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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Sep 23. 2023

진심으로 빌게

Emotions 15. 잔혹함 crudelitas



잔혹함(crudelitas)이나 잔인함(sovevitia)이란
우리가 사랑하거나 가엽게 여기는 자에게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

<에티카> 스피노자



<잔혹함> 사랑의 비극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애인에게 얼마나 헌신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놀라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기적이었던 사람도 거의 성인처럼 이타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만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기적이니까.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랑에 빠졌던 사람은 애인에게 자신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경악하는 순간도 분명 경험했을 것이다. 괴물과도 같은 잔혹함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독해질 수도 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p171-172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폭풍의 언덕 (원작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음악 & 뮤직비디오

사랑이었나봐_기리보이

이런 엔딩_아이유

이런 엔딩_아이유 & 뷔 라이브

밥만 잘 먹더라_Homme (창민 & 이현)





잔혹함은 '잔인하고 혹독하다'는 뜻이다. 더불어 라틴어 crudelitas은 잔인성, 포악, 잔악 등의 의미다. 너무 매몰찬 단어라서 이 속에 아무리 봐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빛에 그림자가 따르듯 사랑에 희극만 있는 게 아니다. 비극이 함께 존재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철천지 원수였던 두 집안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이었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광기와 애증의 사랑을 그렸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잔혹함을 설명하기 위해 소개한 소설은 찰스와 키티와의 외도와 그걸 알게 된 남편 월터 이야기,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이다. 사랑의 작대기가 잘못 가면 꼭 이런 탈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한번도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어쩌면 서로 맞춰 가는 과정이 사랑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스파크가 튀어 금새 달아오른 사랑은 금방 식어버리기 쉽고, 일방적으로 한쪽이 희생으로 참아가며 맞추거나, 아니면 그만큼 사랑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들이 두더지같이 튀어오를 때마다 내리치는 두더지 게임 같기도 하다. 너무 격해져서 지쳐 나가 떨어지면 Game over!



기리보이의 '사랑이었나 봐' 뮤직비디오 속 연인은 지금 치열한 사랑 중이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저토록 저돌적일 수 있겠냐마는, 마음 속 아픔은 이토록 증폭된다. 알고 보면 갈등의 근원은 사소한 것이다. 질투를 유발하거나 서운하게 했을 경우, 말 한마디 잘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자존심 때문에 버틴다거나 등. 부부 싸움이 칼로 물베기인 것처럼, 연인들도 갈등을 통해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해 나간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간의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이기에 어쩌면 불가피한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런 해결과 극복 과정이 없이 마냥 좋기만 하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좋기만한 관계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앞서 말했듯 누구 하나 억누르고 참고 있다거나, 그 사랑이 그만큼 깊지 않다거나. 아님 뭔가 필요해서 유지한다거나. 이 과정을 통해 서로 맞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고, 더 좋은 사람임을 확신할 수도 있다. 잔혹하게도 사랑에 희극과 비극, 양면이 모두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이 곡은 지나고 나서 사랑이었음을 깨달아 버렸다. 있을 때 잘하자.



사랑이었나 봐_기리보이



[Verse 1]

사소한 것들 땜에

크게 다퉜었지

하루 종일 말도 안 하고

꿍해 있었지


[Chorus]

사랑이었나 봐

그땐 몰랐지만

전부 다 지나고 나서

깨달았어

둘 중 하나 누구 한 명만

한 번만 져줬었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Verse 2]

연락을 늦게 해서

크게 다퉜었지

나 일하느라 그랬어

하루 종일 혼났지


[Chorus] 반복


[Bridge]

가끔은 연락을 안 하고 계속 잤다고

아 미안 영화 보느라고 못 봤다고

그 영화 나랑 안 보고

왜 혼자 봤냐고

아 미안 친구가 갑자기 약속 잡았어

화나면 우린 하루 종일 말도 안 하고

될 대로 되란 식 친구와 술을 마시고

우리 싸우는 거 보면

가끔은 올림픽 같았어

1등이 아니면 성이 안 차도

그건 그래도


[Chorus] 반복




아이유의 '이런 엔딩'은 최근 BTS의 뷔가 솔로앨범을 내면서 아이유의 팔레트 채널에 나와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진심으로 빌게. 너는 더 행복할 자격이 있어' 이런 말이 더 아프다는 노래. 아. 그러고 보니 이렇게 다정한 말이 이별할 땐 정말 잔인하게 들릴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헤어짐을 받아 들이기 힘든 상대를 위한 말이긴 하겠지만,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게 비쳐지기 위한 이기적인 말일 수도 있고. 



