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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p Side Mar 21. 2018

벤처 투자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

 VC(벤처캐피탈), 스타트업 투자는 소개팅과 같다!?

차고에서 애플의 첫 제품을 만든 스티브 잡스와 동료들에게 멋지게 양복을 빼 입은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에게 투자를 제안한다.

영화 <잡스> 중에서

 인상적이었다. 남들은 쉽게 투자대상으로 보기 힘든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보고 거금(?)을 지원하다니. 창고에서 시커먼 남자 넷이 쭈그려 앉아 컴퓨터 회로나 만지고 있는데!


 내가 아는 벤처 캐피탈리스트의 모습은 이게 전부다. 작은, 혹은 아직 시작도 못한 사업체를 발굴하고 그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사람. 단순한 투자를 넘어 그들과 크게든 작게든 함께 하는 사람. 이들은 실제로 어떤 삶을 살며, 왜 벤처 투자자가 되었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까? 아직 꽃 피우지 못한 가능성을 보는 그들의 눈에는 무엇이 비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부분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인터뷰이는 몇 년간 컨설팅 업무를 하다가 현재는 벤처 캐피탈리스트로서 한국의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투자하여 함께 성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Up (業) Side 목차-

01. 토종 한국인, 세계를 누비는 해외 기자가 되다

02. 선생님이 OECD에 들어간 이유는?

03. 전략 컨설팅이 궁금하다고? (Feat. 뉴욕 컨설턴트)

04. 어쩌다 된 의대생, 소아과 전문의가 되기까지

05. 스타트업에 간 회계사

06. 훌륭한 화장품 뒤에는 훌륭한 마케터가 있다

07. 벤처 투자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

08. IT 서비스 기획자: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09. 공연기획 하고 싶은 사람 손!

10. 달콤한 인생, 파티쉐가 되다

11. 다들 주목! OECD 아프리카 담당이 한국인이라고?

12. 패셔너블해야 패션MD 하나?

13. 나의 두 번째 직장, 사모펀드(PE)의 A to Z

14. Next Steve Jobs? 상품 기획자의 삶

15.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만든다, 가구기획자 이야기

16. 교사 라이프가 궁금해? 임용부터 담임까지

17. 번역가 A씨의 일일

18. 국내 통신사에서 미국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19. 가깝고도 먼 직업, 방송 PD

20. 미생이 담아내지 못한 상사 이야기



1) 벤처 투자, 그대를 알아가는 시간
2) 벤처 투자와 결혼한 남자
3) 연애와 벤처 투자의 평행 이론
4) 그 남자의 하루
5) 이 길을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벤처 투자, 그대를 알아가는 시간]


 벤처 캐피탈 (VC)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VC라는 일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VC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이버에 검색하면 더 잘 알려줄텐데! ㅎㅎ 간략하게 정의를 이야기하면, 벤처캐피탈이란 <고도의 기술력과 장래성은 있으나 경영기반이 약해서, 일반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나 대출을 받기 어려운 벤처 기업에 무담보 주식 투자 형태로 투자하는 기업이나 그렇게 모인 자본>을 지칭해.

 

 쉽게 말하자면 벤처기업에 투자를 해서 그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상승한 지분가치를 토대로 자본수익을 추구하는 직업을 VC라 하는 거지.



 그런 정의를 듣다 보면 벤처 캐피탈이 반드시 벤처 회사에 투자하는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맞나요?


 아니, 사실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비슷한 용어가 산재하는데, 벤처 캐피탈이 투자하는 회사들은 쉽게 말해 중소기업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네. 너가 방금 말한 벤처는 협의의 의미이고, 비상장 주식이라는 더 큰 개념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아.



 그러면 '고위험 투자'라고도 이해할 수 있나요?


 보통 금융쪽 섹터를 리스크랑 리턴으로 나누는데 보통 채권같은 상품들이 저위험 저수익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어. 반대로 벤처기업 같은 경우는 가장 고위험 고수익에 가까운 금융 상품이라 할 수 있겠지.





 항상 벤처캐피탈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했던 게… 투자 주체는 누구인가요? VC가 운용하는 펀드 자금은 어디서 오는거에요?


 VC에 투자하는 이들을 통틀어 보통 LP (Limited Partners)라고 불리우는데, 한국은 기본적으로 정부 주도로 시장이 형성돼. 정부가 조성한 자금의 비중이 전체 펀드 대비 미국이 15~20%, 글로벌 평균이 약 30% 인데 반해 한국은 약 50% 수준이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볼게. 2015년 기준으로 한국 VC에 투자된 자금 중 약 30%가 모태펀드라고 불리우는 정책기관, 20%가 산업은행 등의 금융기관, 대기업 등의 일반법인이 약 15%, 10%가 VC 자체 돈, 10% 정도가 국민연금, 군인 공제회 등 연금/공제회 기관, 개인 / 외국인 / 기타 단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15% 정도 인 것 같아.



