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하당 Apr 11. 2022

거울 들여다보기

애초에 그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매사에 만전을 기울이는 게 최선이겠지만, 일을 하다 보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서마저 오류가 생기기 마련. 문제의 완벽한 예방이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인 만큼, 사후 복기(復碁)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 시작은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인데, 이런 과정에서 방어기제는 큰 장애물이 된다. 예를 들어 시공사 선정이 끝도 없이 늘어지는 이번 사태에서 내 마음은 화를 투사(投射) 할 대상을 찾아 끝없이 헤매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가 원망스러울 지경.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화를 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재발이 막아진다면야 얼마든지 신나게 화를 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투사"라는 방식이 유치한 방어기제에 속하는 것이겠지. 


주변에서 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 나는 종종 "거울을 들여다보라"라는 말을 해주곤 한다(물론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한 경우에만). 이번에는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했어야 했다.  


결국 모 시공사의 명성에 홀려 비즈니스에서 있을 수 없는 미 통보 기한연기를 몇 번이고 아무렇지 않게 참아낸 것도, 분명히 다른 시공사에 비해 비싼 견적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별 근거 없는 기대를 한 것도, 비교견적을 받기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은 것도, 첫 견적서에 잘못 기입된 건축주의 이름이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기대를 놓지 못한 것도 모두 나의 결정이었으니. 


한참 습한 시절에 치목(治木) 될 목재를 생각하면야 여전히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그렇게 화가 나는 것 자체는 어떻게 해결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그 화가 향하는 대상만큼은 나 자신으로 한정하자.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시공사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보자. 불안정한 마음 상태에 놓여있을지라도 상대방을 불합리하게 대하지 말고, 예의를 갖추자. 


* 사진 속의 오징어는 제주에서 준치라 불리는 그 녀석들.


** '썩어도 준치'라는 말의 준치와는 다르다. 제주도의 오징어는 그 맛이 오징어랑 한치 사이 어디쯤이어서 중(中)치, 그러다 준치로 불렸다고. 


*** 이 사진을 보고 있자면 '최근 며칠간의 내 모습은 확실히 오징어보다 못한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일종의 자기반성 같은 것.    


2021.05.21. 삼청동 한옥 매매 계약

2021.09.06. 설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09.30. 삼청동 한옥 중도금

2021.10.08. 기본설계 시작

2021.12.03. 기본설계 종료

2021.12.21. 첫 번째 실시설계 미팅

2021.12.31. 두 번째 실시설계 미팅

2022.01.12. 주택담보대출 신청

2022.01.13. 주택담보대출 현장 감정

2022.01.14. 세 번째 실시설계(인테리어) 미팅

2022.01.19. 삼청동 어르신의 이사

2022.01.20. 부분철거

2022.01.26. 잔금 지불 완료

2022.01.31. 네 번째 실시설계(인테리어) 미팅

2022.02.16. 다섯 번째 실시설계(인테리어) 미팅

2022.02.25. 여섯 번째 실시설계 미팅

2022.04.10. 여전히 시공사 선정 중


제주 자구내 포구(2022), Pentax MX/Iro 400


이전 06화 지난한 시공사 선정 과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