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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윤 Oct 03. 2017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갭이어'

"무작정 달려온 나에게"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싶어요." 

"어느 과로 갈 거냐"는 고3 담임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전혀 다른과였다. "성적이 안 좋으니까 우선 대학을 보고 낮은 과에 써라. 과는 학교에 가서 바꿔도 되니까." 


의대에 입학 할 수 있는 점수로 불교학과, 철학과에 진학한다고 하면 모든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 학생을 뜯어말릴 것이다. "제정신이냐? 니 점수가 몇 점인데 그런데를 가려고 하냐. 정신 차려라" 이 따위의 답을 들으면서 말이다. 굳이 따지고 보면 선생님의 잘못은 아니다. 면밀하게 따지면 의대를 가면 예쁜 부인 멋있는 남편 만나 떵떵거리며 잘 살 거고, 불교학과에 진학하면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아무튼.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은 대한민국에서 몇이나 될까? 내가 진학할 과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지 제대로 알고 가는 학생은 또 몇이나 될까? 내가 만난 형, 누나, 친구, 동생 중에는 거의 없었다. 모두들 1~2학년 땐 공통적으로 "적성에 안 맞다", "점수 맞춰서 대학 들어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여차여차 점수 맞춰 대학까지는 들어왔다 치자. '이들 중 자기 과를 살려 취직한 이들은 얼마나 될까?'

취직이 잘 되는 과에 진학에서 그 전공을 살려 취직한 사람 말고, 가고 싶은 과에 진학해서 그 전공을 살려 취직한 사람 몇이나 될까? 글을 읽고 계신 분은 어떠신가요? 원하는 학과 진학 그리고 전공 살린 취직 하셨나요?


대졸 구직자 중 50%가 전공과 무관한 일을 찾고 있으며, 10명 중 9명은 전공 선택을 후회한다는 기사가 날 정도로 전공과 구직의 비매칭은 꽤나 심각한 수준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47%가 전공을 살려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인문계열(64%) 일 수록 비대칭성은 높았다. 전공과 직무 연관성을 인터뷰한 결과에서도 42%만이 연관이 있다고 답했다.

자원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라에서 이게 무슨 인재 낭비인가. 이보다 더 심각한 인력 낭비가 있을까?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대학에 진학하려고 할까? 요즘 같아선 취직이 답일 수도 있겠다. 그럼 왜 취직을 하려고 할까? 결국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구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타아실현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자아실현을 할 권리는 기본권 중 하나인 헌법 제34조 행복추구권을 통해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권리가 있고, 당연히 내가 가고자 하는 학과가 무슨 과인지도 알 권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방법은 없다. 그저 점수 맞춰 가는 것이 전부일뿐이다. 초, 중, 고 숨 가쁘게 달려온 12년을 되돌아볼 시간을 국가가 마련해줘야 한다. 개인은 자아실현을 위해, 국가는 인재 낭비를 막기 위해. 이것이 갭이어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갭이어, 말 그대로 비어있는, 휴식의 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쉼 없이 달려온 학생들에게 그동안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잠시 멈출 수 있는 해를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이미 유럽 국가,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갭이어의 사전적 풀이는 대학교에 오기 전 봉사활동, 인턴, 여행 등으로 진로를 탐색하거나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시간을 말한다. 세계 명문대에서는 합격자들에게 입학 전 갭이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덴마크는 자아를 찾는 시간을 조금 더 빠른 중학교 때 제공한다. 에프터스콜레라고 불리는데 초등학교 9학년을 마치고 중학교 11학년을 시작하는 그 사이의 일 년을 덴마크 학생들은 에프터스콜레에서 보낸다. 이곳에서 덴마크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한다. 각자가 배우고 싶은 과목에 특화된 에프터스콜레를 찾아가 1년 동안 배우고 탐색하는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이 기숙학교인 에프터스콜레는 학생들이 부모로부터 처음 자립하는 곳이기도 하다. 취직까지 부모가 해줘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직접 밥을 짓고, 기숙사 친구들과 24시간 함께 보낸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학생들에겐 자신의 삶을 설계하거나, 미래를 고민할 시간은 사치일 뿐이다. 고등학교 땐 ‘우선 대학부터 가자’, 입학 후엔 ‘취직부터 하자’와 같은 논리가 내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을 그저 ‘쓸 데 없는 시간’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쓸 데 없는 시간이란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점수 맞춰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 한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시간, 그런 시간이야말로 쓸 데 없는 시간이 아닐까. 갭이어의 시기를 언제 둘 것인가는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덴마크처럼 이른 나이에 할 것인가, 아니면 대학 입학을 앞두고 갖게 할 것인가. 그러나 분명한 건 나를 되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롤로그 "정치는 볼드모트가 아니야!"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0

우리가 개새끼라고? 왈왈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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