 그러면 그 자금을 운용하는 브이씨는 총 몇개에요?


 작년 기준으로는 116개 정도!



 굉장히 많은데요?


 많다면 많을 수도 있고, 적다면 적기도 하고. 이 숫자가 과거 10년 동안 크게 변하진 않았거든. 물론 최근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작년 자료를 제외하고는 지난 10년 동안 108개 전후였어.

 

 왜 그럴까요? 최근에는 창업하는 사람도 많고 스타트업 붐이라는 말도 나오던데요. 그러면 VC의 수도 같이 늘어날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하자면 각 벤쳐 캐피탈이 운용하는 금액과 투자하는 회사들의 수는 늘어났어. 굳이 VC의 수가 늘어날 필요는 없는 거지.

 


 벤쳐 캐피탈 안에서도 종류가 여러가지로 나뉘나요?


구분법이 많이 갈리는데… 크게 세 가지 구분법이 있어.


 첫 번째는 스테이지별로. 아주 초기 단계의 기업에 투자하는 VC와, 성장 단계에 투자하는 Growth Capital, IPO(상장) 직전에 투자하는 상대적으로 큰 VC가 있어. 


 두 번째는 투자하는 인더스트리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이야. 예를 들면 영화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VC라든지, 어느 쪽은 바이오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VC라는 식으로. 보통 전자의 구분이 더 유효하지. 왜냐하면 스타트업이나 기업이 성장하는 스테이지별로 투자 및 운영에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거든.


 세 번째는 굳이 말하자면... 민간자본과 기업자본으로 나뉘기도 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처럼 투자자들이 독립적인 사모로 모여서 순수 민간자본으로 VC를 만든 곳들도 있고, 소프트뱅크 나 삼성벤처투자처럼 기업을 끼고서 투자하는 회사들도 있지. 즉, 돈의 출처와 기업 구조에 따라서 구분을 하는 거야.



 그렇다면 형이 일하시는 곳은 위에 말한 스테이지 구분 방식에 따르면 어느 단계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회사인가요? 


우리는 초기중에서도 가장 초기 단계에 있는 쪽이야. 시장 검증 단계에 있는 팀한테 투자하기도 하고. 투자해주는 금액으로 봤을 때 최소 5천만원에서 30억 원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평균 5억 원 정도의 소규모 투자를 주로해. 


 5천만 원이면 완전 종잣돈 같은 거지. 사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돈이라고 해야하나. 완전 엑셀러레이터 같은 거야. 반면, 30억이면 스타트업계에서는 꽤 큰 투자지. 다양해.





[벤처 투자와 결혼한 남자] 


이제 형이 하시는 일로 넘어가 볼게요. 형은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VC 업무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 관리팀과 심사팀이야. 관리팀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백 오피스를 떠올리면 돼. 즉, 회계, 재무, 인사 등등 VC 자체를 운영하는 팀이지. 그 다음은 프론트(Front)인데, 심사팀으로서 투자 대상 회사를 발굴하고 그 의사결정을 한 후에 사후 관리까지 담당해. 정확한 명칭은 ‘투자 심사역'이고, 이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야. 



 심사팀이 하는 일에 대해 발굴, 투자, 사후관리까지 총 3가지 정도를 말씀해 주셨어요. 이 세 가지를 다 하시는 건가요? 


 응. 다 하는 거지. 이 투자심사역의 롤은 회사별로 차이가 있어.  우리 회사같은 경우 ‘각개 전투 유형’(나만의 워딩이야)이라 해서 담당 심사역이 컨설팅 파트너처럼 각자 영업해서 딜을 가져오고 투자하고 관리 해. 독립적인 유형이라고 해야 하나. 


 반면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유형은 케이큐브 벤처스나 소프트뱅크에서 하는 형태인데, 이런 회사들은  파트너, 주니어 레벨로 가. VC는 소규모 팀으로 일해. 상무 1명, 주니어 1명, 그리고 그 밑에 인턴(Research Assistant)이 있을 때도 있고. 이렇게 한 팀이 되어서 계속 딜을 이끌어 가는거야.


 앞서 말한 독립적인 스타일과 팀제의 중요한 차이는 딜 소싱을 누가 하느냐야. 목표는 좋은 스타트업 발굴하는 것이라 딜 소싱이 굉장히 중요한데, 팀제 스타일에서는 상무급이 딜 소싱을 해 오면 주니어 이하는 리서치, 해외사례 조사 등을 주로 하지. 반면 독립계는 각자가 알아서 자기 네트워크 및 자원을 활용해서 딜 소싱을 해야해.

나는 혼자 보험 아줌마처럼 돌아다니면서 딜을 발굴하고 가져 와.



