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차이 벤클러의 저서 '펭귄과 리바이어던' 중 펭귄은 리눅스의 마스코트 '턱스 Tux'입니다. '인간이 선을 행할 능력'을 상징하지요. 반면에 리바이어던은 1651년 발표한 토마스 홉스의 저서의 이름입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괴물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괴물'은 리바이어던에 굴복하는 노예나,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가는 꼭두각시, 국가에 복무하는 파시스트를 상징합니다. 펭귄은 이들 대척점에 인류의 희망을 안고 있는 상징이고요.
Pflasterer in der Rue Mosnier. 1878.
벤클러가 이 펭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협력적인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애지중지하고 우리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강변하는 데에는 지난 1900년부터 1960년대까지 심지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는 '괴물'의 존재 때문입니다.
이 괴물은 근대 서구 역사를 장악한 중심축이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 리바이어던은 왕정을 중심으로 한 '지휘 통제 시스템'이 축이었던 시대였습니다.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왕당파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내용이었지요. 이를테면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왕정이 통제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왕정 #지휘통제시스템
그 대척점에 의회파가 있었고,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이 등장하면서 '왕정 리바이어던'은 사라졌지만, 19세기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리바이어던은 새로운 형태로 등장합니다.
프레더릭 테일러 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의 제원리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가 그 왕정을 지지하던 '지휘 통제 시스템'을 계승한 것입니다. 즉, 모든 직원들의 동작을 일일이 기술하고 시간을 측정하고 감독하는 관리 절차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모든 직원을 완벽히 통제하는 시스템의 부품으로 말입니다. #과학적관리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로 이름을 바꾼 지휘 통제 시스템을 좀 더 체계화하고 산업화 인물은 헨리 포드였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생산량의 폭발적 증가라는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지만, 감시하고 관리하고 감독을 해야만 노동자는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하는 기계 같은 존재라는 사고방식을 낳고 말았습니다. #컨베이어벨트시스템
이는 작업 현장부터 임원 회의실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고, 상명하달식 위계질서를 만들었습니다. 공공 영역까지 파고들었죠. 당시 유럽은 1차 세계 대전으로 패망 직전에 이른 독일과, 차르의 붕괴로 등장한 잔인할 정도로 효율적인 스탈린 모델은 산업화 과정을 뛰어넘고 파시즘으로 직행한 것이 그 예입니다. #상명하달
1929년 대공황으로 시장이 붕괴하면서 괴물들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시장보다는 전문 기관이 더 유능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진보 시대(Progressive Era)의 토대 위에 행정기관이 힘을 쥐고 미국은 뉴딜 정책을 펼쳤습니다. 유럽 역시 비스마르크가 등장하는 국가 관료 제도가 등장했고, 복지 국가를 표방하는 자애로운 외형을 띄었습니다. #왕정대신행정기관
한데 여기에 미래 사회는 더 크고 세심하게 통제하는 관료주의여야 한다는 막스 베버(Max Weber)가 가세하면서 왕정을 정부로 탈바꿈한 새로운 리바이어던이 등장하고 말았습니다. 이 현상은 1960년대 중반 무렵까지 경제와 사회를 지배했고, ‘보이지 않는 손'이 더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료제
그 문제라 함은 '시장 기반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 간 이념이 만든 냉전 시대를 연 것입니다. 냉전은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정부는 강력한 통제 시스템으로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자 경제와 사회는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비효율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1980년대에 들어서서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로 완전히 진입한 것입니다. #자유방임의자본주의
미국은 레이건 정부, 영국은 대처가 집권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효율성과 자유무역에 초점을 둔 유럽 공동체 EC 등장(1992년),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미국이 미국식 시장 경제를 개발도상국의 발전 모델로 삼도록 한 합의)를 지지하는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enetary)이 출현한 것입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은 복지 정책을 폐지하느라 혈안이 되었고, 세계 무역이 확대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흥 산업과 기업, 상품이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이를 통제했던 관료제 즉, 위계적 시스템은 부적합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를 관리하는 문제를 '보이지 않는 손'은 반성 보다는 더 센 쪽으로 강화시켰습니다. #신자유주의
민영화는 시대의 과제가 되었고, 금융 시장 규제는 쪽머리 풀리듯 풀어졌습니다. 심지어 이기심은 기업과 시장은 물론 사회생활과 사랑, 가족에도 적용된다는 사고방식이 권력화 되고 말았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절정을 맞이했지요. 처벌과 인센티브와 임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공동체가 무너졌고, 경제 시스템은 붕괴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민영화
경영학, 인류학, 심리학, 진화학, 경제학, 정치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위기를 타개하고 극복하려고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어떻게 다시 인간이 살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를 논의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골몰했습니다.
도요타가 미국 현지 공장에서 높은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구현한 성과를 시발점으로 '통제'와 '보이지 않는 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놀이터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구글의 등장은 새로운 조직 모델로 급부상했습니다. 즉,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 조직의 이익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간 모델이 바로 위키피디아이고, 데일리 코스 Daily Kos, 뉴스바인 Newsvine과 언론 사이트,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 등이 동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서 '협력적인 시스템'은 21세기 조직 모델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 #창의성 #자유의지 #협력
'통제'가 '참여'로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인센티브 모델의 한계를 드러냈고,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 캠페인은 서로 호의를 갖고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생산적인 목적에 기여하는 개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을 만들었습니다.
과학적 관리의 종식을 선언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비즈니스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행동 경제학은 이 시기 주류 경제학의 자리를 차지해 대체재로서 주목을 받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이타적이고 협력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각 분야에서 속속 발표되면서 협력은 필수불가결한 시대과제가 된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는 지금 이 협력을 어떻게 시스템화할 것인가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협력은 이렇게 탄생하고 진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