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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KI Nov 21. 2015

#01. 조금 느린 여행 준비

 여행은 준비하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라는데, 우리 진짜 갈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이 드.디.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_^ 
연재했던 글은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일요일은 브런치지~!"


그런가? 차 한잔을 마셔도 진짜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음식 덕후 지노의 지론에 힘입어, 진짜 맛있다는 브런치 카페를 찾았다. 시커먼 사내들의 일요일 브런치. 압구정 버터핑거엔 우리 빼곤 전부 여자들만 있는 것 같다. “뭐 좋네. 게이 커플 같고.” “아니지 다양성을 인정하자. 저기 외국인도 혼자 와서 먹고 있잖아.” 


뭔들 어떠리. 사실 가장 떨리고 설레는 순간은 바로 여행 준비를 위한 이런 모임의 자리 아닐까? “형 근데 우리 진짜 이제 이주 밖에 안 남았다!” 지노가 덥수룩한 수염을 실룩 거리며 말한다. 출발 이주 전. 아무리 바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출발 전 최종 모임이자, 사실상 첫 번째 미팅.


각자 너무 바쁜 일상을 해치우듯 사는 것도 이유이거니와 남자들의 모임이야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약속하고 만나면 좀 낯간지럽잖아.” 팬케이크를 좋아하는 섬세한 남자 지노가 말한다. “이런 쒸. 야 너 그럼 공항에서 소개팅 하듯이 만날래?” 지노는 여행할 때 가장 좋은 솔루션은 바로 현장에서 나온다는 '현장 주의'다. 숙소도 그렇고 맛집도 그렇고 볼거리 즐길거리 모두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는 게 제일이라는 것. 


반면 나는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해가자는 준비 주의다. 나도 현장주의의 파워풀한 강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금쪽같은 휴가를 내서 다녀와야 하는 여행이라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현장주의 때문에 정작 길 물어보다가 아까운 시간만 길에 쏟아 버리는 여행을 하고 싶진 않아서다.




“형 걱정하지 마 우리 그래도 비행기표도 끊었잖아 그럼 갈 수 있는 거야 으하하"


지노가 팬케이크를 보쌈 싸 먹듯이 먹으며 말한다. 그렇게 다른 우리였지만 그래도 여행을 맞이한다는 설렘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공유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럼 나머지 한 사람. 우리의 마지막 멤버. 막내 처룽이의 여행 스타일을 어떨까. 


“아, 행님 죄송해요. 좀 늦었네요.”

여행의 설렘을 막 나누고 있는데, 드디어 처룽이가 온다. 적갈색 야구 모자에 시커먼 선글라스. 양 팔뚝이 다 드러나는 나시를 입은 패션 피플 처룽. 나시 나이로 거침없이 드러나는 문신은 뽀나쓰다. 이런 처룽이로 말할 것 같으면 팔뚝과 쇠골 뼈 사이를 감싸고 있는 무시무시한 문신과는 전혀 다르게, 그렇게 싹싹하고 예의바를수가 없다. 어찌나 예의가 바른지, 매년 명절마다 온갖 지인들에게 안부 문자를 보낸다. “형님.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도 승천하는 용같이 건승하시고.. ” 


이게 좀 광고메일 내지는 웨이터가 보내는 문자 같아서 그렇지, 그래도 처룽이의 문자를 받으며 한 해가 또 지나갔다는 걸 느끼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사실 그런 싹싹함과 붙임성 때문인지 처룽이는 대학시절 과대표까지 하는 알고 보면 리더십 있고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한 그런 캐릭터이다. 뭐 성격으로 보더라도 진호와 나와는 다르게 무한 긍정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재간둥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꼭 처룽이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이유다.  




“아, 형님 차가 좀 밀려서.” “엉 앉아 처룽아, 근데 일요일 아침에 무슨 차가 밀려.” “아 그러네요 형님 하하하. 형님 우선 주문부터 할게요. 때려 먹어야죠.” 시선을 확 잡아 끄는 패션 피플. 거침없는 매력의 소유자 처룽이의 여행 스타일로 말할 것 같으면 눈앞에 있는 게 가장 중요한 본능 탐닉 자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처룽아, 너 근데 맨날 형님 형님 하면서 너 그 수많은 형님들 중에 누가 제일 좋냐.” 사실 진호와 나는 수시로 자주 보는 사이였지만 처룽이와 평소에 그렇게까지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선뜻 여행에 동행해 줘서 묻는 물음이었다.


“형님. 제가 회사에서 영업 업무를 하면서 지키는 철칙이 있습니다.” “오, 그게 뭔데?” “네. 가끔 고객사에서 짓궂게 여쭤보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럼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제 눈앞에 계신 분이 최고입니다~” “크크크. 말 되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사실은 심플하고 단순한 삶의 진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보다는, 두고 온 것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미련을 두고 후회를 하며 사는 나같이 사람이 보기에 한없이 부러운 캐릭터 이기도 하고 말이다.



“얘들아 그래서 우리가 리스본 간 다음에 어디 어디를 갈 수 있냐면 말이야"

사실 난 좀 마음이 급했다. 그야말로 여행이 이주 밖에 안 남았는데, 루트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으며 숙박을 정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사실 현지에서 뭐든 못 구하겠냐만은 길지도 않은 휴가를 어떻게 해서든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찌 보면 짧은 휴가가 만들어 내는 조급증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래서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서 산골짜기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이정보 저 정보 차곡차곡 만들었지만 이것들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별 반응도 없었으니 말이다. 