 보험 아줌마…. (ㅋㅋㅋ) 아까 말씀하신 발굴, 투자, 사후 관리를 각각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어요. 발굴 이야기부터 먼저 해주시겠어요?

 

 크게 탑다운(Top-Down)과 바텀업(Bottom-up) 방식이야. (역시나 나의 워딩이야). 기본적으로 탑다운 방식은 예를 들면, 내가 해외사례를 리서치하거나 큰 지표나 흐름을 고민하다 ‘뭔가 VR 쪽 스타트업을 만나야겠다’하는 생각을 하고 관련 회사를 찾는 식인거지. 이런 방식이 많지는 않아. 큰 그림을 보고 트렌드를 파악하는 천재가 아닌 이상 쉽게 하기 힘든 일이지 않겠어? 미래 예측 수준이니까.

 

 그래서 대부분 딜 소싱이 바텀업이야. 두 가지 유형이 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지인을 통한 거야. 여기서 ‘지인'이란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친한 VC 소개일 수있고, 주변에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VC 종사자를 통한 소개 제일 비중이 높아. 나랑 비슷한 스테이지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거나 유사한 인더스트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한테서 기회가 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VC들끼리는 아무래도 연락도 많이 하고 공유하는 정보도 많으니까. ‘요즘 A라는 회사가 괜찮던데, 너가 생각하기에 좋아 보이면 나랑 한 번 미팅 가보자' 이런 식으로. ‘B라는 회사 너가 좋아할 것 같아'일 수도 있고.


 두 번째는 지인. 대표적으로 동아리, 대학교, 아니면 전 직장 동료들의 소개. ‘000가 창업했는데 한번 만나줄래?’ 같은 거지. 



VC들에게 스타트업들이 보낸 메일이 많이 온다 들었는데, 이런 메일들을 통해 발굴을 하진 않나요?


 

하지. 그런데 메일을 많이 받지는 않아. 함부로 메일 주소를 공개하지는 않거든. VC 회사 대표 메일로는 하루에 3~40개씩 회사 소개서가 들어오긴 하지만, 내가 개인 메일로 이런 것들을 받기 시작하면 엄청난 양이 몰릴 수 있어서...


 그 중 실제 투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거의 드물지. 물론 메일을 읽어 봐. 그런데 아무래도 자세히 못보지. 미팅 사이 사이에 훑어보거나… 심지어 문서니까. 만나서 이야기 듣고 판단 하는 게 더 좋거든. 때문에 VC 투자를 받고자 한다면 사돈의 팔촌까지 인맥을 활용해서 한 번 소개를 받는 것이 정답에 더 가까워.


 어려워 보여요. 스타트업 입장이든 VC 입장이든.


 어렵지. 나는 벤처 투자라는 게 결국 기본적으로 결혼의 과정과 유사하다 생각해. 위에 말한 탑다운과 바텀업을 연애 만남과 비유해서 한 번 이야기 해볼까?



[연애와 벤처 투자의 평행이론]


 탑다운 방식의 발굴은 '헌팅'같이 생각하면 돼. 길을 가다가 예쁘고 멋진 사람을 보면 번호 물어보고 만나자 하는 거야. 뉴스나 리포트 읽다가 괜찮은 스타트업이 있으면 한 번 보는 것 처럼.

 

 하지만 보통은 소개팅이나 선을 보잖아? 이게 바텀업 방식의 발굴이야. 믿을만한 사람한테 받은 소개가 더 잘 될 확률도 높고.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상태에서 우선 필터가 있다고 믿는 거지. 너가 잘 모르고 너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사람 훌륭해요'하면서 추천 해주면 뭐라고 답할 것 같아? ‘아...네 좋은 분이네요 다음에 기회 되면 한 번 볼게요'라고 하겠지. 반면 너를 잘 아는 사람이 ‘니가 좋아하는 외모, 성격 등을 가진 사람을 소개해줄게~’ 하면 OK를 외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어? 

투자는 소개팅과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너한테 소개팅을 주선해 주는 사람이 누구냐야. 소개팅도 나와 맞게 시켜주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잖아. VC도 똑같아. 소개해주는 사람에 따라 신뢰도 자체가 달라지는 거야. VC의 생태계를 잘 이해하고, 같은 관심 분야를 공유하는 VC끼리 해주는 회사 소개와 딜 소싱이 더 높은 투자 확률을 가지는 거지.



 확 와 닿는 비유네요! 저도 소개팅을 비유로 질문을 드려볼게요. 소개팅 받을 때 보면 각자 그 소개팅을 하냐 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게 있잖아요? 외모든 성격이든, 아니면 말 그대로 느낌이든… VC로서 스타트업 딜 제의가 들어오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서 투자를 하시나요?

