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의대에서 살아남는법, 소아과 의사
부모님 희망 아이들 장래희망 순위에 의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수능 점수로 대변되는 수험생들의 선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모두가 어떻게 들어가는 지에만 집중하지, 의대 입학 후 어떤 환경이 펼쳐지는지, 의사의 커리어 패스는 어떠한지 심도 있게 알아보지 않는다.
의사 사회가 폐쇄적인 것도 있겠지만, 의사들이 너무 바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어려운 것도 하나의 이유라 생각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계획에도 없던 의대에 들어가 고생한 끝에 소아과 전문의가 된 이번 인터뷰이의 안내에 따라 의대 생활부터 의사 커리어까지, 의대의 A to Z를 살펴보자.
-Up (業) Side 목차-
03. 전략 컨설팅이 궁금하다고? (Feat. 뉴욕 컨설턴트)
11. 다들 주목! OECD 아프리카 담당이 한국인이라고?
13. 나의 두 번째 직장, 사모펀드(PE)의 A to Z
14. Next Steve Jobs? 상품 기획자의 삶
15.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만든다, 가구기획자 이야기
-글 목차
1. 숨 쉴 틈 없던 인턴/레지던트 생활
2. 소아과 전문의가 된 이유
3. 의대에서 살아남는 법
4. 의대 그 이후,
안녕~ 업사이드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해 :)
안녕하세요~ 저는 소아과 전문의로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최근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 마을 보건 지소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한 31살 6년차 의사입니다.
얼굴 좋아 보여! 어떤 일 하길래 그렇게 좋아?
드라마에서 보던 섬마을 같은 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 진료를 보고 있어. 환자 숫자가 많지 않아서 진료 보면서 느긋하게 이야기도 하고, 마을 회관에 출장 진료도 가고 그래. 쉬는 시간에는 요리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책도 읽어. 숨 쉴 틈도 없던 병원 생활을 생각하면, 정말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이야.
그럼 병원 생활은 힘들었어?
의과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의 과정을 거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따. 인턴은 한 달은 내과, 한 달은 소아과, 이렇게 과 별로 로테이션을 돌면서 어떤 과를 갈지 정하는 단계야. 그 다음에 레지던트(전공의) 생활을 4년 하고, 전문의 시험을 치면, 특정 과의 전문의가 되는 거야.
이때 인턴, 레지던트는 직장인이야.
직장인이라는 건 무슨 뜻이냐 하면…… 방학이 없다는 거야……
인턴은 병원의 모든 잡일을 다도맡아서 해.
새벽 6시부터 병동을 돌아다니면서 피를 뽑고, 드레싱(상처소독)을 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고, 선생님들 차트 내리고, 심부름 하고, 회의실을 준비하는 등 병원을 돌아가게 하는 일을 했어.
의사 면허증을 받으면, ‘나는 의사다’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인턴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점점 사라져. 실습생은 돈을 내고 다니는 학생님이고, 인턴은… 노예랄까.
직장인처럼 퇴근을 하는 걸 오프라고 부르는데, 나 때만 해도 오프는 일주일에 한번이었어. 저녁 6~7시에 집에 가는 것은 그때뿐이었고, 그 외의 모든 시간이 일하는 시간이었어. 주당 근무시간이 거의 130~140 시간이었어.
일과 시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환자가 발생하면, 피를 뽑고, 드레싱을 해야 하고, 새벽에도 간호사가 ‘응급 채혈 있어요’ 하면 바로 가야 해. 10분 잠들었는데 말이야ㅜ 인턴 때 잘 못 씻어. 씻을 시간에 자고 싶거든. 지저분하게 다니게 돼. 인턴은 가운도 잘 안 입어.
와… 그런 게 말로만 듣던 인턴 생활이구나. 고달팠겠다. 레지던트 생활은 어땠어?
레지던트는 주치의로서 환자를 봐. 만약 네가 병원에 환자로 온다면, 내가 너한테 가서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고, 그 동안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어떤 검사를 해야겠다, 어떤 약을 줘야겠다는 치료 계획을 세우는 거지.
그리고, 담당 교수님이 회진을 돌 때, 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거야. ‘어떤 증상으로 왔고, 진찰을 해보니까, 이런 증상이 있었고, 임프레션은 감기입니다. 전공 책에 보면, 감기에 대해서 이런 식의 치료 방침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런 약을 쓸 계획입니다.’ 하고 말이야.
그러면 교수님이 ‘그건 아니지’ 하고 혼내기도 해. 책임자인 교수님이 최종적으로 치료 계획을 결정하면, 그 결정대로 치료가 흘러가지. 4년 동안 그런 일을 하는 거야.
