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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25. 2024

과연 사람의 말이 서로 엮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계속해서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다음은 알듯 모를 듯한 포기말[1]입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은 서로 엮임으로써 저마다 뜻을 갖는다.

그간 묻따풀 해 온 경험에서 나온 느낌을 먼저 소환합니다. 제 경험 속에서 세 가지 생각을 담은 키워드를 던집니다. 이 글은 먼저 이들에 대한 제 생각을 풀어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관계가 먼저다

쪽인 나

알알이


관계는 나로 인해 생겨나지만 내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매듭말의 기원을 찾아보면 분명 박문호 박사님의 강의 속 말입니다. <관계는 나로 인해 생겨나지만 내 것은 아니다>라는 글에 담았던 생각일 듯합니다. 바탕이 되었던 박문호 박사님 말씀 중에는 '관계가 존재에 앞선다.'라는 식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 공감하면서 항상 두 가지 현상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138억 년 전 빅뱅의 산물이란 점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란 사실


이들로 미루어 보아서 우리는 인식의 한계 때문에 종종 빠트리지만 지금 내가 목도한 현상이나 느낌에 작용하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나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보이지 않는 바탕을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지난 시간에 언급한 대로 조심하는 습관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터전인 '쪽인 나' 그리고 變-易-化

두 번째 '쪽인 나'는 최봉영 선생님께 처음 들은 개념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최근 이해가 담긴 글이 있는데, <우리의 터전인 '쪽인 나' 그리고 變-易-化>입니다. 최봉영 선생님 글에 기초해서 풀어본 내용이지만, 한마디로 '쪽인 나'를 설명할 역량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을 시도하면, 영화 <역린> 장면에서 받은 감동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뭉치인 알음것이 아닌 엮이는 알음알이

마지막 '알알이'는 최근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상호작용 그리고 알음것과 알음알이>를 썼던 경험에서 기인합니다. 최봉영 선생님에 따르면 말(verbal knowledge) 이전의 알음은 '알음것'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알음것의 특징은 뭉치로 기억에 보관된다는 점입니다.

마치 개가 주인을 알아보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개는 주인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면 한동안 못 알아보고 짖는다고 합니다. 알음것을 구성하는 일부와 일치하지 않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주인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죠.


최봉영 선생님에 따르면 말(verbal knowledge)로 바뀔 수 있어야 비로소 개념화가 가능하다 합니다. 최봉영 선생님은 개념화란 말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인용한 그림처럼 감각과 연결할 수 있는 알음알이가 감각을 넘고 메타 차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알음알이라고 하셨죠. 이를 제가 잘 아는 현상에 대응시켜 보니 '개념화'란 말이 떠올라 썼습니다.


개념화와 개념이 가진 힘

<말의 바탕치와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을 실천하기 위해 사전에서 개념 풀이를 보겠습니다.

「1」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槪(대개 개)와 생각할 념(念)을 합친 낱말입니다. 槪는 trans sensory와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나의 감각기관을 벗어난 지식으로 바꾸는 일에 해당하고, 풀이에서는 '일반적인'과 연결됩니다. 이렇게 보면 철학 분야의 풀이와도 잘 맞습니다.

「3」 『철학』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

알알이 즉, 개념화와 그 결과인 개념이 지닌 힘을 제 말로 설명할 역량은 없습니다. 대신에 2019년 엄청난 지적 충격을 선사했던 <사피엔스>의 한 구절[3]을 인용해서 설명을 대신해 봅니다.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중략>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중략> 인지 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중략> 원숭이를 설득하여 지금 우리에게 바나나 한 개를 준다면 죽은 뒤 원숭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받게 될 거라고 믿게끔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중략>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마침 오늘 읽은 <성격의 탄생> 232쪽의 내용도 관련이 있어서 추가로 인용합니다.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던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타고난 본능에 의존해야 했고, 자기 혼자 문제를 해결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보고 모방해야 했다. 그런데 언어가 사용되자, 이제 언어(그리고 그림이나 다른 상징으로도)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능숙하게 관심을 끄는 수단으로 언어나 다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적용하는 데 매우 유리한 특성이 되었다.

이상입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공교롭게 최근에 <문제의 본질, 허상의 문제 그리고 유머 감각>이라는 글을 쓰며 인용했던 기억 덕분에 5년 전에 본 글을 다시 소환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1. 고양이와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 단계 비교

42. 시공간과 순간 그리고 임자와 일됨이라는 인식

43.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

44. 말은 느낌을 저장하여 지식을 축적하게 한다

45.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상호작용 그리고 알음것과 알음알이

46. 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어서 온전히 끝맺음에 이름

47. 생태계적 사고를 깨닫게 하는 '되다'란 표현

48.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일의 세 갈래

49. 관계의 방향성과 생각이라는 혁신적인 도구

50. 우리의 터전인 '쪽인 나' 그리고 變-易-化

51. '되다'와 삼국시대의 풍류(風流)를 알게 하는 실마리

52. 바람, 덕분 그리고 되는 일의 바탕

53. 내가 있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인식될 수 있다

54.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삶의 차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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