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따져서 개념을 만들고 실행하는 디지털 전환
페북 알고리듬으로 등장한 헤드폰 베스트셀러 그래프가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습니다. 그래서 쓰는 글입니다.
1등이 무려 애플입니다. 울릉도 여행길에 아이팟 프로를 잃어버린 저는 저가향 대체제로 몇 주를 버티다가 결국은 다시 애플 매장에 갔기에 1등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심지어 신제품으로 나온 4세대도 물리적 착용감 때문에 프로에 대한 저의 애착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이 글도 맥북에어로 쓰고 있고요. 핸드폰은 중국에 살던 기간을 제외하면 계속 애플만 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미한 수준의 애플빠(?) 입장에서 더 신기한 것은 4위가 삼성이란 점입니다. 자연스럽게 샤오미와 화웨이에도 눈길이 갑니다. 그리고, 마우스 회사로 알고 있는 로지텍이 7위인 점도 눈에 띄는데요. 아이코닉한 그림에도 마이크가 붙은 것을 보면 게이머를 위한 기능과 브랜딩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헤드폰에 큰 관심이 없는 제가 글을 써서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음향기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럼 뭘까 스스로 내면을 탐색해 보니 이미 과거에 썼던 두 개의 글에 담긴 아이디어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사실 이 글에 담으려는 아이디어는 <AI Will Eat Application Software>를 읽은 후에도 머릿속에서 맴돌며 한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습니다. 하지만, 글로 낳지는 못했죠. 그런데, 이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유통업을 집어삼켰고, 바로 그 소프트웨어는 인공지능에 의해 잡혀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모든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응용Application 소프트웨어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죠. 둘 차이가 무엇이냐를 설명하려다간 고전적 컴퓨터 공학 개요로 빠질 듯하여 다르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업계의 슈퍼스타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가 고안했다는 용어로 '소프트웨어 3.0'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코딩 에어전트를 이용해 인공지능을 도구로 삼아 응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앞서 인용한 <AI Will Eat Application Software>는 기존 프로그래밍 방식이 압도적 열위에 놓이는 듯한 현상이 투자시장에서 SaaSpocalypse[1]를 일으킨 후에 그 현상을 제대로 따져 묻는 글이었습니다.
두 가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하나는 고전적인 책을 언급하며, 거기에 꼽은 사업적 해자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었습니다.
The classic contemporary book on business moats is Hamilton Helmer’s Seven Powers. He lists seven distinct ways in which companies develop robust competitive advantages: Scale, network effects, counterpositioning, switching costs, brand, cornered resources, and process power.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을 읽은 저에게는 익숙한 접근이었습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돈이 되는 정보를 끄집어내는 지적 능력을 갖췄으니 a16z를 대표해서 글을 쓰겠죠.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두 번째는 7가지 강점 중에서 마지막에 열거된 process power입니다. 그런데, 프로세스 엔지니어링이라는 표현을 제시하고는 다른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x의 글이라 그록에게 요약 번역을 요구했습니다.
산업 질문: Anthropic·OpenAI·Google이 수천억 달러를 쏟아 범용 AI를 만들고 있는데, 왜 vertical software(특히 금융 특화 Hebbia 같은 회사)가 여전히 필요한가? 범용 모델이 모든 걸 먹어치우지 않나?
vertical software의 진짜 가치: 단순 코드·UI·데이터가 아니라, 특정 팀·조직의 프로세스와 워크플로우를 깊이 이해하고 정확히 구현하는 ‘process engineering’이다. 이게 진짜 moat.
Last mile = 핵심 문제: 금융에서 모든 회사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팀·데스크·MD별로 compliance, CIM 요약 기준, 템플릿, 워크플로우가 완전히 다르다. 이 10% idiosyncratic(팀 고유) 부분이 거래 성사와 커리어를 결정하고, moat의 원천이다. 소프트웨어는 단순 도구가 아니라 “저장된 프로세스이자 사회적 계약”이다.
범용 AI의 구조적 한계: 모든 사용 사례를 동시에 다뤄야 하므로 특정 팀의 취향·기준에 opinionated(의견을 강하게 반영)할 수 없다. Hebbia처럼 vertical 회사가 그 역할을 한다.
