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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r 08. 2024

책속에서_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95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글은 자기 시각은 없으나,

자기 뜻대로 쓰는 이른바 ‘객관적인’ 것들이다.

세상사를 전유(專有)하면서 스스로를 인간의 기준이라고 선포하는 글.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를 중립과 보편, 심지어 정론으로 포장한 것들이다.

거리를 ‘잡는 것’(포지셔닝 혹은 주제 파악)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거리 두기와 동일시는 자신을 이동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반면,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공감과 연대는 어렵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116쪽)          



96

“우리가 슬픔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슬픔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

고통받는 인간은 선택받았다.

누구도 이런 선민이 되고 싶지 않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인간의 조건인 것을.

다만, 사회는 이들에게 “(힘이 없는데) 힘을 내라.”,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잊어라.”, “(이미 너무 참고 있는데) 참아라.”,

심지어 착취 구조에 갇힌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돕고 싶다면 그들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가장 비윤리적인 분노, 그래서 참아야 할 분노는 딱 하나, 분노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193-194쪽)          



97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나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215쪽)          



98

권력은 다수의 억울한 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멘토, 치유자를 자청하는 자들을 불러(?) 고결한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열한 폭력인 용서와 화해 이데올로기로 약자의 상처를 짓이기고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죄의식과 자책까지 떠넘긴다.

그래서 우아함은 가진 자의 성품이요, 흥분과 분노는 약자의 행패가 되었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227쪽)          



99

눈물을 금지하는 원리는 같다.

어렸을 적 부모나 교사에게 억울하게 혼났을 때 울면 안 된다.

“뭘 잘했다고 울어!” 한 대 더 얻어맞기 십상이다.

때린 사람은 우는 사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해자의 논리는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네가 우니까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고로 네가 가해자.”다.

자기 행동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 동의와 웃음을 강요한다.

아이고 사건은 눈물이 불법을 넘어 체제 위협으로 간주 된 예다.

눈물=체제 위협. 눈물은 힘이 세다.

눈물은 정치적이다. 그래서 ‘아이고 사건’은 어디에나 있다.

여론이 약자에게 동정을 보일 우려가 있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걷잡을 수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235-236쪽)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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