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Jun 01. 2020

한/중/일이 서로 돕는 개벽의 징후

-지구학으로서의 <개벽의 징후 2020> 읽기 - 2

* 이 글은 ≪개벽신문≫ 제94호(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지난 4월부터 시작하고 있는 <지구학읽기> 모임의 6번째 텍스트는 개벽의 징후 2020≫(모시는사람들, 2019)이었다. 발제는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황명희, 송지용, 최규상이 책의 구성에 따라 각각 1부-2부-3부/4부를 각각 나누어서 하였는데, 이하는 그때의 발제문을 수정한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3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제2부 한중일 개벽의 동반자


송 지 용 | 원광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


들어가는 말


개벽은 이미 우리 곁에 와서 징후를 보이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기전환, 새로운 문명 건설과 같이 앞으로 나아갈 지향이기도 하다. 이런 전환과 건설에는 다양한 관점과 힘 그리고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의 상황과 이 책을 보면서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간단히 소개하면, 일본은 삶의 기술과 모델 그리고 디테일한 것들을 담당하고, 중국은 강한 힘과 거대한 스케일로 큰일을 해 나가며, 한국은 그런 개벽이 실험되고 실천되는 마당(현장, 플랫폼)의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상적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흡사 삼국지의 관우, 장비, 유비의 역할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러한 틀을 바탕으로 제2부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개벽을 위한 일본의 역할 : 삶의 기술과 모델 그리고 디테일한 것


김유익의 <개벽의 케리그마, 동아시아에서 유라시아로 울려 퍼지다-일본편>에는 비전화 공방1을 만든 후지무라 선생이 “이 나라(일본)는 글러먹었어”라고 탄식하는 대목이 나온다. 125년 전에 다나카 쇼조가 “이 나라는 망국이 되었다.”2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글에 등장하는 ≪나비문명≫을 쓴 마사키 선생도 비슷한 말을 하면서 한국을 무대로 활동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3 마사키 선생은 앞으로의 시대에 필요한 노아의 방주가 될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동아시아평화시민회’를 만들자고 한국의 도법 스님께 제안했다고 한다. 저자 김유익도 일본이 망국이 되었다는 것에 동감하며 '선(先)망국(亡國)이 되어 버린 일본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근대화의 선구자이자, 자급자족 기술과 심미안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생활디자인 문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배우고 교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도 이런 의견에 동감한다. 한국은 현장으로서 남과 북, 동과 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상생의 마당(플랫폼) 역할을 하고, 코로나 이후에 생명·평화를 가치로 하는 전환적 정치, 경제, 기술, 생태 등을 포함한 새문명의 모델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동학에서 시작된 개벽사상을 중심으로 사상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삶의 기술과 공동체 모델 등을 배우고 교류하면서, 함께 개벽공동체의 모습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본의 공동체들과 한국의 시민 및 그룹 간 교류는 활발하다. 김유익의 글에서 언급된 전환마을(Transition Town)4 후지노5 등은 한국의 전환마을과 활동가들과도 교류하고 있다. 또 ‘동아시아 지구시민촌’6도 일본의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에서는 부산 온배움터 그룹, 김재형, 넥스트젠코리아(next gen Korea)7 등의 단체들이 함께 기획·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나온, 지구생태마을네트워크(GEN)8의 에스원과는 한국의 유상용, 넥스트젠이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또한 치바현 카모가와시가 무인양품과 협업하여 테라스오피스를 만들고 국립치바대학교 지역활성화 연구팀, 그리고 무인양품의 좋은생활연구소가 그곳에 상주하는 모델은 한국에서도 실천해 볼 만하다. 일본에서는이런 공간을 중심으로 반농반X9 실천자, IT종사자 첨단기술자 귀농자들이 모여들어 지역을 활성화하고 대안적 공간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일본에 갔을 때 방문하거나 전해 들었던 사이하테와 야마노코학사, 크로스, 표주박시장 등도 이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새로운 삶을 실험하고 디자인해가는 생활 모델이었다. 이런 활동과 아름다운 생태적 생활 모델의 기반에는 1970년 생협운동, 80년대 운동권, 실용성 미학을 민예운동으로 승화시킨 종교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정신이 삶속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토시마의 이토나미 공동체를 만든 후지이 요시히로(별명: 후지몽)도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2019년 동아시아지구시민촌 기조강연에서 동학의 삼경사상과 고대 일본의 신도를 심층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비교하고, 이것을 세계평화를 위한 바른 길로 여긴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늦게나마 그 행사에 참여하여 한일 청년개벽여행을 함께 논의하고 후지이와 한국의 이병한 선생을 연결해 주었다. 이후에 실제로 청년개벽여행이 한국에서 이루어졌고, 나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교류과정이 김유익의 말처럼 한일청년들이 구체적 삶의 기술과 그 정신을 배우고 성장하는 장이 되었을 것이다.