사랑이 언제나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어찌 늘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럴 땐 진짜 자신의 끝사랑을 만나기 위해 성숙해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쳐가는 인연에게서 너무 많은 아픔을 감당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런 엔딩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이런 엔딩_아이유


[Verse 1]

안녕 오랜만이야

물음표 없이 참 너다운 목소리

정해진 규칙처럼

추운 문가에 늘 똑같은 네 자리


[Pre-Chorus]

제대로 잘 먹어 다 지나가니까

예전처럼 잠도 잘 자게 될 거야

진심으로 빌게

너는 더 행복할 자격이 있어


[Chorus]

그런 말은 하지 마 제발

그 말이 더 아픈 거 알잖아

사랑해줄 거라며 다 뭐야

어떤 맘을 준 건지 너는 모를 거야


[Verse 2]

외로웠던 만큼

너를 너보다 사랑해줄 사람

꼭 만났으면 해

내가 아니라서 미안해

주는 게 쉽지가 않아


[Chorus] 반복


[Chorus 3]

솔직히 말해줄래 제발

너라면 다 믿는 거 알잖아

네 말대로 언젠가 나도

나 같은 누군가에게

사랑 받게 될까


이런 엔딩_아이유 & 뷔 of BTS



사랑이라는 환상에 갇혀버리면 언제 나타날지 모를 진짜 내 사랑을 받아 들이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사랑에 잔혹함이 있는 이유는 아닌 건 아닌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매정하지만, 서로에게 행복을 줄 수 없는 사랑, 인내할 수 없는 사랑이라면, 서로의 인연을 위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상대에 대한 배려다. 누군가를 사랑할 땐 진심으로 후회없이 사랑하고, 서로의 인연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잔인하지만, 돌아서야지 어쩌겠는가.



Homme, 창민과 이현이 부르는 '밥만 잘 먹더라'는 지금 들어도 명곡이다. 아픔에 잠식되어 있지 말고, 자신만의 엔딩을 그려나가는 것. 때론 시간의 도움도 받을 줄 아는 자세. 지난 인연에 감사하는 태도. 잊어도 못 잊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좋은 인연에게 닿을 것이다. 새로운 인연에게 잘하자 ! :)



밥만 잘 먹더라_Homme (창민 & 이현)


[Chorus]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 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눈물은 묻어 둬라

당분간은 일만 하자

죽을 만큼 사랑한

그녀를 알았단 그 사실에 감사하자


[Verse 1]

이미 지난 일 말하면 뭐해

돌릴 수 없는데

괜히 아픈 가슴만

다시 들춰내서 뭐해 쓸데 없게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울게 허락된다는데

괜히 허튼 일들에

아까운 눈물 낭비 말자 오


[Chorus] 반복


[Verse 2]

아주 가끔 니 생각이 나서

슬퍼지려 하면

친구들과 술 한잔

정신 없이 취하련다 다 잊게

미워한다고 뭐 달라지나

그냥 사랑할게

단지 볼 수 없단 걸

견딜 만큼만 생각할게 오


[Chorus] 반복


[Chorus 3]

바람이 지나간다

시리게 나를 울린다

억지로 참아봐도 자꾸 목이 메어

니 이름을 불러본다

잊어도 못 잊겠다

너를 지울 수가 없다

남자답게 웃으며 보내야 하는데

자꾸만 난 울고 있다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카테고리
(감정의 포스팅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땅의 속삭임
1. 비루함(낙담)  2.자긍심  3. 경탄  4. 경쟁심  5. 야심 6. 사랑 
 7. 대담함  8. 탐욕  9. 반감  10. 박애 11. 연민  12. 회한

� 물의 노래 
 13. 당황 14. 경멸 15. 잔혹함 16. 욕망  17. 동경  18. 멸시 
19. 절망  20. 음주욕 21. 과대평가  22. 호의  23. 환희  24. 영광

� 불꽃처럼
25. 감사 26. 겸손 27. 분노 28. 질투 29. 적의 30. 조롱
31. 욕정  32. 탐식 33. 두려움 34. 동정  35. 공손 36. 미움 

� 바람의 흔적
37. 후회  38. 끌림  39. 치욕  40. 겁 41. 확신  42. 희망 
 43. 오만  44. 소심함 45. 쾌감 46. 슬픔 47. 수치심 48. 복수심

48가지 감정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한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목차를 따랐으며,
감정에 관한 포스팅은 도서 내용과 별개로 헤아리다가 선정한 음악과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 이전 포스팅


48가지 감정 위로 음악은 흐르고

48 Emotions <Prologue>


� 땅의 속삭임

Emotions 01.비루함, 낙담(adjectio) 자존감을 회복할 때

Emotions 02. 자긍심 acquiescentia in se ipso '당당히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

Emotions 03. 경탄 admiratio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Emotions 04. 경쟁심 aemulatio '권투 말고 건투를 빌며' 

Emotions 05. 야심 ambitio 야생의 생명력으로 야심차게

Emotions 06. 사랑 amor  마주 잡은 은유의 기쁨

Emotions 07. 대담함 audacia 무모한 질문에 대한 무한한 대답 

Emotions 08. 탐욕 avaritia 갈망할수록 갈증나는

Emotions 09. 반감 aversio 'Make it better'

Emotions 10. 박애 benevolentia 'We are so beautiful'

Emotions 11. 연민 commiseratio 사랑이라 믿었던 연민

Emotions 12. 회한 conscientioe 오지 않은 슬픈 나날의 두려움


� 물의 노래

Emotions 13. 당황 consternatio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Emotions 14. 경멸 contemptus 꽃 향기만 남기고




✅ 지난 포스팅

https://brunch.co.kr/@serendipityscon/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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