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다시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으로 돌아가 '03. 나와 남' 내용을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나와 남은 모두 난 것으로서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에서 마지막으로 인용했던 다발말[1]이 다시 눈에 띕니다.
한국인은 내가 기대고 있는 남을 잣대로 삼아서 내가 남처럼, 남만큼, 남같이, 남보다, 남부럽지 않게, 남 못지않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남은 나를 비추고 재는 거울이자 잣대이다.
그 이유는 최근 눈에 띤 페이스북 이미지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을 바로 위 다발말과 관련짓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내가 보는 사실(True)과 다른 사람이 보는 사실(True)을 함께 해야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는 진실(Truth)에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위 그림을 해석할 수도 있을 듯했습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별은 다각도의 분석으로 볼 수 없던 얽힘을 보는 일>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참고 경청하지 못하고 내 말을 준비했던 기억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이 시사하는 말에 따르면 저는 조금 더 겸손을 필요로 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관용성을 많이 배양해야 할 듯합니다.
앞서 살펴본 겸손과 관용성을 지닌다는 각오 하에서 읽으면 더 좋을 포기말[2]을 마주합니다. :)
너는 나의 너머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나를 넘어가면 곧바로 너와 마주하게 된다.
너머에 있는 사람의 효용성을 눈으로 보기 위해서 앞서 인용한 그림을 다시 활용합니다.
이렇게 나의 너머에 있는 관점을 지닌 남과 마주할 때 우리는 그를 '너'라고 합니다. 2인칭이라고 외웠던 개념이 '마주한 사람'을 칭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2인칭에 이어 3인칭으로 알던 개념을 새롭게 보게 하는 포기말이 이어집니다.
나는 나와 곧바로 마주하고 있는 이쪽을 너라로 부르고, 비스듬하게 마주하고 있는 저쪽을 저라고 부른다.
포기말을 읽으니 절로 3차원 공간이 떠올라 간단히 그려 보았습니다.
나와 너를 각각의 차원으로 보자 <성공적 대화를 돕는 그림>을 소환하고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소통이라는 것이 다시 보였습니다. 교집합을 이뤄야 성공이 가능하고, 앞서 인용한 3차원 이미지에서 Truth의 양상처럼 나와 너의 True를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관용성을 갖춘 겸손이 배양되어야 한다는 점도 배웁니다.
마치기 전에 '마주하다'를 구성하는 '마주'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3]
서로 똑바로 향하여.
성공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똑바로 눈을 마주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마주 뜻풀이 중에 있는 다음 내용도 흥미롭지만, 글의 주제와 무관하여 제외합니다.
‘마주’는 ‘맞다’에 ‘-우’가 결합한 말이지만 ‘맞우’로 적지 않고 ‘마주’로 적는다.
(5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51. '되다'와 삼국시대의 풍류(風流)를 알게 하는 실마리
55. 과연 사람의 말이 서로 엮이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