2. 개벽을 위한 중국의 역할 : 강한 힘과 거대한 스케일로 큰일을 해나가는 것


역시 김유익이 쓴 <개벽의 케리그마, 동아시아에서 유라시아로 울려 퍼지다 - 중국편>에서는 중국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신향촌건설운동을 시작한 윈톄쥔 교수는 ‘마지막 유학자’ 량수밍의 제자이다. 그는 베이징대학교 교수를 그만두고 신향촌 건설운동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진정한 중국판 개벽의 시작을 향촌건설운동으로 보고 있다. ‘문화와 교육’을 중심으로 한 향촌건설운동파가 국공내전을 거치며 시대정신인 토지혁명을 내세운 향촌 혁명파, 즉 공산당에 밀리고 이후에 경제중심주의 산업화에도 밀려 있었는데, 지금의 윈톄쥔을 중심으로 다시 드러나고 있다고 보았다. 


향촌진흥사업은 중국정부 주도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쌍을 이루는 최상위국가 정책이다. 윈테쥔은 향촌진흥 사업이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향촌 전통에 기반을 둔 자치와 거버넌스가 천의무봉하게 결합, 소농중심 농경문명의 본원적 생태주의 다양성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문명 차원의 위기 극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112쪽). 동시에 외부적인 평가는 한계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기층에서 분투하는 신향촌 건설운동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윈테쥔 교수의 담대한 구상을 설명하며 생태적 향촌을 활용한 생태벨트를 만드는 것, 소프트웨어 중심의 향촌진흥 전략을 문명 전환 스케일에 걸 맞는 거대한 비전으로(115쪽) 평가하고 있다.


중국의 사례를 들으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와 전통에 기반을 둔 자치 거버넌스가 모순된 것 같아 과연 공존 가능할까 하는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벽적 문명을 만들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각자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은 분명하게 생태문명건설과 향촌진흥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추진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일을 해 나가는 스케일이 유라시아를 관통하고 전 세계의 구원을 논하는 크기10였다. 이것이 중국의 역할일 것이다.


한국은 현재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합을 중시하는 신남방 정책으로 중국과 미국을 견제하면서 평화경제와 평화정치 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기반으로 북한과의 평화적 협력을 진행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신북방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국은 견제와 협력을 통해 생명과 평화의 길, 즉 개벽의 길로 나아가는데 중국의 큰 힘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김유익은 개벽파 기지 중 한 곳으로 원광대학교를 언급하면서 2018년에 윈톄쥔 교수가 동학기행에 참여했을 때 박맹수 교수(현 원광대학교 총장)와 나눈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박맹수 총장은 “동학의 후예인 생명·평화 운동파와 량수밍의 제작인 신향촌건설 운동파가 함께 교류하고 생각을 나눴으면 합니다.”라고 제안하였고, 윈톄쥔 교수는 흔쾌히 동의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개벽파가 사상과 실천을 공유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기대했다. 저자의 기대대로, 저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2019년에 원광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개벽파들이 중국에 가서 동학과 천도교에 대해 발표하고 학술교류를 하였다. 앞으로 사상적 교류와 실천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을 기대해 본다.