 

 그 질문에 대답은 원칙적으로 얘기 하자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투자심사역, 혹은 그 사람이 속한 VC 회사의 ‘투자 철학'에 따라 달라져. 그래서 ‘투자 철학'이 중요한 거고. 너의 그 질문은 ‘형의 투자 철학은 뭐에요?’라는 질문이네.



 그렇죠. 다시 말해 연애관이랄까.


 나는 비교적 명확하다 생각해. 내가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면 투자를 해. 이 질문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거든. 예를 들어 ’이 산업/회사가 잘 될까? 잘 된다면 그게 오래 갈까? 같이 일하는 사람은 어떻지? 이 회사에 입사한 다음에 내가 뭘 할 수 있는 걸까?’ 등등… 너네가 취업하면서 했던 고민을 그대로 한다고 생각해보면 돼.

 


 그 다음 중시하는 건 투자 심사 대상이 되는 팀의 모습이야. 그 스타트업이 어떤 일을 하는 가도 중요하지만 팀이 정말 정말 중요한데, 스타트업이라는 게 대기업처럼 정제된 프로세스로 사람들을 뽑고 내보내고 이런 구조가 아니잖아. 처음 모인 사람들이 한참을 가거나, 아니면 금방 흩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팀을 꾸렸느냐를 보지.


 세 번째로는… 조금 나만의 고민일 수도 있는데. ‘내가 이 스타트업에 뭘 도와줄 수 있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가를 봐.


 

 1. 산업/회사 2. 사람 3. 내가 Value-add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세 가지네요? 


 물론 그 세 가지만 본다고 답하진 못하겠어. 소개팅 받기 전에 아무리 너의 이상형과 조건을 생각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끌릴 수 있잖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뭐라 말로 정리해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나 직관이 작용할 때도 많거든. 이성이랑 직관이랑 종합되어 있는 것 같아. 어떤 때는 또 이성적 판단에 집중 하기도 하고. 말하고 보니 종합 예술인 것 같네. 


 방금 종합예술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 그때 여러 요소가 다르게 작용해서 발굴을 해내잖아요? 이 부분에서 다음 단계인 투자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보고 어떤 식으로 투자를 하도록 의사 결정자들을 설득 하시나요? 형이 개인적으로 투자 결정을 한 후 실제 투자까지 끌어들이는 프로세스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이 각 회사마다 가지고 있는 투자 철학에 따라 회사 별로 완전 다르지. 내가 우리 회사는 독립형이라 했지? 보험 아줌마. 우리 회사는 이 보험 아줌마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 그러다 보니 내가 가져온 딜에 대해서는 ‘해당 투자 심사역이 충분히 검토 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투자까지 이어지곤 해. 이건 우리 회사의 케이스고. 사실 기본적인 프로세스가 있긴 해. VC의 투자에도. 크게 다섯가지 단계가 있어. 이것 역시나 소개팅 - 결혼과 비유가 가능하지 (ㅋㅋㅋ).



 어떤 측면에서 그럴까요?


첫째, 연락하기. 소개받을 대상의 번호를 받아 (이 번호를 받는 방법은 전 편에서 말한 탑다운 - 바텀업)


둘째, 일단 소개팅/선을 보는 거야. 만납시다! 얼굴 보고 실제 사진이랑 같은지… 그러니까 내가 받았던 사업 계획서랑 이 사람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하는 내용이 같은지. 내가 보기에 같은지 등등

자,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게 뭘까? 첫 소개팅에서 가장 좋은 아웃풋은 뭐라고 생각해? 



 음… 애프터?

 

 그래! 우리도 똑같아. 첫 번째 미팅에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미팅이 잡히는 거야. 첫 소개팅에서 ‘우리 사귑시다'라는 말은 잘 안 하지. 이처럼 ‘당장 투자해 주세요!’ ‘그럽시다!’는 별로 없어. 그래서 첫 번째 미팅에서는 스타트업이든 VC든, ‘한 번 더 보자'라는 생각이 드는 게 중요해. 


셋째 단계는… 밀당이지 뭐.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셔보고, 장소 바꿔가며 데이트 해보고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시장이 갑자기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 거에요?’, ‘당신의 팀이 잘 할수 있어요?’, ‘이 회사가 정말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와 같은 이야기가 오고 가. 이 단계가 잘 지나가면 이제 너 스스로는 결혼에 대한 마음이 생기겠지. 

 넷째 단계는 뭘까? 부모님 만나서 허락(?)을 받아야겠지? VC에서는 이걸 IR(Investment Relation)이라고 해. 물론와 대기업에서 쓰는 원래 의미랑은 좀 다르니 유의해서 들어. 회사로 돌아와서 다른 투자심사역들까지 모아놓고 내가 투자하기로 한 스타트업이 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해. 우리팀의 장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투자를 해주면 뭘 하겠다 등등… 심사역들은 나름대로 판단을 하기 위해 질문을 하고. (편집자주: 대기업에서는 주주를 위한 정보 공개 업무를 뜻함)



 그 회사 하나를 보기 위해 모든 심사역들이 다 모이는 건가요?


