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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Aug 08. 2020

퇴사하고 UN 가겠다더니 와인여행을?

한 번 사는 인생, 한 번쯤은 막살아도 되지 않을까

석유화학회사에 입사한 지 3년. 아들 자소서를 써오라든가, 본인이 Goja라고 외친다든가 정말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무 밑에서 존버 하다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 그래, 다시 UN에 도전하자. 독일 환경대학원에 합격하고 마침 예전에 UN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에게도 연락이 왔다! 독일행 비행기표도 끊었는데... 근데 나 진짜 UN 다시 가고 싶은 건 맞아?




평생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간지 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명문대 입학, UN 인턴, 대기업 입사... 전형적인 대한민국 모범생 코스. 그런데 이게 내가 좋아하는 삶인가? 난 뭘 하고 싶지? 매 순간 고민은 있지만 애써 무시해왔던 질문들. 

한 번쯤은 막살면 안 되나?



에세이로 찾아간 자아


갑작스러운 일탈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부터 매주 스스로를 고찰하는 에세이를 꾸준히 썼습니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그래 이 욕구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그게 나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면 오히려 강력한 무기니까. 하지만 꼭 그 형태가 모범생 코스일 필요는 없어. 


2016년에 썼던 에세이 주제들


'그래서 뭐 하고 막살고 싶은데?' 제가 확실히 좋아하는 게 딱 한 가지 있었는데요, 그건 다름 아닌 '술'입니다.

(갑분 술...?!) 예전부터 '술'을 좋아했습니다. 경기 불황일수록 알콜 소비량이 늘어나는 것은 술이'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을 희미하게 하고 오롯이 현재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순간의 행복을 좇게끔 한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비단 '와인'은 저에게 조금 다른 의미의 술입니다.


집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코르크들



나의 인생 = 와인


이전 글에서 썼지만 (장거리 연애를 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독일에서 UN 인턴 할 때 한국의 남자 친구와 생이별했습니다. 그런 우리 사이를 이어준 것이 와인이었죠. 각자의 나라에서 같은 요리를 만들고, 이를 안주 삼아 영상통화를 하며 컴퓨터 화면에 잔을 기울였습니다. 그이는 한국에서 소주를 나는 독일에서 와인을 들이켰고, 그것이 당시엔 최고의 낙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와인은 제게 유달리 애틋한 술이 되었죠.


독일의 내 방. 마신 병들을 쌓다 보니 저게 2줄이 되고 3줄이 되어 결국 내다 버렸던...


물론 옛 연인이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은 모른지만, 여전히 저는 와인을 사랑합니다. 처음에는 소비적으로 마셔버리곤 하던 와인에 대한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마신 와인을 어플에 기록하고, 다이어리에 쓰고, 검색하고...


와인 다이어리


그리고 와인 관련 정보가 생각보다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 것들이 없어서, 영문 위키피디아의 와인 단어들을 번역하고 글을 썼습니다. 영문 위키를 번역해서 한국어 위키에 등록한 것이 30개 남짓... 돈 받는 일도 아닌데  시간이 부족하면 짬을 내고 잠을 늦게 자더라도 너무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러다 몇 달간 학원을 다니며 취미로 와인 공부하고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습니다.


와인 수업 시간.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하버드도 갔을 겁니다


한 가지 주제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강한 열망.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랴. 그렇게 퇴사를 하며, UN 가려고 끊은 독일행 비행기 티켓으로 유럽 와인 여행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출국. 무계획이 계획


이제 남은 것은 출국뿐. 첫 번째 국가가 독일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계획은 없었습니다. 대략 2달 정도..? 면 대충은 돌아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떠나보기로 합니다. 출국 전날까지도, 심지어 공항에서도 왠지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공항 라운지에서 맛없는 레드와인을 한 모금하고 나서야 조금씩 실감이 납니다. 


아 이게 첫 번째 와인, 이제 시작이구나


훗날 저 리본은 노랑빛을 잃고, 캐리어는 털리게 되는데...


막연한 두려움과 묘한 전율, 그리고 흥분. 그래서인지 입술에 닿는 그 액체가 평소보다 조금 더 떫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개의 나라를 방문할지, 몇 종류의 와인을 맛보게 될지, 그리고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러다 와인에 진절머리가 나서 다시 취업을 하거나 대학원을 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이 여행의 끝이 무엇이든... 20대의 끝자락,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2달간 10개국을 싸돌아 다니며 200종이 넘는 와인을 마시며 '나'를 찾는 과정. 다음 에피소드에서 공유합니다. (아니 그래서 지금 무슨 일하고 있냐고... ㅋㅋㅋ)



다음 회 티저..

      불안했다. 
지금은 낭만적인 여행자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백수 신세가 되니까.



와인 여행기가 궁금하다면?�

운전도 못 하는 바보가 퇴직금을 밑천 삼아 떠난 ‘뚜벅뚜벅 와인 여행’. 60일간 10개국에서 마신 211종의 와인 여행 이야기. 포도밭에서 해본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도둑질과 독일 와인 포차, 이탈리아 광장에서의 노상 음주, 그리고 프랑스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받은 프로포즈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에피소드는 여기서▼




UN에서 일하는 가장 쉬운 방법 (이전 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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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9년 한 해동안 1,200개 가 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현)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전) 독일 UNCCD(유엔사막화 방지기구) FCMI 팀

석유화학회사 환경안전경영팀

서울대학교 과학교육, 글로벌환경경영 전공

산림청 주관, 유네스코 -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1기 인턴 팀장

서울대학교 국제 협력본부 학생대사 이벤트 팀장

와인 21 객원 기자,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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