3. 개벽을 위한 한국의 역할. 개벽 마당, 사상적 안내국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많이 언급하였지만, 국내적 관점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김재형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 코로나 바이러스와 주역 수괘(需卦)>는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시로 읽는 주역≫과 ≪동학의 천지마음≫을 저술-출간하고 ≪동아시아 3국이 함께 읽는 도덕경≫을 집필하여(-근간) 출간할 예정인 동아시아인문운동가로, 연초에 수괘를 뽑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였고, 실제로 코로나가 한국에 왔다. 그리고 한국이 세계적인 위기 대응 모범국가로 존경받게 될 것이며, 한국인의 의식 철학을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때 우리가 가르쳐야 할 주요한 가치는 수괘의 메시지와 같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오시더라도 한울님 내 집에 오신 것처럼 공경하는 마음”이라고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동학은 21세기 세계의식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삼경(三敬)사상 수련을 말하였다(152쪽). 그것은 경인(敬人)=손님(사람)모심 수련법, 경물(敬物)=인공지능·동물·물질모심 수련법이다. 하지만 저자는 경천(敬天) 수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 경천은 진정한 자기(참나=내 안의 한울님) 모심, 즉 자기 사랑 수련법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고은광순의 <적폐청산(積幣淸算) 재조산하(再造山河)>는 ‘개벽의 징후’라는 주제에 충실히 서술되어 있다. 갑을 관계에서 연대한 을의 집단지성이 스스로 상처내지 않으면서 촛불혁명 탄핵 등을 성공해 내는 사례와 호주제폐지, 정치·사법영역의 여성 비중 증가, 미투운동, 그리고 ‘남북 군인 모두 어머니 자식’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활동하는 평화어머니회의 예를 들어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를 설명하였고,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청주야산 장애 여중생 실종사건, 개와 고양이 학대 소유주 처벌 청원 등의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 획일적인 공교육 극복을 위해 서열매기기를 벗어나서 행복중심교육으로 바꾸는 노력과 변화 등을 개벽의 징후로 다루고 있다.


나가는 말


내게는 오랜 고민이 있었다. 최근까지 이어오던 고민이었다. 개벽의 모습은 왜 한국에서 찾기 힘들었을까? 내가 느낄 수 있는 개벽은 왜 정읍과 익산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을까? 그 고민이 이 책과 최근 몇 년간의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답을 얻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개벽이라고 믿었던 것은 실제 경험되는 것이어야 했다. 나에게 개벽은 사회기업에서, 생태, 영성 혹은 대안공동체에서 느낀 것처럼 실제 삶터와 사람 간의,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것이어야 했다. 또 관심있던 주제 이외의 것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개벽의 조각을 보고, 개벽이라는 코끼리의 다리만 만진 격일지도 모른다. 혹은 아직 통합적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눈보다는 크게도 보고 작게도 보는 두 눈이 있다면 더 잘 볼 수 있고, 하나의 방법보다는 섬세하게 만들어갈 손과 힘쓸 몸통 그리고 활용하고 방향을 잡을 머리가 있다면 더 잘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삼국이 함께 만들 개벽세상을 기대해본다. <다음호에 계속>


<주석>

1  후지무라 야스유키가 설립한 '비전화공방'은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2  고마쓰 히로시 저, 오니시 히데나오 역,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상추쌈, 111쪽.

3  2019년 청년동학여행 ‘여기 잇다’에서 오하이오(현우)와 한국 측 참가자 김단이 전해준 이야기다.

4  오일피크 기후변화라는 두 가지 위기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게, 공동체를 중심으로 회복력을 높이는 운동이 전환도시 운동이다.  토트네스가 대표적이며 한국에는 소란이 처음 소개하고 활동하고 있다.

5  관련 논문으로 김규환, <사회혁신의 주체로서 지역 공동체의 힘 - 일본 가나가와현의 전환마을 후지노>(≪오늘의 문예비평≫, 통권 115호, 2019년 겨울)가 있다.

6  지속가능한 사회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시민들의 만남과 교류의 터이다. 동아시아 지구시민촌은 자연과 상생하는 아시아지역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시민들이 만나서 소통하는 자리이다. 2014년, 2015년에는 "지속 가능한 사회와 아시아의 예지(叡智)"를 주제로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동아시아 지구시민촌’ 대회를 개최하였다. 출처 : 동아시아지구시민촌 페이스북.

7  청년 지구(세계)생태마을네트워크 한국지부

8  지구(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https://ecovillage.org/)

9  ‘반농반X’는 농업으로 꼭 필요한 것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하는 동시에 저술·예술·지역 활동 등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X)’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시오미 나오키 저, 노경아 역, ≪반농반X의 삶≫, 더숲, 20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