소아과 레지던트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의사 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사실 레지던트 1년 차는 인턴보다 더 힘들어. 체력적으로 인턴만큼 힘든데, 치료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거든. 윗년차 선생님들한테 혼나고, 교수님들한테도 혼나는 일이 많았어.
특히, 첫 달은 어버버 하니까, 보호자들도 우리를 안 믿어. 윗년차 선생님들이 ‘빽’으로있는데, 보호자들이 빽 선생님이 더 잘하는 것 같으니까 우리를 무시해.
그런데 나중에는 안 그래. 아기가 좋아져서 손을 흔들면서 나갈 때, 의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의대 다니는 6년 동안, 인턴 하는 1년 동안 후회만 했는데, 소아과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한 이후로는 한번도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어.
우와… 아기가 손을 흔들면서 나갔다고? 영화의한 장면 같다!
하하. 사실 그런 일이 정말 잘 없어. 가끔 있는 그런 순간들이 힘들었던 기억을 미화시켜 주는 것 같아. 레지던트 2~3년차가 되면, 경험이 많이 쌓여서, 실력에 자신감이 붙어. 병동도 일반 병동이 아니라,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보지. 병원에서 일하면서 제일 보람 있었을 때가, 중환자실에서 1~2년차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을 데리고 지휘자 입장에서 뭔가 해냈을 때였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는 하나만 잘못해도 환자가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착착착 해낸 거야. 프로토콜에 따라서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야.
환자나 보호자는 몰라. 우리 의료진만 알 수 있어. 보호자에게는 ‘중환자실에서 위험했지만, 좋아졌다’이렇게 말하지만, 우리끼리는 ‘우리 오늘 정말장난 아니었지 않냐?’ 하고 자축하지. 아무도 몰라주지만, 정말 그렇게 완벽한 판단에, 완벽한 조치를 했을 때, 우리끼리 우리가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제일 행복했어.
소아과를 가고 싶다고 결심한 계기는 뭐였어?
음… 여러 방면에서 고민해봤을 때, 소아과가 가장 잘 맞을 것 같았어. 의과는 크게 진료과(내과, 외과, 소아과 등)과 비진료과(영상, 진단, 병리의학과 등)로나눌 수 있어. 나는 환자를 보고 싶어서 진료과로 방향을 잡았어. 진료과는 다시 수술과와 비수술과로 나뉘는데, 인턴을 하면서 수술을 하는 건 어렵겠다고 느꼈어.
어떤 이유에서 수술은 어렵겠다고 느꼈어?
우선, 수술 중에 무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어. 의사가 수술 중에 장갑이 찢어지거나, 땀이 흘러내리거나 해서 오염되면, 수술실 밖으로 나가서 씻고, 새로운 가운과 장갑을 착용하고 들어와야 하거든. 그래서 얼굴이 가려워도 긁을 수 없고, 땀이 나도 옆에서 간호사들이 닦아주는데, 그런 게 답답하고 힘들었어.
또, 인턴 때는 교수님께서 수술 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는 입장이다 보니, 힘쓰는 일을 많이 했어. 배를 갈랐다고 하면, 배를 벌리고 있는 일 같은 것 말이야. 몇 시간 동안 잡고 있으려면 정말 힘들었는데, 팔이 떨리면 교수님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으니까,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 했어. 비위에 대한 문제는 없었어. 단순히 몸이 힘들어서, 선택지에서 수술과는 모두 제외했지.
상상해봤는데, 진짜 힘들겠다… 그럼 비수술과 중에서도 소아과를 선택한 이유는 뭐였어?
처음에는 내과 전문의를 할까 했어. 그런데, 당시 우리 병원 내과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어. 요즘은 구타나 집합 같은 문제가 사라졌는데, 그때는 내과가 그런게 심하다고 들었거든. 또, 인턴 때 내과에 있어보니, 치료를 한다는 느낌이 없었어.
특히, 고혈압이나 암환자의 경우엔 덜 아프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느낌이었어. 열심히 치료 받고 가신 분이 다음 달에 또 들어오는 일이 많았거든. 그런 게 좀 그랬어. 그런데 소아과에 있어보면, 폐렴, 장염 등과 같이 치료 기간이 짧고, 완치가 가능한 경우가 많았어.
내과처럼 계속 케어해준다는 느낌이아니라, 빨리 빨리 좋아져서 나가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어른보다 아이들 보는 게 기분이 좋았어. 울기는 하지만, 나갈 때 손을 흔들어주는 일 같은 것 말이야.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은데, 가끔 생길 때면 정말 행복했어.
