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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KI Feb 12. 2016

#08.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리스본 알파마 지구의 골목길 여행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했던 <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_^ 
연재했던 글은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석양은 꼭 '상 조르제 성’에서 봐야 된대!"

“무슨 이름이 그래? 뭔가 에로틱 한데?" 그래서 발음을 더 조심하게 만드는 '상 조르제 성'. 이름은 그래도 뷰 포인트가 끝내주게 멋있는 곳이라고 했다. 리스본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그래서 여행자라면 꼭 들려야 한다는 리스본의 오래된 사진첩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포털의 파워 블로거들은 그렇게 '상 조르제 성'의 매력을 생생히 전했다.


“음. 그럼 28번 트램 타면 되는 거지?”

지노가 지도를 살피더니 방향을 가리킨다. 오~ 이 쉐끼. 한국에서는 죽어라 여행 준비를 안 하더니, 현지에서는 이렇게 방향을 잘 찾아 밥값을 한다. 타지에서 지도를 펼쳐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게다. 방향잡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제아무리 구글어스가 위성지도 사진을 보여준다 한들 '나는 어디? 그래서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임?’이라는 생각이 들면 어쩔 수 없다. 다리 좀 아프고 밥 좀 늦게 먹는 건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여행 무식자의 업보 같은 것이다.  



“형 이렇게라도 도움이 돼서 기쁘네 하하.” 

지노는 이래저래 여행 준비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다. “쉐끼 쫌 하는데~?” 칭찬을 퍼부으니 고래처럼 흥이나, 또 앞서가며 방향을 잡는다. 그렇게 앞서가는 사람을 보며  이곳저곳 카메라에 풍경을 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게다가 무사히 28번 트램을 타고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라면 말해 무엇할까. 


28번 트램을 타고 달리는 코스로 말할 것 같으면 리스본의 대표적 여행 포인트 중 하나로, 어떤 책에서는 리스본에 하루밖에 머물 수 없다면 꼭 28번 트램을 타볼 것을 권했다. 도시를 순환하며 골목을 따라, 도시가 품을 매력을 꼼꼼하게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노란 트램은 이 도시의 모세혈관 같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올라갔다.


“아 정말 이렇게 좁은 길에도 트램이 다니네.”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리스본의 가장 높은 곳. 이곳 알파마 지구를 28번 트램은 거침없이 달린다. 알파마 지구는 리스본 중에서도 오래된 골목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달동네 같은 곳이다. 과거 리스본의 모습임과 동시에 지금도 리스본의 서민들이 살고 있는 곳. 그런 골목길 벽에 아슬아슬 닿을 듯이 트램이 오른다. 끼어억 끼어억. 오래된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만큼이나 빈티지한 소리를 내며. 시간이 멈춘듯한 오래된 동네를 그렇게 오르고 또 올랐다.



“근데 지노야 우리 언제 내려?”

골목길에 정신 팔려 한참을 셔터를 누르다 문득 지노에게 물었다. “응?” “처룽아 너도 모르냐?” “행님. 저는 행님들만  따라다니고 있어요.” “후우...” 황급히 대충 내린 곳이 맞길 바라며, 사람들을 따라 대충 내렸다. 그렇게 마법처럼 오늘의 목적지인 ‘상 조르제 성’이 짠 하고 눈앞에 있길 바라며. 그러나 역시 그런 행운을 나타나지 않는다. 


“으흠..일단 높은 방향으로 올라가자.” 

방향을 잡으려면 우선 랜드마크라도 찾아야 할 텐데, 좁은 골목길들 사이에선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렇게 말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이거 그 길이 그 길 같은데?” 내가 가는 길에 심각한 의구심을 품은 지노가 말한다. 사실 여기까지 온 건 해가 지는 모습을 보려고 한 건데. 골목을 헤매는 사이 해가 지면 대체 여긴 왜 온 거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급해진다. “우리랑 같이 내린 사람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아음. 야 그냥 이쪽으로 가보자! 지금 시간 없다. 처룽아 이시끼야 뭐하고 있어?!”

나랑 지노가 길 찾기에 혈안이 되어 이방향 저 방향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데도 처룽이는 천하태평이다. 그 사이 골목길에 강아지를 만나 턱밑을 쓰다듬고 있다. 처룽이는 개패티쉬가 있는지 지나가는 개만 보면 다 만져 댔다. 공항에서 만난 경비견에 스스럼없이 손을 댄 것도, 노숙자가 데리고 나온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은 것도 가던 길을 멈춰 서서 행한 그의 중요한 여행  일과였다. “행님 저는 그냥 강아지가 좋아요.” 좋은 것 까진 이해한다만, 꼭 그렇게 손으로 접촉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우린 지금 시간이 없다. 



“으악! 진짜 못 찾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구글어스를 열심히 찾아대던 핸드폰 배터리마저 나가버린다. 옷은 이미 땀으로 젖어 버렸다.  “우리말이야, 길을 잃은 것 같아.” 에라잇. 골목 구석탱이에 덜썩  주저앉아 버렸다. 골목 안은 슬슬 어둑어둑 해 진다. “아우 씨. 석양을 꼭 성에서 봐야 하는데.” “아형 그거 멋있긴 하던데 그냥 오늘 못 봤으면 낼 보면 되지 뭐.” 


