 수염이 자라는 지노의 외모가 더욱 그럴싸 보인다. “지도나 좀 봐줘!” 지노가 오롯이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난 닥치고 구글어스를 찾는다. 해적에 나포된, 지혜롭지만 폭력을 싫어하는 주인공처럼. 그렇게 우리의 해적카가 향한 곳은 아쉽게도 캐리비안은 아니고 바로 ‘신트라'라는 곳! 산꼭대기 아기자기 한 성들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 신트라에 도착해 보니, 어떻게 이 산 꼭대기에 성을 쌓았나 싶다. 산등성이를 따라 무어 성의 성벽이 보이고, 그 아래로 페나성, 신트라 왕궁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무어 성의 경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8~9세기경 쌓아 올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 후로도 12세기 신트라 왕궁, 19세기 페나성 등이 만들어졌으니 이곳 신트라는 세기를 거듭하며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해나갔던 것 같다. 이렇듯 신트라에는 여러 성들이 있지만 그중의 진수는 ‘페나성’이 아닐까 싶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그야말로 동화 속 공주님이 살고 있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외관. 지금까지 내가 본 성중에서는 가장 러블리한 곳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근데 말이야. 이 많은 벽돌들은 산꼭대기까지 어떻게 들고 온 거지?” 예쁜 성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던 하배우가 입을 열었다. 사실 차로 올라오기도 가파른 언덕에 성들이 모여있다니, 그 건축재료는 어떻게 이곳까지 모두 가져왔을지 궁금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행님, 그거 뭐가 있겠어요. 그냥 행님 같은 실무자가 죽도록 옮겼겠죠 뭐. 행님 일하는 것 보면 그것도 기적이에요. 아침부터 밤까지 화분처럼 앉아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거북목으로 여행하시잖아요.”


자기는 아니라는 듯, 고깃집에서도 일하느라 노트북을 켜놓던 처룽이가 말한다. 생각해 보면, 처룽이 말처럼 우리가 회사에서 죽도록 일하는 게 저런 성을 쌓는 것과 다를게 뭐 있나 싶다. 일상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마법사들이 또 다른 일상을 보고 감탄하고 있는 것 아닐까. 뭐 그런 마법사 박람회라도 참여한 듯 우린 호들갑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어?! 저긴 어디지?” 하배우가 신트라 성 맞은편 골목길을 가리킨다. 관광지이다 보니 식당들이 몰려 있는 곳인 것 같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예쁜 소품과 액세서리를 파는 골목이 이어진다. 역시 배우라 예쁜 것을 찾는 직감이 있나. 한참 골목을 헤매다 ‘신트라’라는 이름이 박힌 컵받침을 샀다. 나는 컵을 쓸 때 과연 받침을 사용한 적이 있었던가 의문이 들었지만 신트라라는 이름이 묘한 마법 같은 힘을 발휘했다. 그렇게 우린 작은 액세서리를 보며, 코르크 엽서와 와인잔을 보며 골목을 돌았다.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서로를 불러 세우며 그렇게 골목을 걸었다.  


“어때?”

“뭐가!?” 가끔 지노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묻곤 한다. 되물어보니 화려한 성보다 이곳의 매력이 어떠냐는 물음이었다.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상황을 투영해 세상을 보곤 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피해 이곳 포르투갈까지 휴가를 왔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은 화려한 페나성보다는 이 골목에 맞닿아 있다.


“그냥 난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도는 여기가 더 좋은데?” 지노의 말처럼 사실 나도 그렇다. 어쩐지 페나성이 화장을 짙게 한, 거리감 있는 전시물의 느낌이라면 이곳은 손에 잡히는 친근한 느낌이었다. 성벽을 쌓거나 성의 허드렛일을 하는 일반인들이 평범한 하루를 이어 가고 있을 것만 같은 골목들. 어쩌면 그 옛날 무어인들이 성벽을 쌓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민초들의 삶의 터전 같은 곳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행님 무슨 말이세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봐야죠!”

처룽이가 신트라 왕궁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고 한다. 처룽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마뉴엘 양식의 12세기 왕궁에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누구보다도 의욕적이다. 아마도 새로운 우리 여행 멤버 때문인가. 그렇게 처룽이는 신트라 성 내부가 보고 싶다던 하배우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지노는 성 밖 계단에 앉아 건너편에 있는 골목들을 바라봤다.


성 주인은 이제 없고 왕조는 멸망하며 왕궁은 텅 빈 곳이 되었지만, 이 골목길은 오늘의 삶을 살고 있다. 기념품을 팔고 또 그것들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성은 박제되어 과거를 전시해 두고 있지만 이 골목은 현재도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는 어제와 같은 평범한 일상 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먼 다른 나라에서도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게 또 묘하게 위로가 된다. 신트라 왕궁 그리고 페나성도 좋지만 굳이 이곳까지 와서 이 골목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였다.


“야 지노야 근데 처룽이 이쉐끼 왜 이렇게 안 오지?”

“그러게 그냥 차 가지고 가버릴까."

“크크크. 일단 주차 한 자리만 옮겨 놓자."


각자 이곳을 보는 이유는 다르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여행이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어느덧 신트라에는 해가 지고 있었고 지노는 배가 고파 왔다. 한참만에 나타난 처룽이는 부쩍 말이 많아졌고 하배우는 신트라 왕궁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만하면 새로운 동행과의 여행은 대성공이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 방문객 중-


/ 다음 편 계속 /


무어 성





 1화: 프롤로그. 나를 여행가라고 소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화: 조금 느린 여행 준비

 3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4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2)

 5화: 리스본,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즐거움

 6화: 리스본의 아침, 온세상의 채도를 높이다

 7화: 대항해 시다의 로망을 간직한 도시, 벨렘지구

 8화: 에그타르트 끝판왕,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렘

 9화: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10화: 달동네 꼭대기 '오래된 창문'

11화: 우연이 즐거운 이유

12화: 무한한 일상 속, 유한한 휴가를 대하는 자세

13화: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아

14화: 신트라! 왕궁보다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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