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습관, 이때만큼은 꼭 필요
12시가 가까워질 무렵, 점심을 뭘 먹을까 하다가 어제 사둔 라면이 생각났어요. 밥을 먹으려면 새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니 시간이 적잖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으로 마음이 기울던 차, 혹시 몰라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어제 산 '근대'가 보였습니다. 잎을 넓게 드리우고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자리를 비워 여유 공간을 만들어야겠더군요.
요즘 해보고 있는 게 '생전 사본 적 없는 채소로 요리하기'인데요. 이번에 선택한 것은 근대입니다. 잎이 이렇게나 크고 길쭉하다는 걸 오늘 알았네요. '근데, 근대는 어떻게 해 먹는 거지?'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먹을지도 미정이지만, 조리법이라고 해봐야 무침, 쌈, 국 셋 중 하나겠지 싶었어요. 이제 요리에 자신이 조금 붙었나 봅니다.
싱크대에 자리를 잡고 부채만 한 잎을 한 장 한 장 씻노라니 요리방법을 금세 정할 수 있었습니다. 잎이 커서 쌈이 적당해 보였어요. 물을 올렸습니다. 살짝 데쳐서 맛있게 만든 쌈장과 함께 밥에 싸 먹는 상상을 했습니다.
워낙 커서 냄비에 그냥은 들어가지를 않더군요. 반으로 잘라 넣자 냄비가 가득 찼습니다. 물이 끓고 얼마 안 있어 근대가 차분해졌습니다. 불을 끄고 한 김 식혀서 잎을 먹기 좋게 펼치려고 하는데 보기와 다르게 얇아서 쉽게 찢어지네요. 쌈은 아닌 모양이다 싶어 무침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쌈장이 맛있으니 무침을 해도 충분히 맛있을 예정이니까요.
먹기 좋게 잘라서 된장 소스를 투하하고 조물조물 무쳐주었습니다. 소스에는 양파, 참치, 참기름, 참깨, 명란젓을 넣었어요. 재료를 골고루 넣으니 이 자체만으로 맛있었습니다. 근대 무침이 완성되는 사이 냄비 안에서 밥이 맛있게 지어졌어요.
오늘의 점심입니다. 예전 글에서도 썼지만 집에서 식사를 하면 그때그때 만들어먹는 편이에요. 그래야 식사를 잘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재료 손질부터 밥 짓기, 세팅까지 1시간 정도가 걸렸어요.
쌀밥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수수를 곁들여 먹고 있는데, 같이 넣으니까 식감도 좋고 고소해요. 며칠 먹어보면서 잘 맞는지 어떤지 몸의 반응을 관찰 중입니다. 멸치볶음은 어제 만들었는데, 조금 넉넉히 만들어서 4-5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째로 두고 먹으면 얼마나 먹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데, 종지에 덜길 잘한 것 같아요.
한 시간이나 요리를 했는데 차려놓고 보니 소박해서 잠깐 흠칫했습니다. 차린 건 적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갓 지은 밥에 갓 무친 나물이니 그 맛을 더 말해 무엇할까요. 근대 무침이 성공적인 것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음..... 정말 맛있게 잘 먹었는데 뭔가 아쉽네요. 솔직히 아까 요리를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이거 먹고 될까?'
만약 충족이 안 되면 편의점에 가게 될 것 같았어요. 그렇게 되면 가야 할지, 참을 수 있을지, 아니면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을지... 상상했더랬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달달한 비스킷 생각이 났거든요. 최근에 취업 활동하면서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탄수화물이 당겨요. 일단 밥을 먹어서 배가 찼으니 멍을 때리면서 좀 쉬어봅니다.
문득 재료비와 노동시간을 따져봤을 때 밖에서 한 끼 사 먹는 비용과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밥 한 줄 사 먹는 게 낫지 않을까? 국밥 사 먹는 게 싸고 간편하지 않을까?' 오전에 읽은 책 <레버리지>가 떠올랐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저의 뇌는 후식으로 비스킷을 먹을지 말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집밥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에게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인생의 '레버리지'인 것 같거든요. 신체가 건강하면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집밥을 만들어먹기 시작한 이유를 떠올려봤어요. 우선 밖에서 먹는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바깥 음식은 저한테는 달더라고요. 집에서는 웬만한 요리에 설탕을 넣지 않고, 넣더라도 본연의 음식 맛이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넣습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먹는 양을 조절하는 게 어렵습니다. 식당에서 기본적으로 정해져 나오는 양이 있어서 그런지 집에서 먹을 때보다 많이 먹게 돼요. 왁자지껄 하다 보니 식사에 집중이 잘 안 되는 탓도 있는 것 같고요.
아,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네요. 집에 오는 길에 여기저기 보이는 유혹 때문인데요. 슈퍼, 편의점, 빵집. 한 군데쯤 들르게 되기 마련이에요. 밥 먹으러 나가기 위해 옷 챙겨 입고 준비하는 시간, 쓰게 되는 돈 (모이면 결코 작지 않은). 그런 걸 생각하면서 그래도 집밥이지, 하면서 먹고 난 그릇을 설거지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뭉그적 뭉그적 시간을 끌다 보니 오늘 점심은 후식을 먹지 않는 데 성공했습니다! 곧장 양치를 했습니다. 기분 좋게 먹었으니 여기서 식사를 마무리하자는 의식이지요. 아까 생각났던 비스킷은 일단 사러가지 않고 두 어시간 정도만 미뤄보려고 해요. 여기서 핵심은 두 어시간입니다.
두 어시간 후에는 집 밖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사이 호르몬이 저의 기분을 바꿔놓아서 그냥 집에 사놓은 라면을 먹을지도 모르지요. [근거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과자보다 라면이 건강에 낫다고 (?) 생각합니다] 두어 시간 후에 제가 무엇을 먹든 먹지 않든 중요한 것은 식후에 추가로 먹으려는 충동을 한 템포 가라앉히고 미루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미루는 건 좋지 않다고 하지요. 그러나 저의 경험상 소식에서만큼은 반드시 길러두면 좋은 습관이 '미루기'입니다.
며칠 전, 다음날으로 미루기에 성공한 비스킷#소식 #근대 #무침 #요리 #집밥 #식사 #줄이기 #소식 #방법 #하기 #적게먹기 #적게먹는 #법 #방법 #요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