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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Sep 03. 2023

육아에서 은퇴하는 날

썬데이파더스클럽 (16)

1.
“아빠, 은퇴가 뭐야…?”


영화관에서 둘이 ‘엘리멘탈’을 보고 있는데 둘째가 난데없이 물었다. 으응? 은퇴?


영화 속에서 아빠가 딸에게 은퇴를 하겠다고 한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었나 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아이에게 속삭였다. 은퇴는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을 말한다고.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나이 든 아빠도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쉬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아이는 이해를 한 듯 만 듯 이마를 향해 눈알을 또로록 한 번 굴리더니 다시 화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만 여섯 살 둘째에겐 여전히 세상이 처음 만나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호두’, ‘비만’, ‘아이큐’, ‘오랑캐’ 같은 것들이 그렇다. 뜬금없이 일상어의 의미를 물을 때면 나도 순간 말문이 막힌다. 하루하루 입 밖으로 내뱉는 말들이 가진 본래 의미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살아가기엔 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니까.


은퇴. 은퇴라… 그러게 말이다. 은퇴란 뭘까.


2.

육아에도 은퇴라는 게 있을까? 육아에서 은퇴하는 날도 올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출근 버스에 몸을 실으면 묘한 안도감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 오곤 한다. 흔히들 말하는 육아 퇴근, ‘육퇴’의 순간이다.


이번 한 주도 다행히 무사히 지나갔구나.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느끼는 감정과 일면 비슷하면서도 꼭 같다고 보기는 어려운, 그런 감정이다. 굳이 무리해서 수식어를 붙인다면 시원섭섭…에 가까울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도 딱히 들어맞진 않는다. 주말 내내 아이들과 엎치락뒤치락하다 잠시나마 떨어지는 순간의 이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는 단어는 한국어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한 주에 일하는 시간은 보통 40시간 남짓이다. (때에 따라 종종 넘을 때도 있지만) 하루에 여덟 시간을 꼬박 일터에서 보낸다. 모두가 매일같이 무심결에 몸을 던지고 있어서 그렇지, 주 40시간을 써서 무엇인가를 한 방향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행위다. 물론 때로는 밀어도 꿈쩍 않는 바위처럼 아무 진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한 주 한 주가 켜켜이 쌓이다 보면 지나온 길을 돌이켜봤을 때 어느덧 뭐든 이뤄져 있음을 느끼는 순간도 가끔씩 마주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이란 것을 한다. 직장인으로든, 직업인으로든.


하루 여덟 시간은 적지 않은 시간이다. 한 달이면 160시간, 일 년이면 자그마치 2,080시간이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주어진다고 치자. 1년에 2천 시간씩 투자했을 때 정복하지 못할 취미가 있을까. 책 한 권을 두 시간에 읽는다고 치면, 책만 읽어도 1천 권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딱 그 정도의 시간을 육아에 쏟는다. 칼퇴를 가정하고 집에 오면 일곱 시다. 늘 실패하긴 하지만 그래도 씻기고 밥 먹이고 같이 놀다가 숙제 봐주고 양치 도와주고 열 시까지 재우는 게 목표이니, 계산해 보면 평일 하루 평균 3시간, 주 5일 15시간이 육아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매일 아침에 등교 등원시키는 데 드는 시간을 포함하면 이보다 더 늘어나겠지만, 매일 칼퇴를 하는 건 아니니까 퉁치면 비슷하지 않을까.)


주말을 보자. 주말은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새벽같이 눈을 뜬다. 조금만 더 이불속에서 머물고 싶은데 아이들은 부모가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꼴을 못 보는 것 같다. 대략 일고여덟 시면 어떻게든 잠자리에서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 말 그대로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틀의 시작이다. 같이 밥 먹고 옷 입히고 밖에 나가 놀다가 씻기고 또 밥 먹이고 집에서 놀다가 밀린 숙제 봐주고 양치 도와주고 열 시에 재우면 하루가 끝난다. 이걸 2회전 하면 주말이 순삭 된다. 8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내면 14시간, 이틀간 28시간이다. 평일 15시간과 합치면 43시간. 따져보니 육아에 들어가는 시간이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일하는 양육자들은 자연스럽게, 때론 자신도 깨닫지 못한 채 투잡에 가까운 인생을 살며 양쪽에서 분투하고 있는 셈이다.