지노의 말처럼 깔끔하게 포기하면 그만이다. 골목 한구석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처룽이 처럼 말이다. 어디서든 거울을 꺼내 정성스레 머리를 다듬고, 특유의 느끼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처룽. 우리 중 그 누구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현재를 살고 있는 놈이다. “처룽아?!” “네 행님~” “넌 안 보고 싶어 석양? 아까 인터넷으로 본거 있잖아 엄청 멋진 거.” “행님, 보면 좋지만 뭐 그냥 저는 어디 가서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건 없어요.” “크크크 그래 니가 젤 행복해 보인다.” 현재의 시간에 충실한 처룽이 다운 대답이었다. 



 



골목을 헤매고 있다면 당신은 아주 잘 여행하고 있는 것
 


“형! 근데 이거 좀 봐봐!"

그렇게 골목 구석탱이에서 얼마나 낄낄 거렸을까. 지노는 리스본 가이드북을 한참을 뒤적이다 뭐라도 발견한 듯 나를 부른다. “여기 이거 봐봐. '노란 트램을 타고 알파마 언덕을 올라 골목을 헤매고 있다면 당신은 아주 잘 여행하고 있는 것.’” “오~ 이게 뭐야?” 지노가 황급히 부른 이유를 알겠다. 단순하지만 어찌 보면 명쾌한 진리를 담고 있는 말. 이 골목을 원래 구불구불 그렇게 생겨 먹은 거다. 지도로 다 담기도 어려운  모세혈관처럼. 그러니 원래 그렇게 골목을 헤매며 여행하는 곳이고 말이다. “아니 무슨 여행작가가 이래? 여기 읽어 보긴 한 거야?” 이렇게 꼼꼼하게 잘 챙겨주며 내 부족한 면에 대해 걱정해 주는 진짜 친구 지노에게, 알았으니 제발 좀 입좀 닥치라는 미소를 보냈다. 


하필 지노 자식이 그 부분을 찾아서 좀 아니꼽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묘한 위로가 되는 말이다. 골목을 헤매고 있다면 아주 잘 여행하고 있는 것이라니. 여행 계획을 세우고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문득 가장 중요하 걸 잊어버릴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여행을 왜 하고 있는지, 여행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여행 속에 매몰돼 버리는 순간이 온다고나 할까. 비싼 비행기표 썼으니 뽕을 뽑아야 한다는 본전 생각. 예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것들 그건 봐야 떠나옴이 의미 있을 거라는 유치한 생각이 그 발로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욕심이 앞서 계획을 세우다 보면 꼭 가고 싶은 곳들이 생긴다. 그 포인트를 연결하면 선이 되고 그게 바로 여행 루트가 된다. 그렇게 루트를 따라 일정이 생기고 그날그날 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처음 찍은 점들만이 여행이 아니라 점을 연결한 선들도 모두 여행이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해 그렇게 처음 찍었던 점만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볼거리가 많은 도시에선 알아도 잘 해결 안 되는 난제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진짜 유명한 장소인데, 바로 눈앞에 예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곳인데, 거기서 조금 더 가면...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다른 곳을 열망하며 무식하게 공간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는 동안의 여행은 그야말로 여정이 돼 버리고 만다. 여정들은 여행 그  자체라기보다는 중간에 잠깐 들르는 부수적인 수단 같은 곳으로 전락한다고나 할까. 과정은 생략되고 점들만 남다 보니 안 그래도 짧은 여정이 더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게다. 이처럼 간단한걸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조바심 내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리스본의 진짜배기 매력은 바로 알파마 지구의 달동네 같은 이 곳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동 주택. 창문엔 대서양의 햇살을 닮은 천연색의 빨래가 널려있고 문 앞에는 오래된 화분이 놓여 있는 곳. 골목 저편에서 아이들이 나타났다가 깔깔거리며 어느 틈에 사라져 버리는, 어쩐지 유년기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곳이야 말로 리스본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 같은 진짜 모습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찬찬히 둘러보면 볼수록 매력을 담고 있는 이 곳에 조금씩  익숙해지려는 즈음. 처룽이가 저쪽에서 부른다. 


“행님 저쪽에 있는 건물 아녜요?”



/ 다음 편 계속 / 






 1화: 프롤로그. 나를 여행가라고 소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화: 조금 느린 여행 준비

 3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1)

 4화: 공항,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의 문(2)

 5화: 리스본, 여행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즐거움

 6화: 리스본의 아침, 온세상의 채도를 높이다

 7화: 대항해 시다의 로망을 간직한 도시, 벨렘지구

 8화: 에그타르트 끝판왕,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렘

 9화: 알파마! 길을 잃어도 괜찮아

10화: 달동네 꼭대기 '오래된 창문'

11화: 우연이 즐거운 이유

12화: 무한한 일상 속, 유한한 휴가를 대하는 자세

13화: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생아

14화: 신트라! 왕궁보다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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