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데이 파더스 클럽 (13)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분위기가 좀 싸하다. 보통은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이 ‘아빠~’하고 부르며 달려나오기 마련인데 오늘은 어째 안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가 보니 둘째는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고, 첫째는 소파 한 편에 걸터앉아 뾰로통한 얼굴을 한 채 씩씩거리고 있다.
‘아이고야, 오늘도 둘이 또 싸우셨군.’
들어오기 조금 전 일어난 일이라 했다. 첫째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원피스’ 캐릭터를 식탁에 앉아 공들여 그리고 있었는데 잠시 한눈판 사이에 둘째가 몰래 가서 그림 위에 살짝 낙서를 해놓았다고 한다. (둘째의 변은 낙서가 아니고 오빠가 잘 못 그려서 제가 도와준 것이란다.)
첫째는 화가 나서 둘째가 정성껏 만들고 있었던 보석 십자수를 와장창 흩뜨려버렸단다. 망가진 보석 십자수를 보고 둘째가 세상 서럽게 울기 시작해서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
놀랄 일은 아니다.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부쩍 둘째의 장난이 늘었다. 집안에 장난꾸러기가 둘이 되니 거의 매일같이 집안 곳곳에서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도 보통은 엄마, 아빠가 타이르고 할머니가 달래고 하면 못 이긴 척 잦아드는데, 이번엔 둘 사이의 골이 꽤 깊이 파인 듯했다. (그러게 왜 둘 다 서로의 최애를 건드려…)
“수현아, 동생이 아직 어리니까 오빠가 좀 봐주고 그래야지 않을까?”
상황이 심각해보여 옷도 미처 못 갈아입은 채 둘 사이 중재를 하겠답시고 나섰는데, 설익은 조언이 가뜩이나 불편한 아들 심기에 제대로 불을 붙였다.
“아 왜 오빠란 이유로 늘 양보만 해야 하는 건데!!!”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이제는 첫째도 꺽꺽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혹 떼려다 혹 붙였다. 퇴근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쉬려는 마음에 한 마디 내뱉었다가 역풍을 제대로 맞았다.
며칠 후 아들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 동생이 정말 싫다.’
아… 싱글 모드를 켜야 할 때다.
남매를 키우기 시작하며 맞았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첫째와 둘째의 취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내향형인 첫째는 전형적인 집돌이다. 집에서 퍼즐을 맞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게임이 허락된 주말에는 게임이 최고지만.)
둘째는 외향적인 편이라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한다. 유치원 끝나고 나면 부리나케 놀이터에 나가 신나게 한두 시간은 뛰어다녀야 직성이 풀린다. 둘은 콘텐츠 소비 성향도 극과 극이다. 가끔 가족끼리 영화라도 같이 한 편 보러 가려 해도 둘 모두를 만족하는 옵션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검사해본 것은 아니지만, MBTI 성향도 아마 정반대로 나오지 않을까.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휴대폰이 가끔 띄워주는 옛날 사진에 비하면 키가 제법 컸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다. 어린이날 선물을 뭘로 받을까 고민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자면 여전히 어린이가 맞는데, 집에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다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의젓함’과 ‘양보’를 수시로 강요받는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줄곧.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제대로 상황도 모르는 아빠가 툭 내뱉는, 영혼 없는 리액션에 뿔이 날만도 하다.
둘째라고 뭐 좋을까. 둘째는 늘 ‘왜 오빠는 되고 나는 안 되는데!’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태어나보니 자기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센 존재가 엄마 아빠 옆에 딱 버티고 있다. 부모라는 사람들이 다른 것도 아니고 나이 가지고 치사하게 오빠랑 차별(?)을 한다. 그림도 제가 더 잘 그리고 아이돌 댄스도 제가 더 잘 춘다고 믿는 둘째 입장에서는 이만큼 부당한 일도 없다. (은아, 그래도 휴대폰은 초등학교 가면 사줄게.)
형제는 부모의 시간과 정성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같이 나눠 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형제자매가 있다는 건 각자의 입장에서는 어쩔 때는 불행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부모는 늘 고작 잘해야 절반 정도의 관심만을 내어주는 것 같다. 온전히 관심을 받아도 헛헛함이 채워질까 말까 한데, 그걸 또 나누다니. 아이들은 지금 정도의 관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으로 몸으로 계속 말한다. 엄마 아빠 나좀 봐 주세요. 왜 오빠 때문에, 동생 때문에 나까지 꾸중을 들어야 하는 건가요? 세상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 눈빛을 타고 전해온다.
아이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동생과 함께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모를 리가.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양육자로서의 경험이 조금은 쌓여서라고 해야겠다. 부모에겐 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다. 첫째도 둘째도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소중하다. 내 몸뚱어리가 하나인지라 매 순간 똑같이 들어주고 똑같이 놀아줄 수 없는 것이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늘 ‘니들도 커서 애들 낳아봐라.’는 말을 달고 사셨던 부모님 마음이 어느 순간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게 이전과의 차이라면 차이랄까.
지난 해부터 첫째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온전히 첫째에만 집중하는 시간, 자칭 ‘싱글 모드’를 켜는 시간이다. 둘째는 아내에게 잠시 맡겨두고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같이 나가 둘이 영화도 보고 (물론 이때의 작품 선택은 온전히 첫째의 몫이다), 여건이 허락되면 1박 2일이나 2박 3일 여행도 떠난다. 처음에는 살짝 어색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들도 꽤 적응이 되었는지 아빠랑 같이 나가자고 하면 익숙하게 자기 짐을 쌀 준비를 한다.
주말 오후였다. 이번엔 멀리까지 나갈 상황이 아니라 첫째와 함께 집 근처 문방구로 짧은 나들이를 나섰다. 첫째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같이 고르며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 나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그래? 아들 나는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평일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고군분투한 아빠와 아들, 부자간의 짧은 데이트였다. 짧지만, 세상에 오로지 너와 나 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순간.
아빠뿐이라서 2%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이렇게 가끔 둘이 밖에 나오면 좋단다. 적어도 이 시간동안에는 아빠가 자기를 ‘오빠’나 ‘맏이’보다는 ‘아이’로서 온전히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자연스레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아주 잠시나마, 엄마와 아빠가 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마음을 아이가 알아주었으면, 아빠도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평소에는 어쩔 수 없이 상대적 약자인 동생을 먼저 챙길 수밖에 없음을 헤아려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이에게 그것까지 차마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집에 들어왔는데 첫째가 갑자기 둘째를 부른다.
“야, 너 내 친구 강OO 알지? 이번 주 토요일 걔 생일인데 같이 갈래?”
“아~ 오빠 여자친구?”
“여자친구 저얼때 아니거든? 그냥 친구거든?”
“아닌 거 같은데…? 뭐 암튼 좋아, 가 주지. 그 언니 사실 나랑 더 친해서 나도 오라는 걸 꺼거든.”
“헐, 그건 진짜 아니거든? 내 친구거든? 나랑 더 친하거든? (부릅)”
아직 초등학교 입학도 안 한 둘째가 미디어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이 되긴 하는데, 그래도 둘이 티격태격 대화하고 있는 걸 뒤에서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난다.
고마워 아들. 당분간 싱글 모드 해제해도 되겠네.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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