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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Soo Seo Dec 09. 2015

#04. 리스본,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즐거움

이렇게 불법 체류자가 되고 마는 거니?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_^ 
연재했던 글은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야~ 드디어 도착이다. 리스본!”   


12시간 플러스 3시간. 인천에서 출발해 프랑크프루트를 거쳐 이곳 리스본까지 장장 15시간을  날아왔다. 낮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잠만 자기도 애매하고, 영화만 보기도 지루하고, 책만 읽고 있자니 ‘토지’ 시리즈라도 다 읽어야 할 판이다. 하여간 길고 긴 비행인데 용케 잘 견뎌서 여기까지 왔다. “으자자자자” 기지개를 켜며 직각 의자에 앉아서 굳어있던 근육도 풀어 보고, 그 틈에 리스본의 밤공기도 들여 마셔본다.   





“형 뭐해 빨리 가방 찾자, 빨리 찾아야 빨리 나가지."


잘 훈련된 군인 같은 지노가 재촉한다. 우리의 baggage claim은 4번. 미어캣처럼 목을 빼고 잽싸게 가방을 낚아 채야 한다. 어리바리 늦었다간 엉덩이를 한대 걷어 차일지 모르니 말이다. 여기서 5분 늦으면 입국 수속할 때 15분 늦을 수 있다는 지노의 기민한 생각 때문. 


나와 처룽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 빠르게 출구를 찾았다. “저기다!” 커다란 화살표. 포르투갈어를 몰라도 아니 영어를 몰라도 기호만 보고도 찾아 갈 수 있는 방향. 지노가 화살표를 가리키며 앞장선다. 그렇게 돌돌 케리어를 끌고 화살표를 따라나가 커다란 문을 통과하는데. “엥?” “이게 뭐지?” 눈앞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우리는 가방을 찾아서 화살표를 따라 나온 것. 그런데 지금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뱅 둘러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바로 그 문 앞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보통 유명인이 해외에서 입국할 때 기자들이 플래시를 빵빵 터트리며 유명인을 맞이하던 바로 그 자동문으로 말이다. 이거 입국 수속을 받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없이 그냥 나와버린 것 같다.  


“안 되겠다. 다시들어가자.” 다시 들어가려는 우리를 안내원이 막아선다. 울상을 지어보지만 영어 따윈 통하지 않는다. “우와 이거 뭐야 대체!” 세상에 이렇게 억울하게 불법 체류자가 될 수 있을까. 여행하러 왔다가 그 나라에서 콩밥을 먹고 현지체험을 제대로 하고 간다는 어느 여행자의 말이 남의 일이 아니게 느껴진다.   



“형, 이상한  말하지 말고, 이 나라는 원래 이런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세상에 입국 수속이 없는 나라가 어딨냐. 사진 촬영에 지문 저장에 별별 걸 다 하면서 팍팍하게  들여보내주는 나라도 많은데. “지금 당장 저 안으로 들어갈 방법도 없지 않아?” 자정이 넘은 시각. 사실 공항에는, 근무하는 직원 하나 찾기도 어려웠다. 아무래도 비슷한 처지의 여행자들에게 묻는 게 최선의 방법인 듯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잘 있지도 않은 한국 여행자들을 찾아서 입국 수속했냐며 물었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유럽의 나른 나라에서 온 사람.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결국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조건의 사람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지?   




“그냥 가자. 숙소로."  


지노는 사업을 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배포 하나는 끝내 준다. 이거 그 나라 도장도 안 찍힌 여권을 들고 여행을 하자니. 뭐 여행 중간에야 안 걸릴 수 있겠지만, 출국할 때는 100% 걸리는 것 아닌가 싶다. 입국 도장도 없이 불안하게 여행이 즐거울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사실 여권에 다른 나라 도장을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는데. 


“형 근데, 어차피 화살표만 보고 나온 거 잖아. 만약 우리가 잘못 나온 거라면 그네들도 책임이 있어. 그리고 우리가 형 말대로 감옥이라도 간다고 쳐. 그럼 형 책 쓰는데 에피소드 기가 막힌 거 하나 생기는 거야. 우린 추억하나 만드는 거고.” 아! 에피소드 라니. 작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 지노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씨익 웃으며 주섬주섬 백팩에 카메라 가방을 들었다. “가자."  




그렇게 잡아탄 택시에 찡겨 앉아 리스본 숙소 주소와 지도를 기사님에게 보여 드렸다. 아는 길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한 아저씨가 리스본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리가 불법체류자이든 시민권자이든 요금만 낸다면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거침없이 달렸다. 나트륨 등 사이로 비친 도시 또한 무심히 서 있는 것 같다. 내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듯 말이다. 그렇게 건물들을 가로질러 깊숙이 깊숙이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창밖에 생경한 풍경에 관심이 팔린탓일까 그렇게 이 도시에 깊숙이 들어  갈수록 조금은 차분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았다. 마치 이 도시는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눈앞에 있는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잘  찾아오셨네요. 언덕이 심한데 택시가 여기까지  올라오던가요?"  


민박집 사장님의 환대에 궁금해 미치겠는 것을 바로 물었다. “그래서 입국 수속 못한 거 어째요?” 뭐 원래 여긴 그런 게 없단다. 아니 가끔 안 한대나. 어쨌든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이제야 지노도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다행이다. 멀리서 날아왔는데 이제 편히 잘수 있겠다. 


어쩌면 여행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싶다. 확실한 게 도무지 없어서 그냥 무식하게 질러 보는 것. 그러다가 그 무식한 방법이 때론 통했을 때 무릎을 치며  즐거워하는 것.  그때 창밖으로 보이는 여름밤을 원 없이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게 여행이 아니면 도무지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아니 내가 화살표 딱 봤을 때 느낌이 빡 왔다니까" "너 엄청 긴장해서 계속 침 삼키던데 크하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차곡차곡 짐을 풀자 마침내 리스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들었다. 리스본에서의 첫째 날 밤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1화: 프롤로그. 나를 여행가라고 소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화: 조금 느린 여행 준비

 3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4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2)

 5화: 리스본,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즐거움

 6화: 리스본의 아침, 온세상의 채도를 높이다

 7화: 대항해 시다의 로망을 간직한 도시, 벨렘지구

 8화: 에그타르트 끝판왕,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렘

 9화: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10화: 달동네 꼭대기 '오래된 창문'

11화: 우연이 즐거운 이유

12화: 무한한 일상 속, 유한한 휴가를 대하는 자세

13화: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아

14화: 신트라! 왕궁보다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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