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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Jan 20. 2016

앤틸로프캐년

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5

어둠과 함께 도착한 페이지(Page)에서는 이틀 밤을 보내며 주변의 앤틸로프캐년과 파월호수를 보았다.


앤틸로프캐년


앤틸로프캐년(Antelope Canyon)은 페이지에서 10마일쯤 떨어진 인디언 영지 내에 있는 Upper Canyon과 Lower Canyon 두 곳인데, 접근이 좀 더 용이한 Upper Canyon을 목적지로 잡았다.


동굴처럼 생긴 이 캐년을 1931년에 한 나바호 인디언의 어린 딸이 발견했다 하여,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서 벽화를 발견한 여섯 살 소녀를 떠올렸지만, 이곳에는 선사시대에 그려진 천장화는 없고, 단지 자연이 모래바람으로 조각한 환상적인 암벽이 있다. 캐년 안의 두 암벽 사이는 겨우 2미터 정도로 좁아서, 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만이 안을 밝혀주기 때문에,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는 정오가 캐년 관람의 최적기이다.


정오 방문에 맞추어 나바호 인디언 영지 안에 있는 사파리 정류장으로 갔더니, 벌써 사파리 한 조의 인원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와 있어서, 정오 조가 떠난 후 인디언 가이드들이 이끄는 사파리 팀에 끼어 픽업에 올라탔다.


한 대에 열 명의 관광객들이 짐짝처럼 실려가며 차가 세차게 흔들릴 때마다 아우성을 쳐도, 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울퉁불퉁한 사막의 워시 위를 요동치며 달려간다.

사막의 워시 위를 요동치며 달리는 화물차 - 짐짝을  열 명씩 묶어서 싣고 다닌다.

십여 분 지나 차에서 내려 캐년 근처에 도착하니, 차량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데, 뒤로 마치 바위산이 두 동강 난 듯 가늘게 벌어진 틈이 보인다.

캐년 입구 앞에 선 화물차들 - 주변에 짐짝들이 걸어 다닌다

가이드를 따라 캐년으로 들어가니,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광이 천장의 좁은 틈으로 파고들어 와 미세한 먼지에 산란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선을 그으며 적갈색의 가는 모래 땅으로 떨어진다.

태양광이 산란되어 밝은 캐년의 내부

캐년 안의 통로를 따라 걸으며 살펴보니 어디는 환하게 밝혀진 감색의 벽들이 어두운 갈색의 그늘진 암벽을 포옹하듯이 맞물고 있기도 하고, 또 어디는 양 벽이 고르게 밝아 백열등을 켜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캐년의 길이가 겨우 200미터밖에 안 되지만,  잘록잘록 넓어졌다 좁아지는 것이 마치 핏빛이 엷게 비치는 창자 속 같은데 사진 찍을 곳이 너무 많아서, 가이드가 앞서 가며 빨리 오라 재촉해도 게으름 피우며 캐년 끝까지 걸어 나가는 데 거의 반시간이 흘렀다.

캐년 안의 창자같이 잘록잘록한 통로

다시 가이드가 사람들을 모아서 방금 나온 창자 안으로 들어가란다. 픽업에 탈 때는 짐짝이었는데 이제 창자를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니 뭐라고 해야 할까? 입구 천장에 새집이 있는데 그 아래 많이 떨어져 있는 그것이랄까?  

캐년 밖에서 돌아보니 색깔과 모양이 꼭 창자 같다.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갈 때는 안으로 들어올 때와 분위기가 달라서 사진을 다시 찍으며 가는데,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사진 찍는 바람에, 좁은 통로를 빨리 나가지 못하고 종종 기다려야 했다.


옛날에 나바호 인디언들이 비바람을 피해 쉬었다는 이 캐년 안에는 넓은 방도 있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없다. 정오가 지나면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아 너무 캄캄해서 그런가 보다.

캐년 안이 밝기는 하지만 카메라의 성능이 좋지 않으면 예쁜 사진이 안 나온다

정오의 태양이 하늘에서 쏘아대는 광선으로 밝혀진 캐년 안에서는 빛의 조화가 환상처럼 펼쳐지는데, 눈으로 보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게 아쉽다. 그렇다고, 성능이 더 좋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긴 싫고...

서로 닿을 것 같은 두 암벽 사이로 빛이 떨어진다

가이드님의 명령에 따라 다시 화물차에 실려 워시 위를 달려가는데, 짐짝 열 명을 싣고 흔들거리며 질풍 같이 달려가던 차가 얼마 못 가서 기절을 했다. 정류장까지 걸어 나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조수의 티셔츠에 있는 사진은 백인을 많이 혼내준 인디언 영웅들 - 이걸 보니 왠지 겁이 났다

차를 수리하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몰라서 무서운 조수의 눈을 피해 민첩하게 탈출하여,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타고 공원을 빠져나갔다. 민방공 훈련할 때 까불지 않고 진지하게 연습해 둔 덕이다.

조수가 차 밑에 들어가 있을 때 뒤늦게 탈출한 이 사람은 결국 정류장까지 걸어 나갔단다. 개꼴이 돼서...


파월호


앤틸로프캐년에서 파월호로 가는 길에는 콜로라도 강을 막아서 생긴 글랜캐년댐(Glan Canyon Dam)이 있다. 안내판에 적힌 것을 읽어보니, 댐이 만들어진 후에 생긴 파월호(Lake Powell)는 땜 완공 후에도 호수에 물이 다 찰 때까지 17년이 걸렸다는데, 지금은 이 댐으로 인한 문제가 많아서 고민 중이란다.

