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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Jan 14. 2016

모뉴먼트밸리

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9

셰이캐년을 떠나 찾은 곳은 아리조나주 북단에 있는 모뉴먼트밸리(Monument Valley)와 신들의 계곡(The Valley of Gods)이다.


모뉴먼트밸리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모뉴먼트밸리 공원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좀 늦어서 우람한 바위들이 산같이 솟아 있는 평원의 저녁 풍광을 즐기며 천천히 차를 몰아 나아가니, 기단 위에 조각된 거상처럼 우뚝 선 바위산도 각자 다가와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커다란 조각상처럼 낙조에 우뚝 선 바위산들

멀리 언덕에는 작은 집 한 채가 혼자 서 있어 올라가 보니 박물관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가 원래는 1928년에 세워진 인디언과 백인들의 교역소(Trading Post)였는데, 1929년의 대공황으로 빈털터리가 된 주인이 영화감독인 존 포드(John Ford)를 데려와 영화를 찍게했단다. 이것을 계기로 모뉴먼트밸리는 거의 모든 서부극의 촬영장이 되었다. 

저녁에 박물관에서 본 모뉴먼트밸리의 전경 

박물관은 닫혀있지만 뿌연 유리창 너머로 낡은 사진들을 보고 마당에 놓인 마차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나서 금빛 물든 평원을 바라보노라니, 뉘엿뉘였 서산에 해 기울고 땅에 쓰러진 바위 그림자도 가물가물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아차! 저녁 놓칠 뻔한 어제 일을 벌써 까먹고 또 온종일 구경만... 얼른 차를 타고 달리니, 불안한 밥통이 꼬록! 창자도 잘록잘록 배를 쥐어짜며 가속페달에 펌프질 한다. 꼬록꼬록 잘록잘록 꼬록꼬록 잘룩... 휴 - 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카운터에 묻는다.

- 식사시간 마감했어요?

- 노-우!

꼬록꼬록 잘록잘록 빈 밥통 두 개가 고픈 배를 달래며 쩔래쩔래 테이블로 나가신다.

이게 군대밥이 아니고 나바호 인디언 호텔의 저녁밥이다


- 모뉴먼트밸리 공원


날이 새자 바로 일어나 아침 먹고 서둘러 모뉴먼트밸리 공원(영어명: Navajo Nation's Monument Valley Park 또는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입구로 차를 몰았다.

나바호 인디언의 아침밥

지도상에 아리조나주에 있는 모뉴먼트밸리의 공원 진입로는 유타주에 있다. 미국의 서부지역에는 정부의 행정과 치안에서 독립된 인디언 자치구가 있는데, 이곳은 백인이 미국 땅에 들어와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언을 몰아내고 도시를 세운 후에 남은 지역을 인디언들 스스로 관리하도록 내어준 곳이다.


바로 인디언의 자치구역인 나바호 영지(Navajo Nation) 안에 있는 모뉴먼트벨리 공원은 미국 정부가 관활하는 국립공원이 아니라서 국립공원 패스가 있어도 입장료 5$를 따로 받는다. 쩨쩨하게 입장료를 따져서 미안한데, 저절로 돈 들어오는 장사니까 설비투자를 안 해서 공원 입구에서부터 도로가 엉망이라 비싼 느낌이다. 좋게 말해 완전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조금만 가속해도 길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인다. 공원 내의 차량 제한 속도가 시속 15마일(24킬로미터)인 것이 다 이유가 있다.


우리가 탄 포드 세단차는 아스팔트에서 달리는 승용차라서 차체가 낮고 타이어도 얇은데, 길바닥을 보니 흙먼지 위에 뾰족한 돌도 박혀있고 잔돌도 많은데 큰 돌까지 굴러 다녀서, 바퀴가 터지지나 않을까 차체가 망가지지나 않을까, 걱정에 걱정을 더해 정해진 코스를 따라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갔다.

공원 안의 비포장도로 위의 포드 세단차

입구에서 받은 지도에는 순환코스와 코끼리암 낙타암 세 자매 바위 등등 바위들의 이름도 표시되어 있어서, 설명을 읽으며 간간이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이름과 모양이 꼭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데다가 멀리서 보는 전체 전망이 볼만하기 때문에 바위 각각의 생김새에는 별로 눈이 가지 않는다.

세 자매 바위 옆에 있는 건, 기둥서방 아닌가요?

기암들을 보며 다니다가, 모뉴먼트밸리의 이색적인 경치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고 해서 영화감독 존 포드가 제일 좋아했다는 존 포드 포인트에 섰다. 안내서에는 이곳이 아침 일찍이나 석양에 보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는데, 이런 말 곶이 듣고 갔다가 시간 허비하고 흐릿한 사진만 찍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고성능 카메라가 없으면 밝을 때 가서 구경하고 깨끗한 사진 찍어 오는 게 훨씬 낫다. 

존 포드 포인트에서 본 전경

모뉴먼트밸리 내에는 지정 상가가 있는데도 상가 밖 외딴곳에 인디언 부부가 차를 세워 놓고 기념품을 팔고 있다. 아마 무허가 장사꾼 같은데, 좌판을 보이며 꿈을 잡아두는 드림케처라든가 화살 액세서리 등을 집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나바호 영지 내에서는 어디를 가나 다 있는 물건이지만, 특별히 이 좌판에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깎아준다는 말을 들으니, 또 귀가 솔깃해져서 색깔 있는 돌을 갈아서 만든 목걸이와 귀걸이를 샀다.

