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s 14. 경멸 contemptus
경멸(contemptus)이란
정신이 어떤 사물의 현존에 의하여 그 사물 자체 안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물 자체 안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끔 움직여질 정도로 정신을 거의 동요시키지 못하는 어떤 사물에 대한 상상이다.
<에티카> 스피노자
<경멸> 자신마저 파괴할 수 있는 서글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과 만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자꾸 타인을 배려하는 섬세한 마음씨를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소중한 정신적 태도가 떠오를수록, 우리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 자체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부정하게 된다. 이런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어떤 식으로든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상대방은 우리가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직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한 경멸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163
� 도서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 영화 & 드라마
부부의 세계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
안나 카레니나
우리도 사랑일까
� 음악 & 뮤직비디오
사랑했던 날들_백지영 (부부의 세계 OST)
Vampire_Olivia Rodrigo
꽃(Flower)_지수 (of BlackPink)
'깔보아 업신 여김'이라는 뜻의 '경멸'. 말이라는 게, 단어 하나에도 각각 에너지가 들어 있음을 느낀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느껴지는 싸한 기분.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포용할 수 있어야 감정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텐데 평소 밝고 낙천적인 편이라 받아 들이기 어려운 감정이다. 남에게 해서도 내가 당해서도 안되는 이런 감정들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두고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경멸의 정확한 의미를 업신 여기는 마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것은 알고 보니 '멸시'의 정의와 가깝다. 경멸에는 비교의 의미가 깔려있고, 멸시에는 미움이 깔려 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는 이 감정을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동명의 영화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려는 것. 이것이 바로 경멸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강신주의 감정수업> p168
'모든 것이 완벽했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를 외치며, 나쁜 사랑의 예시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을까? 연인이나 배우자가 나 몰래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건 그들은 짜릿할지라도, 당하는 입장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끔찍할 것 같다.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이 이런 감정들을 잘 표현했다.
가수 백지영의 '사랑했던 날들'은 목소리의 떨림까지 애달프게 느껴진다. 사람은 몸이 고달픈 것보다 마음이 고달픈 것이 훨씬 더 힘든 게 아닐까 싶다. 배가 고픈 것보다 마음이 고픈 게 더 허하게 느껴진다. 꼭 사랑이 아니라도 인간관계에서 충족될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생길 때 힘이 드는 법.
[Verse 1]
희미해진 기억 어느 봄날의 꿈들
전부 사라지고 시린 밤은 깊어가고
지친 맘을 모른 척해 봐도
[Chorus]
이제는 사랑했던 그날들이
소리 없이 찾아온 나날들이
수많은 계절들에 모든 추억이
지워낼 수도 없는 그 모든 추억이
이젠 보이지가 않고
더는 내 곁에 없어도
그리워할 수도 없을 만큼 나 아파서
마른 눈물을 삼켜내고
소리 없이 또 하루를 견딘다
[Verse 2]
희미했던 표정
어느 새벽의 아픈 기억들
전부 사라지고
기억 속에 너는 없고
나만 이렇게 멈춰있다
[Chorus] 반복
소리 없이 난 무너져간다
[Bridge]
그대 영원이란 약속들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지나간다
[Chorus 3]
한없이 사랑했던 그날들이
끝도 없이 헤매던 그날들이
수많은 계절들에 모든 추억이
지켜내야만 했던 그 모든 순간이
이젠 아무 의미 없고
모두 내 곁을 떠나고
견뎌낼 수조차 없을 만큼 나 아파서
마른 눈물이 쏟아지고
추억들에 난 무너져간다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문장처럼 완벽한 불화를 보여준 드라마 부부의 세계. 톨스토이가 이 드라마를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레빈과 키티 부부를 행복한 가정으로 보았고, 불륜이었던 안나와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탐욕이자 불행한 가정으로 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으로 체면과 용서 사이에서 묵묵하게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던 안나의 전 남편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의 감정은 어땠을까.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통렬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새것도 결국 헌것이 된다는 교훈(?)을 주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연인들의 엇갈림은 그렇다치더라도 불륜을 소재로 하는 스토리들은 아무리 진정한 사랑이자 운명이라고 해도 어딘가 불편하다. 생각해보니 이어지든 안 이어지든 셋 중 누군가는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고, 그 저변에는 한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경멸이라는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Vampire'라는 곡에서도 경멸과 분노가 느껴진다. 다 퍼주고 나서 전 남친으로부터 이용당한 기분을 느낀 여성의 절규다. 정말 이런 사람은 연인이든 지인이든 엮이지 않도록 해야 할텐데 사귀거나 알고 지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그저 조심하고 주의할 수밖에.