“형, 내가 댓글을 안 달아서 그렇지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꼼꼼하게 읽었다고. 그리고 나도 꾸준히 올렸잖아 맛집 정보! 거기 뽈보가 장난 아니라는데 말이지” “크크 그래 맛있긴 하겠더라 근데 웅이는 밴드에 가입돼 있긴 한 거야?” 진호와 나와의 대화에 처룽이가 멀뚱이 바라본다. 


“행님. 일단 여기선 때려 드시고. 구체적인 얘기는 카페 가서 하시죠~"

그렇게 브런치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었지만, 정작 여행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여행에 대한 서로의 설렘을 확인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본격적인 여행 얘기를 위해 다시 카페에 들렀다. “그래서 우리 루트를 먼저 정하는 게 중요해.” 자동차를 렌트해 포르투갈을 돌기로 한 것은 이미  합의된 사항. 문제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포르투갈의 한가운데 수도 리스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형 우리가 리스본으로 입국해서, 포르투에서 출국하는 거지?” 

맞다. 길쭉한 포르투갈의 한가운데 있는 리스본으로 입국해, 북쪽에 있는 도시 포르투에서 아웃하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남쪽 해안 도시를 가게 된다면 리스본에서 남쪽을 갔다가 다시 리스본으로 올라와야 하는 일정이 필요하다. 천해의 바닷가를 품고 있다는 그곳. 문제는 남쪽 해안 도시에 갔다가는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올라가는 곳곳에 있는 작은 해변 도시들을 들르기  빠듯해진다는 점이다.


“내가 스페인을 차로 여행할 때, 제일 좋았던 게 바로 이름 모를 시골 마을을 여행했던 때 거든.” 사실이었다. 4년 전 스페인 여행을 할 때, 바르셀로나도 좋고 세비아나 마드리드 같은 스페인 대표 도시도 당연히 좋았지만 여행객들이 잘 찾지 않는 시골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생각해 보면, 대중교통이 곳곳으로 뻗어 있지 않아 여행객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어쩌면 그 나라의 진짜 모습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맞아, 나도 독일 여행할 때 시골 마을들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진호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형님 저희 차는 뭐로 렌트 하나요?"

정적을 깨는 처룽이의 물음. “그러게?” 사실 미리 검색을 해서 어느 정도 알아온 게 있다. 싼 건 하루에 5만 원 정도부터 비싼 건 정말 한도 끝도 없는데. “그럼 뭐 빌리지?” “형님 아무래도 여행인데 좀 기분 좀 내야 하지 않을까요? 오픈카 어때요?” 처룽이의 제안에 진호가 거든다. “음 난 SUV가 좋은데 비싸나?” “응 비싸지." SUV는 하필 벤츠나 BMW 같은 고급 차종밖에 보이지 않았다. 


BMW는  이것저것 다 하다가 보니 하루에 30만 원이 넘게 든다. “와 장난 아니다.” 우리 하루 생활비를 10만 원 정도로 잡았는데, 자동차 값으로 하루에 30만 원 이라니. 3으로 나눈다 해도 하루 생활비와 맞먹는 거금이다. 그렇다고 일 년에 딱 한번 있는  휴가인데, 나도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어쩌지?” 어쩌긴. “우리 좀 더 싼 사이트가 없는지 더 찾아보자.” 그렇게 각자 좀 더 찾아보기로 하고 우리의 여행 전 마지막이자 첫 미팅은 막을 내렸다.



여름이 농익어 가는 8월의 일요일. 꺾일 줄 모르는 더위와 일요일 오후라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느낌은 사람을 참으로 나른하게 한다. 느리게 느리게 사람도 차도 모두 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의는 그렇게, 루트도 미완성, 숙소도 미완성. 어떤 차를 탈지에 대해서만 두 시간 넘게 격렬하게 토의했지만 결국 결론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걱정보다는 대책 없는 긍정이 마구 솟구쳐 오르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이 주는 셀렘 때문일까. 


조금 느리게 준비해도 괜찮아. 조금 헤매도 괜찮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하고. 휴가지에서 길을 잃는 것도,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옷장처럼 또 다른 흥미로운 모험으로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야. 그렇게 주문 같은 혼잣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여행의 설렘이 주는 마법 같은 힘이 아닌가 싶다. 


집으로 오는 강변북로. 달궈진 도로가 식어갈 무렵, 금쪽보다 아까운 주말은 다 지나고 있었지만 그렇게 또 하나의 여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1화: 프롤로그. 나를 여행가라고 소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화: 조금 느린 여행 준비

 3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4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2)

 5화: 리스본,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즐거움

 6화: 리스본의 아침, 온세상의 채도를 높이다

 7화: 대항해 시다의 로망을 간직한 도시, 벨렘지구

 8화: 에그타르트 끝판왕,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렘

 9화: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10화: 달동네 꼭대기 '오래된 창문'

11화: 우연이 즐거운 이유

12화: 무한한 일상 속, 유한한 휴가를 대하는 자세

13화: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아

14화: 신트라! 왕궁보다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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