의대 생활은 어땠어? 공부량이 많아서 힘들었을 것 같아
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으로, 총 6년 과정이야. (지금은전문대학원이 생겨서,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어)
예과 때는아무 생각 없이 놀았어. 동아리 활동도 하고, 미팅도 하고, 친구들이랑 밤 늦게까지 놀기도 하고 그랬어. 취미생활로 피아노도배웠어. 생물, 화학 같은 기초과목이랑 교양과목 등을 들으면서, 본과를 준비하는 과정이라,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즐겼어.
본과는 전혀 달랐어. 그냥 고등학교였어. 수업이 8시부터 5시까지 있어. 또, 강의실을 이동하지 않아. 학년 별로 강의실이 지정되어 있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교수님만 바뀌면서 계속 수업이 진행되는 거야.
8시부터 12시까지 수업, 점심시간 1시간, 1시부터5~6시까지 수업. 수강신청도 없어. 시간표는 짜여 나오는 거야. 그렇게 계속 수업 듣고, 시험 치는 생활의 연속이야.
헉. 본과는 수업이 정말 많구나. 고등학교 3년→대학교 2년→고등학교 4년 다니는 느낌이었겠는걸?
의대에 다닌다고 하면, 피 보는 거 무섭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사실 그런 건 하나도힘들지 않았어. 본과 1학년 때 해부학 수업을 들으면, 모든 수업이 끝난 저녁에 해부학실을 가야 해. 5시까지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 이미 파김치가 되는데 말이야.
수업 시간에 팔에 대해 배운다고 하면, 팔의 생리는 어떻게 움직이고, 신경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해 배워. 그럼 우리는 그 날 그걸 다 해부해봐야지 집에 갈 수 있어. 모든 수업이 끝나고 저녁 먹고 가서 해부를 하면, 손이 빠르면 10시쯤 끝나지만, 우리처럼 느리면 11시야 되어야 끝나. 그리고 집에 가서 잘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학년마다 커리큘럼이 바뀔 수는 있는데, 1차 2차 3차 시험이 있어. 5주에 한번, 6주에 한번 시험을 쳐. 한번에 백과사전 두께의 피피티를 공부해야 해. 매일 매일 복습을 하지 않으면, 구경도 못하고 시험을 쳐야 해. 11시에 해부가 끝나면 다 같이 중앙도서관에 가. 부지런한 애들은 그걸 다 보고 자는데, 나는 몸이 힘들고 고단하니까, 새벽 1시~2시까지만 보다가 들어가곤 했어.
공부하기 힘들었겠다. 성적은 잘 나오는 편이었어?
아니, 대학교 와서는 공부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성적이 극하위권이었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친구들이 ‘너 이번에 위험하지 않냐’ 하는 식으로 걱정해주곤 했어. 친구들은 나를 챙겨주는 거였겠지만, 그런 말을 듣고 있으려니 속상했던 적이 많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안 보였어. 나는 이해하고, 응용해서 문제를 푸는 걸 좋아했지, 암기에 강한 스타일이 아니었거든. 국사, 사회 같은 암기 과목을 못해서 이과를 간 거였어.
그런데 의학은 왜 이과인지 모를 만큼 모든 게 다 암기야. 해부학 공부를 통해서 신체 구조를 완전히 파악해야 하고, 수많은 의학 용어를 외워야 해. '팔의 구조가 어떻고, 어디에 문제가 생긴다' 등을 알아야 대화가 가능하거든. 의학을 배우는 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 대부분의 의학용어가 라틴어라, 기본적인 라틴어 규칙을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도 말이야.
고등학교 때까지는 근성보다는 머리로 공부하는 편이었는데, 의대에서는 그게 안 먹혔어. 원래도 똑똑한 애들이 화장실도 안 가고, 3~4시간 자면서 숨도안 쉬고 공부하더라고. 그런 애들 공부 시간을 못 따라갔어. 나는 해부 실습이 끝나면 2시간 이상 앉아있지 못했거든. ‘너무 힘들다, 너무 힘들다’ 그 생각만 계속 했던 것 같아.
유급이라는 제도가 있어. 일반 과는 재수강을 하는데, 우리는기준 이하의 학점을 받으면 유급을 해야 해. 학교마다 다른데, 보통 본과 1학년 때 5-10% 정도 떨어져. 등록금 한 번 더 내고, 좀 더 익숙하게 하는 거지. 나는 항상 유급의 칼날이 무서웠어. 내 뒤에 아무도 없었어. 다 잘려나가서. 유급하기 시작하면, 손 놓고 포기하는 애들이 있었어. 힘들어서 휴학하는 애들도 있었고.