 다 모이는거지. 대다수 VC가 공동 의사결정식으로 운영되거든. 심지어 우리 회사처럼 보험 아줌마 유형이라 해도 그래. 개인 자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VC는 기본적으로 자기자본의 투자가 아니야. VC 회사도 결국 더 큰 펀드들의 투자를 받아 펀드를 조성해서 진행하는 거거든. 결국은 다른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그걸 가지고 벤처에 투자를 한 후 수익을 내는 게 VC야. VC 그리고 투자 심사역의 기본적인 행동 원리는 펀드 매니저라고 보면 돼.


 

 네 번째 단계 이후는 뭔가요?


 자, 너의 여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해 줬어. IR이 끝난 거지. 이제부터 뭘 할까?

이제 그 아이가 집에 돌아가고 나서 부모님이 너를 따로 불러서 묻는 거지. ‘너...확실하니?', ‘왜 쟤랑 결혼을 하고 싶니', ‘엄마는 이런 게 걱정이야'. 그러면 너는 이제 ‘~~~ 때문에 좋습니다' 하면서 너의 판단에 대한 근거를 대. ‘앞으로 ~~~하게 살 거에요' 하면서 투자 이후 액션 아이템을 설명하고.


 이렇듯 다섯번째 단계에 들어가면 즉, 스타트업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나면 투자심사역끼리 모여서 갑론을박을 거쳐. 이걸 ‘투자심의위원회'라고 불러. 보통 딜 소싱을 해 온 투자 심사역이 자료를 준비해서 다른 투자 심사역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야. ‘이 회사가 왜 좋은지,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지, 향후 수익을 위한 Exit에 대한 계획은 어떤지,  다른 회사에 우리가 보유할 주식을 팔 건지 아니면 그 회사의 주식을 더 살 건지...아니면 상장(IPO)를 할 건지 등등등…’


 이 것도 VC 회사 유형별로 다르겠지. 우리 회사처럼 정말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곳은 아무래도 Exit 고민 쪽은 많지 않을 것 같아. 당장 이 스타트업이 죽을지 말지가 고민인데 상장 이야기를 하긴 힘들어. 결국 financial modeling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회사가 당장 풀어야 하는 문제(Problem)가 뭔지를 주로 보고 그걸 해결할 수 있을 지를 본 다음 결정해.


잠깐 너한테 질문을 해보자. 스타트업이 망한다면 주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어… 음… 시장에 정말 필요한 해결책(Solution)이 없어서? 돈이 없기 때문에?

 

 어 비슷했어. 미국 벤처 관련 통계를 보면 자금 부족이 3위 정도의 원인이었어. 가장 큰 원인에 해당했던 것은… 너가 처음 말한 것과 비슷해. ‘시장에 니즈가 없어서'.


 왜 그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비스/제품에 대한 니즈가 시장에 없는 것을 모를까? 사람들이 정말 돈을 내고 쓸만큼 세상에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야. 



위에 말한 다섯 번째 단계에서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이런 부분을 주로 봐.



 그런 부분을 고민한 후 ‘투자 하자'라고 다 같이 결정한 다음엔 어떤 식으로 투자금액이 전해지나요? 형이 주로 하시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은 그 회사의 가치를 알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이제는 지분 협상을 하는 거지. 이 회사의 가치는 얼마인가, 우리가 4억을 투자하면 이에 대해 지분을 얼마나 줄 것이냐… 너가 말했듯 어려운 부분이야. 과거 기록이 많지도 않고, 수치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우리 회사 같은 경우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써. 상대 평가랑 절대 평가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 우선 상대평가는 유사 기업들 벤치마킹이야. 이 정도 단계와 유저 수준을 가지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 혹은 그 단계를 지난 회사가 예전에는 얼만큼의 기업 가치 책정을 받았는지, 지분은 얼마나 나눴는지 등등을. 왜냐 하면 당장의 이익, 매출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거든. 그래서 한달 활성 유저(Monthly Active User)는 몇 명인지 같은 비금전적 지표를 많이 봐. 

 


물론, 이것 만으로는 부족해. 여기서 절대 평가 스타일이 들어오는데, 나름대로 모델링을 해보는 거야. 이렇게 돈을 벌면 이익이 이 정도 나지 않을까, 이렇게 5년을 번다 했을 때 현재 가치로 환산 하면 4억 정도 나오겠다 등등. 근데 이 부분은… 뭐랄까 가치평가를 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볼 수 있잖아? 회사별로도 다르고. 


그래서 내 경우만 얘기해 보면… 투자 금액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초석이 무엇인가를 더 많이 봐. ‘A라는 회사가 현재 유저풀이 얼마고, 3억이 있으면 X, Y, Z를 당장 할 수 있는데 이게 지금 단계에서 해야만 향후에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판단을 하는 것이지. 전략적으로 생각했을 때 필요한 일인가를 고민하는 거야.