블랙핑크 지수의 '꽃'은 꽃 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도레미 ABC만큼 착했던 여성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흑화했음을 보여준다. 지수와 어딘가 언밸런스하고 어색한 느낌 때문에 이 곡이 나왔을 땐 적응이 필요했지만, 그 느낌 때문에 이 곡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남는다.
[Verse 1]
ABC 도레미만큼 착했던 나
그 눈빛이 싹 변했지
어쩌면 이 또한 나니까
난 파란 나비처럼 날아가
잡지 못한 건 다 네 몫이니까
활짝 꽃피웠던 시간도 이제 모두
내겐 lie lie lie
[Chorus]
붉게 타버려진 너와 나
난 괜찮아 넌 괜찮을까
구름 한 점 없이 예쁜 날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Verse 2]
You and me, 미칠 듯이 뜨거웠지만
처참하게 짓밟혀진 내 하나뿐인 라일락
난 하얀 꽃잎처럼 날아가
잡지 않은 것은 너니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이끌려
봄은 오지만 우린 bye bye bye
[Chorus] 반복
[Bridge]
이젠 안녕 goodbye
뒤는 절대 안 봐
미련이란 이름의 잎새 하나
봄비에 너에게서 떨어져
[Chorus 3]
꽃향기만 남아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경멸이라는 감정이 일어날 때는 결코 건강한 관계일 수가 없다. 안타깝지만 그럴 땐 거리를 두거나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지 않은가.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도 유한한 삶의 시간.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시간만 지연시킬 뿐 그런 노력조차 아까운 경우도 있다. 적어도 이런 감정들을 유발한다면, 서로를 위해 정리하는 것도 지혜로움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주위에는 건강한 관계를 맺은 좋은 인연들이 더 많이 함께 하고 있기에 더욱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좋은 분들이 먼저 떠오르신다면 참 다행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카테고리
(감정의 포스팅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땅의 속삭임
1. 비루함(낙담) 2.자긍심 3. 경탄 4. 경쟁심 5. 야심 6. 사랑
7. 대담함 8. 탐욕 9. 반감 10. 박애 11. 연민 12. 회한
� 물의 노래
13. 당황 14. 경멸 15. 잔혹함 16. 욕망 17. 동경 18. 멸시
19. 절망 20. 음주욕 21. 과대평가 22. 호의 23. 환희 24. 영광
� 불꽃처럼
25. 감사 26. 겸손 27. 분노 28. 질투 29. 적의 30. 조롱
31. 욕정 32. 탐식 33. 두려움 34. 동정 35. 공손 36. 미움
� 바람의 흔적
37. 후회 38. 끌림 39. 치욕 40. 겁 41. 확신 42. 희망
43. 오만 44. 소심함 45. 쾌감 46. 슬픔 47. 수치심 48. 복수심
48가지 감정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한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목차를 따랐으며,
감정에 관한 포스팅은 도서 내용과 별개로 헤아리다가 선정한 음악과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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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의 속삭임
Emotions 01.비루함, 낙담(adjectio) 자존감을 회복할 때
Emotions 02. 자긍심 acquiescentia in se ipso '당당히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
Emotions 03. 경탄 admiratio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Emotions 04. 경쟁심 aemulatio '권투 말고 건투를 빌며'
Emotions 05. 야심 ambitio 야생의 생명력으로 야심차게
Emotions 06. 사랑 amor 마주 잡은 은유의 기쁨
Emotions 07. 대담함 audacia 무모한 질문에 대한 무한한 대답
Emotions 08. 탐욕 avaritia 갈망할수록 갈증나는
Emotions 09. 반감 aversio 'Make it better'
Emotions 10. 박애 benevolentia 'We are so beautiful'
Emotions 11. 연민 commiseratio 사랑이라 믿었던 연민
Emotions 12. 회한 conscientioe 오지 않은 슬픈 나날의 두려움
� 물의 노래
Emotions 13. 당황 consternatio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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