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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ug 27. 2023

여름휴가를 맞는 자세

썬데이 파더스 클럽 (15)

“앞이야 뒤야?”


이것은 홀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짜는 작전계획의 일환이다. 연중 최대의 위기(?)라 할 수 있는 7말 8초를 과연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자유를 만끽하던 싱글 시절에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어딜 가도 비싸고 북적이는 7월 말, 8월 초에 기를 쓰고 휴가를 가려할까. 물론 업무 환경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휴가 일정을 조정하면 보다 여유롭게, 그리고 나름 합리적인 가격대에 여행을 떠날 수 있는데. 여름 무더위를 피해 피서지로 떠난다고 하지만, 사실 산으로 가든 바다를 가든 시원한 정도로 비교하자면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이 가장 시원한 것 아닌가. 북극이나 시베리아를 가지 않는 한은 말이다.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실은 너무나 보잘것없구나 생각했던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돌봄 기관과 교육기관은 서로 짜기라도 한 듯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에 문을 닫아건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은 보통 7월 셋째 주 또는 넷째 주에 시작하는데,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꽤나 장기간의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짧으면 1주, 운 나쁘면 2주 정도 평소의 루틴에서 아이들이 이탈한다.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적잖이 위협스런 난관이다.


주변의 수많은 육아 선배들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시기에 여름휴가를 떠났던 것은 그래서였다. 학교가 방학에 돌입하는 7월 3주 차부터 대부분의 학원 방학이 종료되는 8월 1주 차까지 각 거주 지역 학원가의 상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하나같이 사무실에서 사라졌던 이유. 쉴 휴(休) 자를 붙이자니 어딘가 멋쩍다. 안타깝기까지 하다. 오히려 이것은 매해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육아공백을 양육자들이 일터에서 허락된 각자의 연차를 써서 개인적으로, 몸으로 막는 기간에 가까운 게 아닌가.


상황이 그렇다고 두 손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찌어찌 몇 번의 여름을 겪고 나니 이제 조금 노하우가 쌓이긴 했다. 몇 가지를 들자면 이렇다.


첫째, 힘주어 스케줄을 짜지 않는다. 아이들 기억에 찐하게 남는 여름휴가를 보내겠답시고 과도한 계획을 세워 실행하면 아이들도 빡빡한 일정에 힘들어하고, 부모들도 강행군 속에 탈진하기 십상이다. 본래의 목적을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쉬려고’ 휴가를 내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학원 방학 기간을 버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참에 이번엔 여기를 가볼까?’ 스멀스멀 유혹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여간해서는 참는다. 꼭 이번 여름이 아니어도 된다고 스스로 되뇐다. 여름휴가 아니 여름 공백은 아이들이 학원을 졸업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계속되는 장기전이니까.


둘째, 반드시 온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 아이돌들이 유닛 활동을 하는 것처럼, 가족도 얼마든지 유닛이 될 수 있다. 때로는 아빠랑 아들, 엄마와 딸이 별도로 움직일 수도 있는 거다. 온 가족이 움직이려고 하면 교통비와 숙박비 증가도 물론 따라오지만, 무엇보다 복잡도가 올라간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힘들어하는 우리 가족 특성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반드시 함께 해야 돼’라는 전제를 하나 줄였을 때,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어쨌거나 즐거우려고 여름휴가를 떠나는 거지 불쾌지수를 올리려고 가는 것은 아니니까.


셋째, 등잔 밑을 찾아본다. 사실 굳이 머나먼 곳까지 떠나지 않아도 된다. (역시 같이 살고 있는 아이들의 개인적 성향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동네를 좋아한다. 평소에 학교와 학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오가며 지내던 이분들로서는 ‘학교에 (그리고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즐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굳이 유명한 관광지에 가지 않더라도, 평소에는 학교에, 학원에 있을 시간대에 동네 이곳저곳에서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을 충분히 신나 한다. 어른들도 평일에 휴가 내고 할 일 없이 명동 백화점을 거닐거나, 망원동 북카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지 않은가. 방학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아내와 나는 다음 주로 다가온 7말 8초 여름휴가 시즌을 따로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둘 다 업무상 회사를 일주일씩 비우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래서 아내가 월화 이틀, 그리고 내가 수목금 사흘을 나눠 휴가를 쓰기로 했다. (중간에 걸친 수요일에 누가 휴가를 쓰느냐로 살짝 신경전이 있긴 했으나, 회사보다 아내가 더… 이하 생략.)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여행 앱을 열어보긴 했으나 역시나 몇 달 전부터 바지런을 떨 게 아니면 핫딜 같은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었다. 유치원&학원 방학 첫 이틀 동안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동네를 거닐 것이다. 잘하면 집에서 30분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근교 어딘가를 다녀올 수도 있겠다. 내가 바통터치를 하는 수요일부터는 비슷한(?) 처지인 동생네 조카들과 조우하여 넷이 서로 치고받고 왁자지껄 하하호호 놀아댈 것이다. 저들이야 같이만 있어도 즐겁겠지만, 그래도 여름인데 물놀이 한 번 정도는 해야겠지.


여름방학만 되면 할머니댁과 고모네로 나를 보내곤 했던 30년 전 부모님들이 문득 떠오른다. 그분들 마음을 이제야 이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사십 대는 원래 이렇게 여름을 나는 것이었던가.




ps. 비슷한 처지(?)에 있을 다른 양육자님들을 위해 아이들과 여름에 함께 가면 좋을만한 곳들 링크를 달아 둡니다. 비록 대부분 서울 근교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아이들과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두 분께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1. 의정부 미술도서관 (경기 의정부시 민락로 248) - 2019년에 개관한 미술 특화 도서관입니다. 1층부터 천장까지 탁 트여 있어서 개방감이 있고,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도 종종 열립니다. 아이들이 볼만한 그림책도 물론 많이 있어요. 주차공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라서,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2.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 추상화가 장욱진 화백을 기리는 미술관으로 청소년 및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근처에 가볍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계곡이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3.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경기 부천시 길주로 1) - 만화를 좋아하는 가족이라면 필수 코스 중 하나입니다. 한국만화 관련 상설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고, 만화도서관도 있어서 종일 만화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꽤 큰 스크린으로 애니메이션 개봉작도 상영하고 있으니 미리 일정 보고 가시면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에요.


4.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48-40) - 바람이 부는 날이라면 가볼 만한 곳입니다. 바람의 언덕에 모여 있는 3천여 개의 바람개비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근처에 임진각과 작은 놀이공원도 있어서 아이들이 소소하게 기분 내는 데 좋아요. 단, 바람 한 점 없이 뙤약볕이 쬐는 날에는 더울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세요.


5. 강화 자연사박물관 (인천 강화군 하점면 강화대로 994-33) - 강화도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입니다. 무엇보다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20톤짜리 향유고래 뼈가 인상적인 곳이에요. 바로 옆에 있는 역사박물관 및 고인돌 유적과 같이 방학숙제용 역사탐방 테마로 묶을 수도 있습니다. (여름방학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도 있는데, 올해는 아쉽게도 마감된 것 같네요.)


#썬데이파더스클럽






정민@jm.bae.20


다음 책이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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