 

 예를 들면… 푸드플라이 알아? 얘네가 지금 단계에서 전국에 서비스를 펼치고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서울의 강남 지역만 우선 하자! 그러려면 일단 10억이 필요해. 10억이 있다면 향후 2년간 강남 지역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후 확장을 해야겠다는 전략을 세우는 거지. 



 정말 많은 부분을 고려해서 투자가 이루어지네요. 그럼 투자가 일어난 다음에는 무엇을 하나요?

신나게 쓰는 거지.



 ㅋㅋㅋㅋ 투자 최종 결정 전 전략/계획이 있다 하셨는데, 그대로 가는지 옆에서 보시겠죠?

음… 그래 관리적인 측면에서는 주기적으로 리포트를 받아. 하지만 나에게 이건 형식적인 것에 가깝고, 아까 말했듯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까 말한 투자 철학에 따라서 실제 내가 도움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 지를 많이 고민해. 같이 논의 하고, 같이 전략 짜고. 물론 너무 깊게 들어가진 않지만. 이것도 회사마다 달라. 대표님들 성향 별로도 다르고. 최대한 스타트업의 성향에 내가 맞춰드리는 편이지. 



내가 주로 하려는 것은...예를 들면 A라는 회사에 투자를 했어. 이 회사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온라인 위주로 제품 판매를 하려고 해. 그런데 내가 보기에 한 번 정도는 백화점에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오프라인 판매를 했다는 전적이 있으면 향후 바이럴 등을 통해 급성장 할 것 같아 보이는 거야. 그러면 나의 인맥이든 영업력이든 활용 해서 이 기회를 창출해 주는 거지. 이 스타트업 팀한테는 그럴만한 자원과 인맥이 없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만약 새로운 직원이나 인턴이 필요한 시점이라면 내 선후배, 동아리 사람들, 전 직장 동료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그 사람들만의 힘으로 못하는 부분을 찾아서 내가 가치를 제공해 주는 거지.

 

이런 일련의 행위들을 ‘사후 관리'라고 하는 거야. 용어가 참 ‘갑'스럽지 않아? 이게 보편화된 용어라 다들 쓰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업적으로 도움을 주고 후속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과정이야. 



 마치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 같네요. 한 번에 몇 개 회사를 사후 관리 하고 계세요?

 

 음… 지금까지 내가 투자한 곳은 7개야. 보통 분기 당 하나씩은 투자한 것 같네. 그렇게 정해놓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중 어떤 곳은 내가 많이 참여하고, 어떤 곳은 가끔 확인하는 정도로만 관리를 해.



[그 남자의 하루]


 이제 형이 하시는 일들을 정말 자세하게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을 하는 하루하루 일과가 어떤지 궁금해요! 물론 일과라는 게 딱히 있을 것 같이 않지만요.

 

 당연히 얘기하기 어렵지. 그래도 일과라고 할만한 것을 짜보면 결국은 미팅들의 연속인데, 주된 업무는 스타트업을 만나는 일. 소개를 받았던, 아니면 직접 딜 소싱을 해 왔던 간에 대부분은 미팅을 잡고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써. 그래서 보통 회사에 붙어 있지 않고 돌아다니지.


 미팅 외에는 네트워킹이야. 벤처투자협회에서 VC들을 모아서 교육을 해줘. 여기서 동기 개념으로 다른 VC들과 친해지고 정보 교류를 해. VC들끼리 모여서 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외부 연사를 초빙해서 렉쳐를 듣기도 하고.

 

 그러면 워크 라이프 밸런스는 어때요? 


 워크 라이프 밸런스는...음… 자기 욕심에 비례하는 것 같아. 욕심이 많은 사람이면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안 좋아. 위에 말했듯 하루 일과를 자기가 정하거든. 이 부분이 덜 한 사람이라면 워크 라이브 밸런스가 아주 좋고. 일을 하고 안 하고가 티가 안 나거든 평소에. 나중에 결과로만 얘기 하니까. 



 평균적으로만 이야기 하자면 굉장히 좋아. 나 같은 주니어야 여기 저기 뛰어 다니고 스터디도 하느라 바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같은 결과라도 더 효율적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거든. 보험 아줌마로 비교 해보면, 평일에는 크게 무언가를 하지 않다가 주말에 교회 한 번 나가서 싹쓸이 해오는 사람이 있는 거지. 



 하루 하루 일과가 정해지고 할 일이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하기는 힘들 것 같아 보여요.


 맞아! 좋은 인사이트인데, 그래서 이 업계에 어떤 사람이 잘 맞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나올 수 있지. 