글랜캐년댐의 물이 터어빈을 돌리고 방류되고 있다

아래로 흘러가야 할 흙이 댐에 갇혀서 바닥에 쌓이는데, 그 양이 하루에 덤프트럭 3만 대가 흙을 퍼부은 것과 같아서, 연간 1억 톤의 침전물이 쌓인다. 댐이 없었을 때는 흙이 콜로라도강을 따라 내려가서 유실되는 토양을 보충했는데, 이제는 콜로라도강이 흐르는 그랜드캐년에서도 모래사장이 줄어든다. 더욱이, 계곡 아래로 흘러가던 강이 건조한 사막의 호수에 갇혀서 전보다 더 많은 수증기가 증발되어 사라지는데 그 수량 또한 엄청나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동력자원과 용수의 개발을 위해 섣불리 자연에 성형수술을 했다가는 두고두고 골치 아픈 일을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금강산댐 만든다고 했을 때, 전 국민이 성금을 모아서 냈는데, 그때 환경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를 유치하면, 몇 년 앞만 보고 우선 땅부터 뒤집고 건물을 짓는데, 땅파기 전에는 적어도 백 년 앞은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파월호에 물을 가두고 있는 글랜캐년댐

글랜캐년댐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호수전망대(Scenic View) 벤치가 있어, 앉아 쉬면서 넓게 펼쳐진 파월호의 경치를 조망하였다. 푸른 물이 가득한 파월호를 멀리서 보니, 한편에 작은 배들이 짙푸른 호수에 조용히 흰 거품을 길게 달고 다니고, 또 한편에는 적갈색의 구릉들이 푸른 물에 빠져서 섬이 되어 있는데, 그 옆으로 유람선과 모터보트들이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항행하는 모습이 마치 누가 그려 놓은 것 같다. 물을 보고 있으니 얼핏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파월호의 전경 - 호수의 오른쪽 끝에 글랜캐년댐이 있다

파월호 선착장에 내려가니, 마침 미국의 현충일이어서, 2차 대전 때 참전한 늙은 용사들이 선착장에 나와 전쟁 기념사진들을 보이며, 자신들의 전과를 자랑했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최전방의 인디언들은 일본군이 전혀 해독할 수 없는 나바호 언어로 본부와 교신을 하며 정찰 임무를 수행했는데, 그것을 나바호 코드(Navajo Code)라 부른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아직도 서로 간에 이 언어를 쓴단다.

파월호 주변에는 야영을 하고 가족이 와서 물놀이도 한다.

호수를 나와서 페이지로 돌아가는 길에 댐을 다시 지나니, 저녁 햇살에 주변의 바위들이 붉게 물들어 따뜻한 풍경이 멋져 보인다. 차를 세우고 댐을 다시 보려고 전망대로 내려가니, 작은 새 한 마리가 벌처럼 빠르게 날개짓하며 바쁘게 자리를 옮긴다. 새를 쫓아다니며 셔터를 수십 번 눌러서 결국 벌새(Hummingbird)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벌새는 꽃에서 단물을 빨아먹고 사니까, 어딘가에 꽃도 있을 것 같다. 새를 보니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벌새가 있다면 어딘가에 꽃도 있다.


구절양장 콜로라도강


페이지를 나와 그랜드캐년 사우스 림으로 가는 길에 콜로라도강이 말굽의 편자(Horseshoe)처럼 심하게 곡류를 그리며 돌아가는 호스슈벤드(Horseshoe Bend)를 보러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 따라서 찾아 가는데, 멀리서 보니 붉은 암반이 움푹 파인 곳에 뭔가 있는 것 같다. 길 따라 더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보니 아직도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수직으로 파여 양안이 가파른 절벽 근처까지 가서 아래를 보니, 드디어 콜로라도강이 숨어서 뱀처럼 기어간다.

콜로라도강이 계곡 깊은 곳에 조용히 흘러간다

콜로라도강이 물길을 드러내는 그곳에서 아래를 들여다보는 것은 장관이지만 난간도 없는 절벽 위에 서서 사진을 찍으려니, 두 다리가 와들와들 떨린다. 몸을 눕혀 아래도 제대로 못 보고 결국 한 컷 찍었는데, 전혀 말굽 모양이 아니다. 상체를 벼랑으로 조금 더 끌었더니, 이젠 손이 떨린다. 팔을 좀 더 길게 뻗어서 셔터를 열 번쯤 누르고 뒤로 기어 나와, 몸을 일으켜 사진을 확인하니, 대단하지는 않지만 증명사진은 될 것 같다.


 호스슈벤드 증명사진 - 대단하지 않지만 목숨 걸고 찍었다

다시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발 밑을 보니, 색깔이 고운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장미꽃 같지만 줄기가 아니라 몸에 가시가 돋쳐 있으니, 분명 선인장 꽃이다. 어제 벌새를 보고 꽃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바로 이 꽃이었나 보다.

줄기가 아니라 몸체에 가시가 돋친 선인장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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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1. 라스베가스 서곡

2. 데쓰밸리 국립공원(+라스베가스 다운타운)

3. 자이언 국립공원

4. 그랜드캐년 노스림(+페이지를 향하여)

5. 앤틸로프캐년(+파월호, 구절양장 콜로라도)

6.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우팥키공원과 화산, 메테오르 크래이터, 윈슬로)

7. 페트리파이드포리스트 국립공원

8. 셰이캐년

9. 모뉴먼트밸리(+신들의 계곡)

10. 아치스 국립공원(+캐년랜즈 국립공원)

11.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을 향하여(+그랜드테튼 국립공원)

12.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13. 쏠트레이크씨티(+그레이트쏠트레이크, 빙감캐년마인)

14. 브라이스캐년(+코다크롬배이슨, 라스베가스를 향하여)

15. 라스베가스 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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