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이후 만 4년이 지났다
2017년 10월 14일. 그 순간은 잊지 않지만, 그 직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저녁에 119를 탄 상태로 병원에 들어갔다. 하루나 이틀 전부터 머리가 아팠지만 그저 두통일 뿐이라 생각했다. 참 겁이 없었다.
병원에서 뇌 검사 이후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병원실에서 자고 난 이후부터인가, 조금 기억이 나기는 한다.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매우 단순했다. ‘배고프다’, ‘오줌!’ 그 정도.
며칠 동안 병원에서 사는 동안 뭐라 말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별별 생각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중 하나는 ‘집에 가야 한다’ 정도?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즐겁게 사진 찍고 싶다!’
약을 먹으면 점점 나아져 금방 정상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수년 후에야 현실적으로 정상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사진 찍기는 정상이었으나 그 외에는 정상과 매우 거리가 먼 상태가 됐다. 그나마 뇌의 오른쪽만은 가라앉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왼쪽 뇌는 바닥까지 가라앉았지만 가라앉은 곳부터 다시 점점 조금씩 올라오긴 한다. 그 때문인지 매우 어렸을 때 경험들이 먼저 떠올랐다. 뇌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바로 첫 경험 따위가 아닐까. 더불어 사진 찍기로 즐거웠던 날들도 함께 올라왔다.
뇌경색 초반에는 ‘조만간 나아지겠지’ 생각하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정상에 가까워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못했다. 원래 내리기로 한 곳을 정확하게 언제 내려야 할지 몰랐다. ‘XX역입니다’라는 소리는 들렸지만 내가 내리기로 한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런저런 소리는 들리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그 정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찍고 싶었다. 사진 찍기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그래서 초반에는 집 근처를 걸어 다니면서 사진 찍기를 즐겼다.
매일 기도해왔다. ‘사진 찍는 것 외에도, 조금이라도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브런치에 조금 긴 글을 쓸 수 있지만 초반에는 택도 없었다.
그렇게 나아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꿈을 꿔서? 기도 해소? 그 둘 때문은 절대 아닐 것이다.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대충 다음과 같다.
1. 비교적 젊은 시기였기 때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늙으신 분들은 어떤 병에 약할 수밖에 없다. 뇌의 일부가 가라앉는 것도 마찬가지. 내가 뇌경색에 걸렸던 당시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다. 일반적으로 그 당시에 뇌경색에 걸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젊은 사람도 뇌경색에 걸릴 확률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다들 조심하시라!
2. 어렵지 않게 사진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
알다시피 뇌의 오른쪽과 왼쪽은 각각 역할이 다르다. 가라앉지 않았던 오른쪽은 보통 그림과 음악 등 예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뇌경색 이전에는 뇌의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확실히 경험했고, 그 말을 믿게 됐다.
3. 꾸준히 매일 나를 도와줬던 부인 덕분
개인적으로 초반에는 멀리 가는 것은 물론, 가게에서 과자 하나조차도 구매하지 못했다. 돈도 돈이지만, 버스나 지하철, 가게, 마트 등 모든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계산해야 하는지 몰랐다. 특히 최근 들어 본인이 직접 카드를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 외에 일상의 상당 부분을 내가 할 수 없었다. 손과 발을 못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에 항상 부인이 도와줬다. 그것도 매일매일. 어디 그뿐인가. 살아가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지 않던가. 당연히 부인이 힘들게 노동하고 있다. 당연히 매일 고맙고, 미안하다.
4. 나를 도와준 사람들 덕분
나는 정상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꼴에 어딘가 멀리 떠나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행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와 멀리까지 같이 가주는 등 여러 가지로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흔히들 ‘사진 찍는 순간은 혼자’라고 말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혼자다. 그러나, 그 순간을 도와주는 사람은 분명 있다. 더불어 혼자가 아닌, 함께 사진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앞서 말했듯 뇌경색 이후 만으로 4년이 지났다. 어느 날 갑자기는 절대 아니고, 마치 점처럼 조금씩 나아진 것 같다. 그리고 약 3년 정도 지나니 나아진 점들이 제법 모아진 것 같다. 그쯤 되니 더 열심히 뇌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게 도와준 것의 중심에 사진 찍기가 있었다. 사진 촬영 그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사진에 대해 뭐라 말하고, 글쓰기 위해서는 매우 노력해야만 가능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라고 알려주곤 한다. 개인적으로 그 말에 더할 게 하나 있다. 뇌경색 이후 가라앉은 뇌를 끌어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으시라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최근 브런치에 올린 글과 사진은 모두 뇌경색 이후에 만들어졌다. 뇌경색 이후 글과 사진은 다음과 같다.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글 내용을 봤을 때 점점 나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뇌경색 초반에 쓴 글을 수정하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남기기 위해 수정하지 않을 예정이다.
1. 사라지지 않는 것, 혹은
https://brunch.co.kr/@eastrain/107
2. 흔한 곳일 수록
https://brunch.co.kr/@eastrain/108
https://brunch.co.kr/@eastrain/111
4. 빛과 그림자
https://brunch.co.kr/@eastrain/113
5. 겨울이 온다
https://brunch.co.kr/@eastrain/114
6. 벚꽃이 핀다
https://brunch.co.kr/@eastrain/115
7. 미러리스를 위한 35mm 삼총사
https://brunch.co.kr/@eastrain/116
8. 멀리 있는 것들의 중심
https://brunch.co.kr/@eastrain/109
9. 덥고 습한 여름
https://brunch.co.kr/@eastrain/118
10.뜨고, 가라앉는다
https://brunch.co.kr/@eastrain/119
11. 광각에서 망원으로
https://brunch.co.kr/@eastrain/120
12. 멈춘 대상을 올드 렌즈로
https://brunch.co.kr/@eastrain/121
13. 마치 그림 같은 사진을 원한다면
https://brunch.co.kr/@eastrain/124
14. 광각은 MDㄹㅎ 어렵지 않다
https://brunch.co.kr/@eastrain/122
15. 누구인지 알 수 없게
https://brunch.co.kr/@eastrain/125
16. 적당히 좁게, 적당히 넓게
https://brunch.co.kr/@eastrain/126
사진 찍는 순간, 그 짧은 시간은 사진으로 멈춘다. 결과적으로 사진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물론 멈추지 않는 것의 중심은 사람의 머리다. 그러나 그 쉬지 않는 머리가 바닥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머리, 뇌가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뇌경색 이후에 가라앉았던 부분이 확 높아지길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높이, 혹은 정상에 가깝기를 꿈꾸는 것보다는 더 넓게 펼치기 위해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삶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자. 그리고 조금 더 색다르게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삶을 넓게, 색다르게 바라보기 위해 사진을 찍어보는 건 어떨까?
사진이라면 그대의 삶을 색다르게 남겨주지 않을까?
나와 같은 뇌경색 문제가 아니라도 삶이 힘들다면 사진 찍기로 즐겨보시길!
:: 뇌경색 이후에 찍은 사진 위주로 올렸습니다.
EastRain. 2021.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