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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KI Dec 02. 2015

#02.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여행의 시작,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항의 매력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_^ 
연재했던 글은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공항에 일찍 가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그러니까 일찍 갈수록 여행을 일찍 시작한 기분이잖아!"



여행 출발 전날, 새벽까지 짐을 싸는 게 직장인의 진짜배기 휴가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순 없다. 전날 오밤중까지 꽉꽉 채워서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서는 야무지게 가방을 싸야 한다. 그리고 또 새벽같이 일어나 출발. 워킹데이와 휴가 사이, 그 어떤 틈도 허락하지 않는 게 포인트다. 그게 바로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과 가장 짧은 휴가기간을 뽐내는 이 땅의 직장인들이 휴가를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악착같이 공항을 일찍 가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매력 때문.







차갑고 심플한 기하학적인 철골이 등뼈처럼 감싸고 있는 이곳. 유난히 큰 알파벳 표지판이 무심히 박혀 있는 이곳엔 여행자들의 설렘과 기대와, 또 누군가와의 긴 이별과 환승의 피로가 뒤섞여 있다. 그렇게 출발지와 도착지를 심플하게 알려주는 파란 표지판을 마주하고 있으면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포털을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토끼를 따라 처음 마주하게 된 토끼굴을 봤을 때의 느낌이 이랬을지 모르겠다. 어깨를 마주친 사람이 죄송하다는 말 대신 ‘쏘리’를 대답해도 자연스러운, 만 원짜리 지폐가 아닌 달러화의 사용이 가능하고 국적 모르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이곳. 휑한 천장과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볕에 면세점의 이름 모를 수입 향수 향이  떠다니는 이곳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터미널에는 곧 하늘로 올라갈 비행기의 여행 일정을 알리는 스크린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의도적으로 직공 같은 느낌을 주는 글자체를 사용한 이 스크린처럼 공항의 매력이 집중된 곳은 없다. 이 스크린은 무한하고 직접적인 가능성의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충동적으로 매표구에 다가가, 몇 시간 안에 창에 셔터를 내린 하얀 회반죽 집들 위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외침이 울려 퍼지는 나라,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 우리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나라로 떠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  알렝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 중  -







“그럼 커피는 어디서 먹지?"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한 나와 지노는 일찌감치 아침식사로 짬뽕 한 그릇을 뚝딱해치워 버렸다. “해외 나가면 이렇게 얼큰한 국물이 없을 거 아냐.” 나가 있으면 얼마나 있는다고, 출국하기 전에는 한 끼라도 좀 더 맵고 좀 더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을 찾고 싶어 진다. “그러니까. 괜히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더 조바심 난다니까.” 짬뽕 국물을 싸갈 수는 없고, 어슬렁 거리며 후식 먹을 곳이나  찾아본다. “근데 처룽이 올 수 있는 거겠지?” 지노와 내가 이른 공항을 누리고 있는 사이에도 처룽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형 당연하지. 설마 비행기표까지 끊었는데 안 나타나려고.” 그가 아직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이유는 게으름도 건망증도 교통체층도 아닌, 바로 회사 때문.







“아, 형님! 저 처룽이에요 어쩌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처룽이의 목소리. 그 밝던 아이가 울먹인다. 아침에 대뜸 걸려온 전화에 따른 면, 그는 지금 회사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고 했다. “아 형님. 이건 제가 안 하면 안 되는 일이라서요. 일단 출근했다가 공항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형님” 아무리 오후 비행기라지만, 그는 신새벽같이 공항이 아닌 회사로  출근한게다. 거대한 케리어를 끌고 사무실 컴퓨터 앞에 돌을 씹어먹는 기분으로 앉아있다고 했다.







“아마... 또 나시티 입고 있지 않을까?”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초조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그를 생각하니 참으로 남일 같지 않다. 괜스레 폰으로 메일함을 열어 다시 한번 쓱  훑어보지만 혹시 뭔가 빼먹은 건 아닌지 조급증이 돋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다시는 확인할 수 없을 메일박스. 묘한 초초함과 불안함은 아마도 비행이 시작되기까지  계속될 것 같다. 강제로 전원을 뽑아 버리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경계하고 확인하며 말이다.







“어떡하지? 먼저 들어갈까?"

비행시간도 긴데, 나란히 앉아 가려고 출국 수속을 같이 하려 했건만.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처룽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같이 앉으려는 바람은 부디 같이 여행이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바뀐 지 오래. 나와 지노는 휴가철 공항에서 꾸역꾸역 출국 수속을 밟는다. “쏘리, 쏘리, 원 아워 레프트!!” 한 외국인이 얼마 남지 않은 비행시간을 무기로 우리를 앞질러 간다. 얼굴이 벌게져서 울상이 된 그의 모습. 부디 처룽이도 ‘쏘리 쏘리’를 방패 삼아 얼른 도착할 수 있길. 면세점을 다 둘러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까지 입에 물고 있는 데도 처룽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메이 아이 헤브 유어 어텐션 플리즈~ 포르투갈까지 까시는 LH1172 편을 이용하시는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지금 탑승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쩌지?” 보딩 타임은 이미 지난 시각. “야 비행기 놓치면 다음 비행기 탈 수 있나?” “형 이게 무슨 마을버스인 줄 알아? 게다가 지금 휴가철 아냐?” 답답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 없는 탑승 줄은 유난히 빨리  줄어든다. “전화는 해 봤어?” “공항에 들어온 것 까지는  통화했는데 수속 중인지 안 받네.” “야  안 되겠다, 내가 승무원한테 저거 저거 전기 자동차라도 태워 달라고 해야지. 익스 큐즈미? 익스큐즈미~”  








 1화: 프롤로그. 나를 여행가라고 소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화: 조금 느린 여행 준비

 3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4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2)

 5화: 리스본,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즐거움

 6화: 리스본의 아침, 온세상의 채도를 높이다

 7화: 대항해 시다의 로망을 간직한 도시, 벨렘지구

 8화: 에그타르트 끝판왕,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렘

 9화: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10화: 달동네 꼭대기 '오래된 창문'

11화: 우연이 즐거운 이유

12화: 무한한 일상 속, 유한한 휴가를 대하는 자세

13화: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아

14화: 신트라! 왕궁보다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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