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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Jan 21. 2016

그랜드캐년 노스림

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4

자이언 국립공원을 빠져나와 낙타산 분기점(Carmel Mountain Junction)에서 남동쪽으로 꺾어 50마일을 내려가니 자콥래이크(Jacob Lake), 이제 곧장 80마일만 더 내려가면 저녁에 묵을 호텔이 있는 페이지(Page), 방향을 돌려 산길로 40마일쯤 올라가면 그랜드캐년 노스림(Grand Canyon North Rim)이다.


그랜드캐년 노스림


노스림으로 올라가는 길은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만 통행이 가능한데, 카이밥 고원(Kaibab Plateau)으로 들어서고부터는 5월 하순인데도 검은 아스팔트 위에 싸락눈이 톡톡 튀고 기온이 금새 섭씨 2도로 내려간다. 5월 하순에도 이 정도니 통행제한의 이유야 더 물을 게 없다.

5월 하순에 노스림을 향해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데 갑자기 겨울이 왔다

어느샌가 싸락눈이 멈추고 가벼운 눈송이가 떨어져서 천천히 달리는데 갑자기 도로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눈들이 있다. 살그머니 브레이크를 밟고 느릿느릿 후진하여 차에서 내려가 보니, 반가워도 꼬리 칠 줄 모르는 순한 노루 가족이 낯선 사람을 보고 도망도 가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뜻밖에 만난 이 동물들이 언뜻 착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인정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신기롭기도 하지만 말없이 반겨 주는 산주인들에게 불청객이 폐를 끼칠 것 같아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서서 쳐다보다가 모두 자리를 뜬 후에야 조심조심 좌우를 살피며 다시 천천히 차를 몰았다.

길가에 서서 반겨 주는  노루 가족

카이밥 고원의 노루는 20세기 초에 내려진 동물 보호조치로 노루를 잡아먹는 늑대와 같은 포식동물들을 소탕하고 노루의 수렵이 금지되어, 노루의 수가 1905년에 4천 마리였던 것이 1924년에는 10만 마리로 증가해서 뜯어먹을 풀이 모자라 많이 굶어 죽었단다.

카이밥 고원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안내판

인위적으로 귀여운 동물들을 보호하려고 험상궂은 사자나 늑대를 헤치면 생태계의 평형이 깨져서 착한 동물들도 못 사는 지옥이 된다. 인간이 동물 귀엽다고 너무 편애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하지만 나부터도 그게 안 된다. 숲에서 노루가 아니라 사자가 노려보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 그랜드캐년 노스림 공원 입장


카이밥 고원의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달려가는 동안에 눈도 멎고 다시 하늘이 밝아져 마른풀들이 노랗게 덮인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길 끝까지 가기만 하면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의 북문인데, 문 양쪽에 나란히 서 있는 키 큰 소나무들도 길가의 노루 가족처럼 우리를 반기며 빨리 오라 한다.

그랜드캐년  노스림 - 길 끝에 국립공원의 북문이 있다

아침에 자이언을 떠나서부터 중간에 쉬지도 않고 왔지만, 길에서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랜드캐년 노스림에 도착하자마자 공원안내소에서 권고하는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로 걸어갔다.

그랜드캐년 노스림의 공원안내소 아래의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전망대가 있다

안내판에는 해발 2400미터인 이곳이 캐년 반대편에 있는 사우스림(해발 2000미터) 보다 높고 접근이 어려워서 방문객이 10분에 1밖에 안 되지만 경치가 훨씬 더 빼어나단다.

그랜드캐년의 모형 - 북쪽에서 남쪽으로 본 모양

전망대 주변 공기가 습하고 두꺼운 구름층이 하늘을 가려 계곡 안이 어두워, 가만히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5분 10분...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이윽고 어두운 하늘에서 서서히 빛이 쏟아진다.

어두운 하늘에서 천천히 빛이 내려온다

아직 하늘이 확 트이지는 않았지만, 엇갈린 구름 사이로 광선이 새어 나와, 도도한 그랜드캐년의 속 살을 파헤치니, 천 길 낭떠러지 아래 깊게 파인 골짜기의 윤곽이 드러나, 마치 거대한 천막이 줄지어 선 듯하다.

