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 박사님에게 배우기
<집합론적 사고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다>를 퇴고[1]하다가 다음과 같이 쓴 부분을 까맣게 잊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글을 다 쓴 후라도 세 개 영상 모두 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습니다.
이미 발행하거나 제출한 글을 다시 보는 일은 지루합니다. 그렇지만, SNS에 노출하면서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오타나 모호한 문장은 사후에라도 수정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딱 그 정도 수준으로 퇴고를 하는데, 이번에는 제가 마음먹은 내용을 잊고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독자들과의 약속까지는 아니지만 언행일치가 아니란 점에서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게으름(?)을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전과 달리 노트북이 아닌 모바일에서 구글링 결과를 보았더니 노트북의 이전 검색 목록과 달랐습니다. 동적인 검색 결과가 주는 묘미입니다. 하지만, 제가 최초에 마음먹은 세 영상만 찾아서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살펴본 영상은 박문호 박사님의 집합론적 사고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먼저 박문호 박사님은 집합론적 사고와 살아가는 태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설명을 시작합니다.
집합론적 사고는 궁극적으로 내가 속해 있는 집합을 깨닫는 것이다.
집합론적 사고라는 단어가 주는 수학적 어감 혹은 딱딱한 뉘앙스가 아닌 일상으로 이끕니다. 나아가 내가 갇혀 있음을 깨달으면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제가 독선을 극복하고 차이를 인정해 온 여정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2018년 4월에 이르러서야 저는 '개취 인정'을 명확하게 인정한 듯합니다.
그전에는 항상 최상의 방법이 있다고 믿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꼰대였습니다. 다행히 꼰대를 벗어나려고 노력한 과정이 있었고, 여러 흔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선 개취 인정은 개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배양해서 지금은 육아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익숙지 않아서인지 다름을 인정하는 노하우를 여기저기서 배우려고 했던 듯합니다.[2] <관찰의 기술>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아 <나를 흔드는 일들 고찰하기>란 글을 쓴 바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차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중략> 차이를 인정했다면 작은 일에서부터 공감대 형성을 시도하라.
페벗님의 글에서 찾은 긍정 정의도 인용하고 복습하며 쓴 글도 있었고요.
<어른답게 말합니다>에서 찾은 다음 구절도 인정으로 시작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상대 의견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준다.
2. 공통점을 찾는다.
3. 자락을 만들어둔다.
4.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반대하는 이유와 근거, 대안을 포함하여 말한다. <중략> 반대하는 이유가 개인의 이해득실이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당신이 옳다>를 읽고 쓴 12편의 이야기는 박문호 박사님이 집합론적 사고로 설명한 타인을 인정하는 태도를 공감과 대화를 중심으로 익히는 방법을 다룹니다.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면 2분 30초 경에 자유에 대한 너무나도 멋진 정의가 등장합니다.
남을 탓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게 자유입니다. 자유는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나만 잘하면 전체가 나아지는 XP>가 떠오릅니다. 또한, 9월에 쓴 <한국말에서 자유란 무엇인가?>도 떠오릅니다. 떠오른 김에 찾아보니 아래 글이 주는 느낌이 최근에 쓴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과 이어진다는 사실도 덤으로 깨닫습니다.
마무리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은 나다움을 지나 사람다움에 이르는 길이라 하셨는데, 한국어의 사람의 기원이 바로 '살리다'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줏대와 잣대가 분명하고 '쪽인 나'로서 혹은 '온인 나'로서 나를 둘러싼 환경까지 이해하는 모습이 박문호 박사님이 설명하는 집합론적 사고로 개념을 차린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문호 박사님은 집합론적 사고를 유용성의 관점에서 다룹니다. 굉장히 포용적이고 독특한 설명 방식이지만 '공감'이나 '감정'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기능'이나 '실용'에 가까운 설명이죠. 글이 길어져 타인 인정으로 자유를 얻는 일에 대한 인식만 여기에 담고 보다 기능적 내용은 다음 글로 이어가겠습니다.
[1] 구글링 결과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또는 그런 일.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僧推月下門’이란 시구를 지을 때 ‘推’를 ‘敲’로 바꿀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敲’로 결정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한자 구성을 보면 바로 뜻이 유추되지 않아 의아한데 위와 같은 고사가 있었네요.
[2] '인정'이란 단어를 키워드로 제가 쓴 브런치 글을 검색하며 추측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