일단 시간 관리 능력이 중요해. 본인이 각자 알아서 스케쥴을 짜고 능동적인 사람이 VC 업에 잘 맞아. VC 업무의 핵심은 자기가 의사결정하고 자기가 판단을 하는 능력이야. 내가 무엇을 지금 해야하는지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하니까. 그리고 사업을 잘 굴려서 Exit까지 하고. 성장에 따른 자본 수익을 나눠야 하니까. 창업자가 100억을 벌면 VC는 4억은 벌 수 있어야지. 그 정도를 직접 해내려면 능동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제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대기업에 들어가면 몇 년차에 무엇을 한다, 어떤 직급이 된다 이런 식으로 커리어 패스(?)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려지는 모습들이. 그럼 VC에서 일할 때에도 이렇게 그려지는 모습들이 있나요?


 없다고는 못하겠어. VC도 결국은 조직 생활이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뛰는 심사역인 거고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임원 레벨로 가느냐 마느냐야. 프로젝트 팀의 Holder가 되는 사람. 임원이 되고 말고의 차이가 뭐냐고 한다면, 임원의 경우 투자에 집중하기 보다는 투자에 활용할 자금을 소싱하기 위해 일하지. 기관 투자자들 만나서 영업 하고, 우리 VC 회사가 이 분야에서는 최고라는 설득을 하고. 사실 심사역과 임원 모두 기본적으로 본질은 영업이니까. 물론 크게 보면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있겠냐만, 영업 대상이 투자 대상 기업이냐 아니면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해줄 펀드 의사 결정자들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VC 투자 심사역으로서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위에 말한 성향 말고 마인드나 역량 측면에서요. 


 일단 내가 잘 하지 못해서(ㅋㅋ)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가지기’인 것 같아.


 본인만의 투자 철학 성립. 투자 철학을 가지고 그에 맞게 시장 상황에 흔들림 없이 관철해나갈 수 있어야 해. 예를 들어 남들이 게임 산업에 투자할 때 ‘정말일까?’라며 생각을 한 번 더 해보고 ‘나는 바이오에 투자를 해보겠어’와 같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서 성공하는 사람이 VC로서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보거든. 


 유명한 사람 중에는 다음카카오의 임지훈 대표가 있을 것 같네. 남들은 집중하지 않던 초기 게임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했어. 물론 망한 사례가 더 많기는 했지만 결국 선데이토즈(애니팡 개발사)를 상장하기도 했고. 패스트트랙 아시아 박지웅 대표도 마찬가지지. 온라인 커머스에 집중해서 투자했는데, 남들은 다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라며 의심했거든. 그러다가 티켓몬스터 같은 사례가 발생하는 거고. 


 여하튼, 나도 나만의 투자 철학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남들과 다른길을 간다’는 것을 나의 투자 철학으로 가져가는 중이야. 



 

역량 측면에서는… ‘핵심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아닐까 해. VC는 짧은 시간 안에 사람, 회사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필요할 때 파악해 내는 것이 중요하거든. 회계, 재무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있어야겠지. 매일 하는 일이 이와 관련이 있으니까.



 오늘 ‘투자 철학’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 것이 저한테는 흔히 말하는 ‘인사이트’와 같은 선 상에 있는 개념으로 들리네요. ‘투자 철학’ 혹은 ‘인사이트’를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글쎄… 우선 경험을 기반으로 쌓아갈 수 있겠지. 그리고 여기에 생각과 로직이 합쳐저 순환할 때 생기는 것 같아. 자기 가설과 실행을 반복하면서 ‘A처럼 하면 되고, B 처럼 하면 안 되더라’ 하는 경험을 쌓고 점점 가설을 정교화 하는 거지. 애매모호한 말이긴 한데… 한 마디로는 ‘가설의 정교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어. 


 

VC의 좋은 점은, 나의 가설과 행동에 대한 결과가 무조건 나온다는 거야. 투자한 건이 망하든, 성공하든. 자기 가설에 대한 피드백이 반드시 생겨. 그 것도 아주 명확하게. 쿠팡과 티켓몬스터 중 어느 투자 건이 더 성공적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금방 나오거든. ‘얼마를 투자했는데 그거 대비 기업 가치 평가가 얼만큼 나왔다’ 식으로. 성적표가 바로바로 나오니까. (물론, 외생 변수도 크지). 이게 결국 가설을 정교화 하는 빈도와 강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해.


 

 외생 변수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투자 관련 선배들 얘기 들으면 꼭 나오더라구요. 투자의 성패가 외생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이 것을 ‘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짜 실력 있는 VC란 무엇일까요? 