천 길 낭떠러지 저 너머에서 도도한 그랜드캐년이 속 살을 내보이고 있다

일찍이 높은 곳에 올라가, 만산이 겹쳐 물결치는 풍경을 본 적은 있으나, 태산 같은 첨봉들이 큰 뱀이 기어 다니는 골짜기에 발을 담고, 이렇게 우람하게 열 지어 늘어선 것은 처음이다.

Nunc dimittis! 이제야 볼 것을 보았다.

밝아 오는 캐년의 풍경

그랜드캐년을 보고 나니 벌써 여행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공원 로지(Lodge)에 가서 따뜻한 차 한 잔에 목을 녹인 후에 카이밥 고원길로 다시 차를 몰았다.

Nunc dimittis: 시므온(Simeon)의 노래(누가복음 2:29-32), 메시아를 기다리던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보고, 메시아를 보았으니 이제 저 세상으로 떠나게 해 달라는 기도(라틴어). 이제 떠나게 하소서!


- 고원 정경


이제 해가 기울고 있으니 동물들도 물가를 찾아 나오는 시간이라, 마른풀이 흩어진 카이밥 고원 여기저기에 잔바람이 물수제비를 뜨는 웅덩이로 물 마시러 나온 노루들이 숲가에 모여서 한가히 풀을 뜯는다.

카이밥 고원의 고요한 평원

멀리서 바라보니 목가적인 풍경이 마치 상상인양 망막에서 그림이 되고 한 장씩 벗겨져 추억상자로 들어간다. 훗날에 이곳을 지나던 일을 떠올릴 때면 상자가 열리고 다시 한 장면씩 그림이 나오겠지?.

저녁에 물 마시러 나온 짐승들이 모여서 풀을 뜯는다


페이지를 향하여


카이밥 고원을 지나 소나무가 조밀하게 박혀 있는 산림지대를 빠져나와 긴 비탈길을 따라 하산하며 멀리 평원을 바라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붉은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이제 페이지까지 가려면 절벽이 끝나는 곳에서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적어도 30마일은 되는 것 같다.

평원에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붉은 버밀리언 절벽

언덕 아래로 내려가 버밀리언 절벽(Vermilion Cliffs)을 따라 가는데, 절벽이 끝난 곳에서 또 절벽이 나오고 뒤에 숨은 구름이 적막감을 몰아 온다. 절벽도 풀이 죽어 창백하니, 한적한 길 위에서 어쩌다 차량이 앞질러 가면 훌쩍 달아나는 게 너무 야속하다.

절벽 뒤에 또 절벽, 곧게 뻗은 길을 달리니 왜 이리 적막한고?

다행히 해가 다 지기 전에 협곡 사이에 걸쳐진 철교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다리 가운데까지 걸어가서 달려온 길과 주변 경치도 보고, 좀 무섭지만 다리의 난간을 꼭 잡고 아래로 고개를 숙이니, 멀리에서는 있는 것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던 푸른 콜로라도강이 캐년 아래에 숨어서 고요히 흘러간다.

다리 아래 흐르는 콜로라도강

머리 위에는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해도 졌으니, 이제 밤이 오기 전에 페이지로 달려가야 한다. 왜냐하면?

페이지로 들어가는 길 - 콜로라도강의 철교와 버밀리언 절벽

저녁밥 먹은 얘기를 아직 안 썼으니까...

페이지의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라이브 뮤직을 들으며 밥을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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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1. 라스베가스 서곡

2. 데쓰밸리 국립공원(+라스베가스 다운타운)

3. 자이언 국립공원

4. 그랜드캐년 노스림(+페이지를 향하여)

5. 앤틸로프캐년(+파월호, 구절양장 콜로라도)

6.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우팥키공원과 화산, 메테오르 크래이터, 윈슬로)

7. 페트리파이드포리스트 국립공원

8. 셰이캐년

9. 모뉴먼트밸리(+신들의 계곡)

10. 아치스 국립공원(+캐년랜즈 국립공원)

11.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을 향하여(+그랜드테튼 국립공원)

12.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13. 쏠트레이크씨티(+그레이트쏠트레이크, 빙감캐년마인)

14. 브라이스캐년(+코다크롬배이슨, 라스베가스를 향하여)

15. 라스베가스 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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