말만 들어도 어지럽다. 의사가 되는 길은 정말 험난하구나.
어쩌면 뚜렷한 목적 의식 없이 의대에 진학해서 더 힘들었는지도 몰라. 사실 수능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대 공대에 진학해서 대기업 연구소로 가거나, 개발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훨씬 높게 나왔고, 약사셨던 어머니께서 의대를 강력하게 추천하셔서 고민 끝에 의대 진학을 결정했지. 그런데 막상 가니까 공부가 너무 힘든 거야. 그때마다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어. 아들 징징거림 받아주느라 정말 힘드셨을 거야.
주변 친구들은 어땠어? 의대에 온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어?
아무래도 절대적인 공부량이 많으니까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어. 하지만 나만큼 많이 힘들어한 친구는 없었던 것 같아. 또, 학생 때는 힘들어했더라도, 나중에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의대에 진학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그랬구나, 방학은 어땠어? 방학 때는 푹 쉬었어?
응, 방학 때는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쉬었어. 지금 생각하면 유럽배낭 여행을 다녀오지 않은 것이 아쉽긴 해. 합창반 공연 연습에도 참가했어. 방학이 두 달이면, 한 달 정도는 동아리 연습을 하고, 공연했던 것 같아. 아, 본과는 방학이 한 달 반 정도밖에 안돼. 다른 과 친구들보다 학기를 일찍 시작하고, 늦게 마치거든.
그런데 본과 공부가 그렇게 바쁜데도 계속 동아리 활동을 했어?
응, 의대는 졸업하고 나서도 학교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하니까 학교에서 보는 사람들이 끝까지 보는 사람들이거든. 예과 1학년 때 만난 친구와 11년을 함께 지내고, 1년 선배는 10년 동안 계속 병원에서 보는 거지. 그런데 한 학년에 100명이 넘으니까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인맥을 형성하는 편이야. 합창 동아리를 선택했던 것도 제일 규모가 크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들어간다고 해서였어.
합창 동아리는 본과 2학년 때까지 공연을 해야 했어. 공부할 시간도 진짜 없는데, 노래를 부르고 있으려니, 이걸 해야만 하는 건지 진짜 고민되는 거지. 실습 스케줄이 널널한 본과 선배들이 연습을 보러 오는 날이면, 대충 할 수도 없었어ㅜ
실습은 언제부터 하는 거야?
본과 3학년부터. 본과 1~2학년이 공부하느라 힘들지. 본과 3~4학년 때는 병원에 나가서 실습을해. 2년 동안 계속 한 달마다 다른 과를 가. (과가 생각보다 많아!)
처음 실습 나가면 정말 신나. 내가 의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사실 병원에 가서 제일 의사선생님 같은 사람은 실습생이다? 가운이랑, 복장이 제일 깔끔해. 머리도 가지런하고. 손에도 항상 파일을 들고 다니거든. 반대로 인턴, 레지던트들은 항상 부시시하고, 지저분하고, 의사 같지 않아 보이곤 하지.
또, ‘내가 의사가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생각이 들기 시작해. 본과 1~2학년 때 해부학, 골격, 생화학, 그렇게 열심히 의학 지식을 배웠는데, 실제로 친척들이 물어보면 하나도 대답을 못했거든. 그런데 병원에서 여러 케이스를 보고 들으니까 조금씩 할 얘기가 생겨. 누가 갑상선에 혹이 있다 그러면, 그에 관련해서 보고 들은 걸 말해주는 거지.
병원은 위계 질서가 매우 엄격한 편이라 실습생은 그 안에서 먼지 같은 존재야. 인턴, 레지던트한테 거슬리면 안되고, 길 막지 않게 비켜 서있어야 하고, 하지만 교수님께서 찾으시면 바로 앞으로 나가야 하고. 그런데도 본과 1~2학년에 비하면 훨씬 재미있고, 덜 힘들었어.
실습생의 하루 스케줄은 어땠어?
출근이 이른 편이야. 오전 회진이 7시면, 반드시그 전까지 스테이션에 대기하고 있어야 해. 선생님들 일하시는 데 방해되지 않게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하거든. 대기하고 있으면, 레지던트가 와서 명단을 나눠주면서 같이 회진을 돌자고 해. 교수님 뒤에 레지던트랑 인턴이 가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지.
회진이 끝나면, 외래나 수술을 참관해. 기다렸다가다음 회진에 맞춰서 다시 스테이션에 가기도 하고. 실습이 메인이라, 수업은 거의 안 들어. 귀가 시간은 과 별로 다른데, 대부분 오후 회진 돌고, 6시쯤이면 집에 가.
