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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Dec 12. 2021

참 쉽게 잊고 산다

정원 이야기

지난여름, 춘천의 한옥에 머무는 동안 벌 때문에 고생을 좀 했었다. 어떤 벌은 탑돌이 하듯 집 주변을 빙빙 돌다가는 툇마루로 들어오고, 또 어떤 벌은 왜인지 잎사귀를 들고는(!) 자꾸만 기단에 난 틈으로 기어들어갔던 것. 도시에서만 자란 내게 크기가 큰 벌이라고 하면 꿀벌 집 하나를 일기당천(一騎當千)으로 박살 내는, 쏘이기라도 하면 응급실엘 가느니 마느니 하는, 그 본 적도 없는 장수말벌뿐이기에 그저 어깨뼈가 빠져라 파리채를 휘둘러 댈 수밖에 없었더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포스러울 정도로 길게 다리를 늘어뜨린 채 툇마루로 날아오던 녀석들은 쌍살벌, 잎사귀를 부지런히 나르던 녀석은 장미가위벌이었다. 둘 다 꿀벌 정도로 공격성이 낮은 종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바닥에 나가떨어져 있는 쌍살벌들을 보니 (장미가위벌은 나의 부족한 사냥 실력 덕분에 심지어 잡지도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울컥 치받는다.


욕심을 버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정당한 대가(代價)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일것이다. 비단 무언가를 합당한 것을 내어놓는 것만을 의미하는게 아닌, 낮과 밤처럼, 또한 여름과 겨울처럼 반드시 함께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없이는 소중한 것을 보아도 소중한 줄도 모르고, 고마운 것을 만나도 고마운 줄 모를 뿐이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잎이 짙어진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가득 낙엽이 지고, 겨우내 그 낙엽은 천천히 흙으로 돌아간다. 이듬해의 봄은 반드시 그런 순환을 거쳐야만 다시 올 수 있다. 그렇기에 꽃과 초록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가을의 낙엽도, 겨울의 조용함도 충분히 반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흙이 있으면 땅벌레가 있고 꽃이 있으면 나비가 있는 것처럼, 그 유충을 먹이로 삼는 말벌도, 탐스러운 잎새를 잘라 집을 짓는 가위벌도 비슷하다.


이렇듯 정원의 생활은 내게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값진 가르침을 준다. 계절마다의 아름다움은 거기에 얹어주는 두둑한 덤이다.  


2021.05.21. 삼청동 한옥 매매 계약

2021.06.07. 설계예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08.07. 정든 집을 떠나 사택으로 이사

2021.08.18. 측량일, 사전 미팅(1)

2021.09.02. 사전 미팅(2)

2021.09.06. 설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09.30. 삼청동 한옥 중도금 지급 완료

2021.10.08. 첫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0.20. 가구 가전 사이즈 조사
2021.10.22. 두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1.04. 마지막 세입자분의 이사 

2021.11.05. 세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1.19. 네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2.01. 별채 돌아보던 날

2021.12.03. 다섯 번째 디자인 미팅

(기본설계 종료)


지혜원의 버들마편초(2021), Rolleicord IV, Fuji Provia 1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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