기념품 중에는 꿈을 잡는 드림캐쳐(사진 속의 줄에 걸린 둥근망들)도 있다

순회코스를 다 돌고 나서 식당에 들어가니 나바호 브래드라는 인디언의 빵을 만드는데,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빈대떡처럼 넓게 펴서 기름에 튀겨 낸다. 접시에 올려놓은 모양이 꼭 구멍 안 뚫린 도너스 같은데, 설탕 치지 않고 조금 뜯어서 맛을 보니 고소하다.

나바호 브래드라는 기름에 튀긴 밀가루 빵

나올 때 매점에서 나바호 브래드라고 쓴 것이 진열대에 있어서 튀김인 줄 알고 한 봉지 샀는데, 나중에 열어 보니 제빵용으로 배합된 밀가루였다. 다음에 도착한 호텔에서 인디언 닮은 미화원에게 주었더니 그게 뭔지 몰랐다.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은 그 여자는 밀 입국해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멕시코 사람이었다.

식당에서 본 모뉴먼트밸리의 전경. 흙길에 먼지를 일으키며 차들이 기어간다.


신들의 계곡


오후가 되어 공원을 빠져나와 백미러에 모뉴먼트밸리의 거석들이 아지랑이에 가물거리는 것을 보며 관광객이 뜸한 북쪽 길로 차를 몰았다. 도로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지만 기복이 심하고 구부러진 곳도 많은데, 먼 길가에 접시 같은 것이 하늘에 떠 있다. 지도를 보니 멕시코 모자(Mexican Hat)라는 기암이다.

멕시코 모자 바위

30마일쯤 지나서 다시 거친 돌길이 나오고 이정표에는 신들의 계곡(The Valley of Gods)이라고 적혀있다. 벌써 오래전부터 뒤쫓아오는 차를 못 보고 달려왔는데 멀리 앞을 봐도 달리는 차가 없다. 이제 행여 차가 고장 나면 어디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모험하고 있는 게 실감 난다.

신들의 계곡에는 부처님도 앉아 계신다

모뉴먼트밸리에는 구부러진 길이 많아도 좀 평평했는데 여기에서는 내리막길 끝에서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파도처럼 굴절된 곳이 많아서 언덕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마다 차체가 땅을 긁는다. 이때 길에 깔린 잔돌이 으스러지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는데, 꼭 차의 밑창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잘못 온 길 되돌아가려니 멀리 보면 평지 같고, 떨며 고민하는 동안에도 차는 잔돌을 튀기며 자동 전진한다.

신들의 계곡 안의 거친 언덕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막한 길!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도 새가 날고 하다못해 풀벌레가 기어가는데, 계곡에 들어와 한 시간이 넘게 달렸는데도, 다니는 차가 없으니 삭막하기 그지없다. 지금껏 한적한 곳을 많이 다녀 봤지만, 이렇게 인적 없는 길을 불안하게 달린 건 처음이다. 게다가 차가 땅을 긁을 때마다 발 밑에서 돌가루가 튀어 오를 것 같은데, 경치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앞에 보이는 건 아름다운 경치가 아니라 단지 바닥 긁는 무서운 장치일 뿐이다.

땅 위에 길게 구부러진 무서운 장치를 보러 신들의 계곡에 들어온 것이다.   

짐작하건대 '죽음의 계곡'이라 하여도 좋을 이곳의 이름이 '신들의 계곡'인 것은 바로 이 안에 사는 주민들이 신상처럼 우뚝 선 거석들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경치가 모뉴먼트밸리에 버금간다고 밝힌 선행자들의 권고에 속아서 들어와 도로 사정뿐만 아니라 인적이 없어 불안에 떨며 꼬박 두 시간을 달리다가 내비게이터를 보니 그럭저럭 나갈 때가 된 것 같다.

피라미드 위에 모자 쓴 나폴레옹도 신들 중의 한 분이시다

저만치 흙길이 끝나는 곳에서 포장도로로 곧게 올라가는 경사로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 수고했어 빨리 올라와!

- 그런데...

앞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웅덩이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이걸 건너야 경사로를 올라가는데...

웅덩이에 돌진했다가 차에 물이 들어오면 꼼짝도 못 할 것 같아서 차를 세우고 다시 후진했다.

혹시 멀리에서라도 다가오는 차가 없는지 아스라한 희망을 걸고 온 길을 한참 둘러보아도, 자동차가 일으키는 흙먼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신들의 계곡을 빠져나오는 길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혹시 속도를 높여서 질주하면 물 위에 뜰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스쳐간다. 옛날에 누가 예수님도 왼발 빠지기 전에 오른발로 물을 차는 고속 동작으로 물 위를 가셨다는 얘기를 했는데 맞는 말이다. 엔진을 시동하고 전속력으로 나가니 차가 침수되지 않고 미끄러지면서 물만 뒤집어쓰고 바로 경사로를 향해 굴러간다.

 - 아!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올라간다!

이 반가운 포장도로를 따라 모압으로 갔다

이제 북방으로 200마일, 어둠이 오기 전에 모압(Moab)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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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1. 라스베가스 서곡

2. 데쓰밸리 국립공원(+라스베가스 다운타운)

3. 자이언 국립공원

4. 그랜드캐년 노스림(+페이지를 향하여)

5. 앤틸로프캐년(+파월호, 구절양장 콜로라도)

6.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우팥키공원과 화산, 메테오르 크래이터, 윈슬로)

7. 페트리파이드포리스트 국립공원

8. 셰이캐년

9. 모뉴먼트밸리(+신들의 계곡)

10. 아치스 국립공원(+캐년랜즈 국립공원)

11. 엘로우 스톤 국립공원을 향하여(+그랜드테튼 국립공원)

12.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13. 쏠트레이크씨티(+그레이트쏠트레이크, 빙감캐년마인)

14. 브라이스캐년(+코다크롬배이슨, 라스베가스를 향하여)

15. 라스베가스 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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