식기를 치우고 방 뒷정리를 하며 때론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면 아이들이 한 뼘 더 자라 있다. 부모들이 내어준 시간들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첫째는 이제 잘못 들었다간 허리에 며칠간 파스를 붙여야 할 지경이다. 둘째도 잔소리 좀 할라치면 조잘조잘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옹골차게 대꾸한다. 가끔씩 어른인가 착각할 만큼 몸도 머리도 전에 비해 많이 컸다.


3.

‘은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전에 비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어느덧 직장생활 경험이 이십 년에 가까워지다 보니 사회 초년생 시절 같이 일하던 상사나 선배가 은퇴하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모습을 점점 더 많이 마주치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하는 기간, 소위 커리어라고 부르는 기간은 대략 30년에서 35년 남짓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60~65세를 전후하여 은퇴기를 맞는다. 지금까지 일한 만큼의 사이클을 한 번쯤 더 돌면 그때가 온다. 자연스레 나의 은퇴 모습도 떠올려보게 된다. 언젠가는 맞게 될, 정해진 미래다.


그렇다면 육아는? 시간으로 따져보면 삶에서 커리어만큼 혹은 그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게 육아다. 육아에도 은퇴가 있을까? 민법상 성년은 만 19세이고, 양육자는 그때까지 아이를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보면 둘째를 기준으로 지금부터 약 12년쯤 남았다. 첫째가 태어난 시점부터 따진다면 육아 커리어(?)도 그때쯤엔 대략 스무 해 남짓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도 한참은 더 부모에게 재정적으로 심정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소득을 창출하고 가정을 이루는 시기를 서른 무렵으로 본다면 육아 은퇴 기간은 10년 이상 미뤄진다. 그러고 보면 대략 30년에서 35년 남짓, 일로서의 커리어와 마찬가지의 시간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2048년….?)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을 만큼 까마득한 미래다. 그즈음의 나는, 육아 퇴근이 아니라 육아 은퇴를 앞두고 있을 나는 과연 무슨 마음으로 어른으로 자라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4.


“엄마가 너희를 낳았을 때 당시에는 난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했었어. 우리는 그저 아이들을 기억하려고 존재하는 거라고 했지.


이젠 그게 무슨 뜻인 줄 알겠어.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유령인 거야.”
- 인터스텔라(2014) 중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빠인 조셉은 딸 머피를 떠나며 알듯 모를듯한 위로를 한다. 첫째가 생겼을 무렵이었지만, 그땐 부모는 그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유령이라는 말을 그저 영화 속 복선 정도로 생각하고 흘려들었다. 십여 년이나마 아이들과 부대끼고 나서야,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온 아이들의 기억을 눈에 어느 정도 담고서야 비로소 딸에게 유령 타령을 하는 조셉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듯하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조기 은퇴를 하는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and Retire Early)를 꿈꾸지만, 동시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둔 다음에는 무얼 할까에 대해서는 정작 그닥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가, 주말이 힘들고 고되게 느껴질 때는 이 녀석들 언제 다 크나 싶다가도, 아이들이 모두 자라서 품을 떠나게 된 후에, 그러니까 ‘육아 은퇴’라는 것을 한 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기 우유병 모양 있는 거 아빠가 쓴 거야? 이서? 이서는 아이브 멤버인데, O형이고…? 엥, 그 이서가 아니라고? (눈알 또르륵)”


새벽같이 깨어나 도둑처럼 조용히 뉴스레터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으나 오늘따라 더욱 일찍 일어난 둘째 덕분에 결국 제시간에 마감은 포기했다. 대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같이 썬파클 다른 아빠들이 쓴 지난 뉴스레터를 같이 읽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어젯밤 잠들 때까지만 해도 어찌 됐든 양육자들도 이번 생에서 육아 은퇴가 필요하겠지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이의 온기가 전해지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음이 팔락팔락한다. 그래 육아에 은퇴가 어디 있어. 아이들과 이렇게 함께 하나씩 하나씩, 남은 시간 동안 기억을 더해가며 늙어가면 그걸로 된 거지.


결국 커리어의 끝이, 육아의 끝이, 인생의 끝이 고작 아이들을 위한 유령이 되는 것일지라도, 나는 유령으로서의 다음 커리어(!)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썬데이파더스클럽





정민@jm.bae.20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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