AI 발전이 vertical을 더 강하게 만든다: 더 좋은 모델(o-series 등)은 application layer의 orchestration(신뢰성·검증·워크플로우 맞춤)을 강화한다. 법률 분야에서 이미 증명됐고, 2026년은 금융 차례.
금융만의 결정적 우위: 90% 정확성은 100% 틀린 것과 같다. 정확한 답 하나가 수억~수천만 달러의 차이를 내는 도메인이라 AI를 가장 빠르고 많이 소비할 것이다.
결론: foundation model 회사들은 절대 이 ‘process engineering’을 따라올 수 없다. vertical software는 firm-by-firm, team-by-team으로 프로세스를 파고들어 institutional knowledge를 쌓아야만 진짜 moat가 생긴다. AI가 강해질수록 이 작업의 가치가 더 커진다.
요약으로 파악한 프로세스 엔지니어링 개념을 보자 팔란티어 블로그에서 봤던 글 <The Cybernetic Enterprise>에서 강력한 인상을 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A process can only be automated if it is encoded in software.
그리고 그 문장 바로 위에 있는 그림은 안드레이 카파시와 다른 관점으로 전통적 소프트웨어와 자신들의 소프트웨어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중심이 아니라 프로세스 중심의 전환이죠.
사실 이것은 팔란티어만의 독점적 아이디어는 아니고, 소위 'Agentic AI'를 주창하는 곳의 공통점 지향점이라 생각합니다. 꼭 AI 영역에서뿐 아니라 조직 운영에 있어서 프로세스의 중요성은 다른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멀리 왔는데, 그럼 최초에 자극을 준 그림과 프로세스 엔지니어링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삼키는 방식이 유통업을 먹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도 진행 중이란 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건들의 형질을 죄다 뒤바꾸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아직 헤드폰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1등 제품은 이미 무선 이어폰 형태입니다. 그리고, 애플의 핸드폰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죠. 사실 애플의 핸드폰은 전화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명실공히 손바닥 위의 컴퓨터죠. PC의 시대는 가고, 누구나 손바닥이나 호주머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사무직이 하던 일이 이제는 남녀노소가 단순 작업으로 변모하면서 데이터와 콘텐츠 생산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과 대형 플랫폼이 끌고 가는 변화를 보아야 변화의 양상이 제대로 보인다는 사실을 휴대폰 업자들이 장악한 헤드폰 시장 그림을 보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 기사에 첨부된 소프트웨어 기업의 주가 급락 장면이 소위 말하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보입니다.
저자인 Alex Immerman과 Santiago Rodriguez는 사스포칼립스가 오해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해당 내용을 파파고 번역과 함께 인용합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새로운 변화는 전에 없던 것이기 때문에 '오해誤解'는 오히려 일반적인 트렌드롤 받아들여야 할 듯합니다. 인간의 본능으로 인해 AI FOMO를 느끼는 일은 여기저기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포증에 반응하는 행동 양상은 다른 것이죠. 개발자 출신인 저는 AI FOMO롤 인식하고 해석[1]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래밍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를 쓴 일이 있죠. 저와 달리 미국 증시의 투자자들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주식을 매도하는 것으로 AI FOMO에 반응했다고 보입니다.
이를 두고 두 저자는 오해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선지자로 볼 수도 있고, 기술 낙관주의 투자 업체인 a16z의 기조를 널리 알리는 스피커의 작품으로 글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독자들 각자의 몫이죠.
(5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5. UI 패턴에서 동선 설계로 그리고 메뉴와 내비게이션
7. 빠르게 훑어보고 골자만 추려 쓴 팔란티어 데이터 솔루션
8. 감정을 돌보면 일이 잘 되고, 공감 없는 협업은 없다
9. OTA를 타고 형체도 없이 수입되는 FSD라는 상품
10. 전통 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비파괴적 창조가 될 수 있다
12. AI 안경은 스마트폰에 종속된 웨어러블 기기가 될 것
13. 대체 전략을 어디에 써먹고 어떻게 실천할까? II
14. 오너가 실무자가 되어 업무 현장에 나가면 생기는 일
15. 리팩터링은 위험한 일인가? 더 위험한 일은 없는가?
16. 소프트웨어가 종말 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다
17.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개발방식은 유통기한이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