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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뮨 Mar 28. 2020

비공개 글이라니

feat. 굿나잇책방 겨울 통신

오늘 밤 H와 주고받은 톡

H   나도 같이 준비하면 좋을 텐데. 심야 책방이라니 굿나잇클럽 사람들 같아.
葉  저기, 내 일지를 몰래 본 기억은 잊어주면 좋겠는데.
H   싫은데? 나 클럽에 가입하고 싶거든. 


H  1호 회원이 될래. 네 일지 속 사람들은 가상의 클러버들이었잖아? 그러니까.
葉  음...
H  안돼?
葉  그럴 리가. 좋아.


H   전부터 궁금했어. 굿나잇클럽 회원은 무슨 일을 해야 해?
葉  그냥,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인사를 주고받는 일.
H   너무 간단한 거 아냐? 굿나잇- 이렇게?
葉  응.


H   굿나잇.
葉  굿나잇.

-굿나잇클럽 1호 회원 -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소설 속 주인공 은섭은 책방지기이자 때때로는 논두렁 스케이트장 안전요원이다. 독립서점인 굿나잇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고, 비공개 책방 일지로 하루를 정리한다. 세상 곳곳의 야행성 사람들이 회원인 가상의 굿나잇클럽을 만들었다. 혼자서 말이다. 



"굿나잇책방 겨울 통신"이라는 얇은 수첩 안에는 은섭이 쓴 블로그 비공개들들이 담겨있다. 정말로 주인공이 비공개로 쓴 글들을 몰래 나만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 추가 증정이라고 해서 '책을 한 권 더 준다는 건가?' 이러면서 클릭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아주 얇은 소책자다. 그런데 글이 꼭 길어야 하는 법은 없다. 짧게 짧게 써 내려간 은섭이의 비공개 글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면서 이렇게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는 것은 제법 매력 있고 나라는 것을 느꼈다.


Daily report를 매일 인스타와 블로그에 남기면서 그 날의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몇 줄 썼었는데 가끔 혼자 지난 글들을 보면서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지' '이때는 이걸 열심히 했었구나' 이런 것도 느끼고 좋았듯이 말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기록하면 그것은 영원히 남는 것이니 기록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H의 삶도 다사다난했지만 은섭의 출신 사항도 만만치 않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면 벌써 도피했거나, 뭔가 더 있어 보이기 위해 성공을 갈구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은섭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담담히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다. 이타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의 은섭은 매사에 불평불만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듯 좀 놔두는 스타일이다. 돈에도 그다지 집착하지 않고, 관계에 있어서도 인내를 갖고 기다릴 줄 아는 자이다. 이렇게 매사를 받아들이고, 유순하게 대하는 은섭의 매력 때문에 예민하고 날카로운 H도 점점 더 안정을 찾아간다.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보관하고 또 나중에 와서 마시듯이 책을 키핑 해놨다가 읽고 싶을 때 읽는 시스템을 도입한 굿나잇책방은 일반 서점과는 결이 다르다. 단순히 사고파는 행위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였고,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감정의 휴게소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초등학생과 청소년들도 자연스럽게 동화가 되고 점점 마음 문을 여는 모습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실제 초등학생이 옆에서 툭툭 대답을 하는듯한 대화체가 친근하게 다가왔고, 이런 공간이 정말 필요한데 많은 이들이 다른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누구나 일만 하고 살 수 없다. 주부도 살림만 하고 살 수 없고, 학생도 계속해서 공부만 할 수는 없다. 각자가 숨 쉴 구멍이 필요한데 그 공간이 없다. 그렇다고 사회 탓만 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나서서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이런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고, 자신의 관심사가 뭔지 찾으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책과 글 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음악, 아니면 손으로 만드는 뜨개질이나 공예품, 땀을 내는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나에게 숨구멍은 무엇인지 직업 외에 내가 잠시 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각자 알아야 한다. 



겉으로는 우리는 모두 다 멀쩡한 것 같지만 사실 그 삶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다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관계의 어려움, 대화가 되지 않는 가족들, 어디 가서 쉽게 오픈할 수 없을 정도의 가정사도 수두룩하다. 이런 것을 쉽사리 오픈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수군거림을 당할까 봐 우리는 철갑옷으로 괜찮은 척하고 산다. 그러나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 철갑옷에 온갖 감정들이 부딪히면서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낸다. 감추고 싶지만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들 수 없다. 이미 안은 망가질 때로 망가졌고, 서로가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주고받아서 회복이 쉽지 않아 시간도 정성도 많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전에 각자의 마음을 살펴봤으면 좋았을 텐데.. 단정 짓거나 추측하지 말고 그냥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철갑만 광나게 닦느냐고 바빴을지 모른다. 직접적으로 해결이 되면 너무 좋겠지만 곪을 때로 곪았을 때는 제3자의 개입이 현명할 수도 있다. 꼭 당사자끼리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힘들 때는 도움을 받기도 하고,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연극하듯이 살지 말고 숨구멍을 좀 뚫어놓고 살았으면 좋겠다. 굿나잇책방에서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들려서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고, 어떨 때는 쥐포도 구워 먹고, 또 가끔은 독서토론을 하는 등 이런저런 모양으로 들러가고 쉬어가듯이 나의 글과 상담도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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