실습생들도 시험을 봐?
응, 학교마다 다른데, 우리는 한 달마다 과 실습이 끝나면 해당 과에대한 필기/실기 시험을 치고, 학기 말에 큰 시험을 봤어. 그리고, 1년이 끝나면 그 동안 배웠던 것을 종합해서 보는 시험이있었어.
하지만, 시험을 본다고 해서 본과 1~2학년 때처럼 강의실에서 수업 듣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치프*, 레지던트들이 알려주는 것을 공부하면 됐어. 실습 중간 중간에 비는 시간이 많아서 공부하기도 훨씬 수월했어.
*치프: 제일 윗 년차 레지던트를 부르는 말
언제 정식으로 의사가 되는 거야?
본과 4학년이 끝나면, 국가고시를 치는데,이 시험을 합격하면 의사 면허증을 받아. 필기랑 실기를 보는데, 모든 과를 훑어야 해서, 본과 4학년 2학기부터는 다 같이 이 시험만 준비해.
면허증을 받으면 대부분 1년간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어떤 분야의 전문의가 될 지 정해. 1달은 내과, 1달은 소아과 이런 식으로 로테이션을 돌면서, 어떤 과가 자신과 잘 맞는지 정하는 거야. 그런 다음, 레지던트(전공의) 생활을 4년 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면, 특정 과의 전문의가 되는 거지!
그런데 의대를 졸업했어도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만 의사가 되는 거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레지던트를 안 하는 사람이가끔 있어. 감기나 고혈압, 당뇨 등의 간단한 진료는 의대를 졸업하기만 해도, 다 볼 수 있거든. 사실 우리나라는 8-90%가 전문의인데 비해, 외국은 전문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아. 1~2년만 실습해도, 충분히 일반의를 할 수 있어.
그렇구나, 인턴/ 레지를 거쳐 전문의가 된 다음에는다들 어떻게 해?
남자는 군대를 안 다녀왔기 때문에, 군의관을 하거나, 공중보건의를 해 군대에서 전문의를 원하기 때문에, 전문의는 대부분군의관으로 가고, 일반의는 공중보건의로 가. 하지만, 소아과, 신경과 등은 군대에서 별로 필요가 없어서인지, 의료 취약 계층에서 요구가 많아서인지, 공중보건의로 많이들 가. 그럼, 나처럼 시골에 가서 여유롭게 지내는 거지.
정말 힘든 학교 생활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을 3년 받는 거라, 모두 이 기간을 학수고대하지. 나가서 개원해서 일하는 선생님들 보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3년 동안 쉬면서, 앞으로 대학 병원에 가서 펠로우나 교수를 할까, 개원을 할까 고민해볼 수 있고, 취미 생활도 해볼 수 있지.
군대에 가지않는 여자 의사들은 바로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아.
혹시 의사 이외의 진로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100명 중 1~2명 정도가 의학 전문 기자나 로스쿨 쪽으로,1~2명 정도가 USMLE라는 미국 의사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아. 아, 기초 의학 연구 쪽으로 나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의사 말고 다른 진로를 택하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었어.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어?
일단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 레지던트 끝나고 펠로우나 교수가 되려면, 석사랑 박사를 해야 하거든. 하지만, 일반 대학원처럼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일 끝나고 2시간 정도 수업 듣고 그래. 그래서, 레지던트 3~4년차 때쯤 대학원 수업 들을 수 있을 때가 되면, 대학원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아. 석사는 4학기인데, 나는한 학기 남았어.
* 펠로우: 교수급 의사를 뜻하는 말
고민 중이야. 어떤 걸 할까. 사실 좀 부끄러웠어. 대부분의 다른 친구들처럼 어려서부터 아픈 사람을 구해주고 싶고 그런 이유로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아니었어서. 과를 선택할 때도 꼭 소아과를 할 거야, 그런 마음이 아니라, 흐르는 대로 흘러왔거든. 그래도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지금은 의사가 된 걸 후회하지 않아. 의사가 되고, 소아과 전문의가 된 것에 대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해.
의사가 되는 길은 정말 멀고도 험난하네요.
하지만, 막상 되고 나서는 매우 만족도가 높은 직업 같습니다.
또, 학교 다닐 때는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엄격한 편인데, 졸업 후 바깥 사회에서는 다 같은 전문의니까 서로 존중하고 존대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어떠셨나요~? 의대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으셨나요? 의사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Disclaimer
Up(業) Side의 인터뷰는 개인적 경험 및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특정 회사의 상황이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