 그 질문 받으니 생각나는 게 있다. 다음카카오 임지훈 대표는 ‘나는 운이 좋다’라는 말을 자주 해. 어쩌면, VC 종사자의 성공이 순수 실력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 수도 있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더라도 외부 환경에 흔들릴 수 밖에 없어. VC가 투자 대상으로 하는 창업/스타트업 분야는 더더욱 그렇지. 삼성 전자나 LG 전자의 주식이 하루만에 열 배 뛰지는 않아. 하루 아침에 무너져내리지도 않고.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간다는 시그널이 있기 마련이거든. 


 

정말 실력 있는 VC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은 이런 외생 변수가 발생 했을 때(발생을 막을 수는 없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아닐까 해. 무너져내릴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나 방법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실력 있는 VC가 아닐까?



[이 길을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 다른 얘기로 가 볼게요. VC 심사역으로서 활동 하려면 많은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할 것 같은데, 대졸 신입의 경우 VC로 시작을 하기 어려울까요? 


 아무래도 힘들지. 가장 큰 이유는 너가 말한 것처럼 경험 및 네트워크야. 산업에 대한 전문 지식도 중요하지만… 결국 딜 소싱이라는 것은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 큰 틀을 보는 거거든. 사람들과도 많이 알아야 하고. 갓 졸업한 입장에서 이 것을 지니고 있기는 힘드니까.

 

 결국 투자는 의사결정이야. 산업에 대한 지식은 말 그대로 지식이지만 그 지식을 바탕으로 다소 직관적일 수도 있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어. 



 그럼 어떤 일을 하던 분들이 VC 업계에서 활동하시나요? 


 음… 일반화하긴 어렵고 어쩌면 지금 내 대답이 참 편협한 정리일 수도 있어. 세 가지 유형이 있을 것 같은데...

첫 번째 유형은 전문가 유형. 특정 산업에서 오래 활동 했던 사람들이 아무래도 해당 산업 관련 인사이트와 네트워크가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어떤 지식을 가졌는지에 대한 문제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느냐의 문제가 모두 중요하니까.


 

두 번째로는 금융 배경을 가진 사람들. 스타트업 투자는 결국 상장, 매매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일들을 성공적으로 진행 시 금융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니까. 


 마지막으로 창업가 유형. 최고지! 특히 우리 회사처럼 초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위주로 하는 VC에는. 그 단계의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지 피부로 느끼고 온 사람들이라서. 



 형은 왜 VC를 선택하셨어요? 


 나는 기본적인 직업 선택의 기준이 ‘돈을 안 받아도 하고 싶은 일’이었어. 지금까지 해왔던 인턴들과 커리어들을 다 돌아보면…. ‘나 돈 안 받아도 이것 해보고 싶다’에 가장 가까운 선택들을 해왔어. 언론사에서 인턴 기자를 할 때도, 컨설팅에서 인턴을 한 후 입사해서 일 할 때도. 


 직접적인 계기는 컨설팅 하면서 주로 맡았던 프로젝트들 때문이었는데, 대기업 신사업 전략 프로젝트나 사모펀드들의 기업 실사 프로젝트를 많이 맡았었거든. 이 두 가지 유형의 업무 성격(금융과 신사업의 조합)을 가지고 있는 곳이 VC라고 생각해서 이 쪽으로 오게 되었지. 


 조금 다른 이야기로는, 내 주변에 창업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 스타트업을 직접 하는 친구들, 선후배들을 보다 보니 ‘저 언저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나도 만들자’, ‘만들어진 곳을 가자’, ‘그 언저리로 가자’로 구분을 해본다면… 직접 만들기는 아직 잘 모르겠더라. 뭘 할지 명확하지는 않은데 일단 내가 직접 창업 했다가는 잘 할 것 같지도 않았고, 이미 만들어진 스타트업 초기에 합류하는 것도 결국 비슷한 이유로 어렵다고 생각했거든.


 

 형은 VC에 발을 들이기 전에 원했던 것을 얻고 계세요?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일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오늘은 무슨 재밌는 일이 일어날까’라는 심정으로 하루를 시작해. 모든 스케쥴이 나의 의지로 움직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내가 직접 결정하니까.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 아주 큰 유형의 사람인 거야 나는. 

그리고 앞에 말했듯 내가 한 행동에 대한 결과들이 나에게 바로 돌아오는 것도 마음에 들고. 나라는 퍼즐과 참 잘 맞는 일이라 생각해.


 

 일을 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많이 느끼시나요? 


 보람은 아무래도… 매 순간 많이 온다고 느끼는데.

 

 내 일의 대부분은 ‘거절하기’와 ‘도움 주기’야. ‘죄송하지만 투자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다른 VC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제가 이 일을 성공 시키는 데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알아요’...


 이렇게 하루하루 일하다 보면 중간 중간 ‘그 때 그 조언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저희 팀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피드백이 들어올 때가 있어. 이런 말 한마디에 난 이 직업을 선택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해. 

‘투자 해줘서 고맙습니다’는 어느 VC든 들을 수 있는 말이야. 하지만 내가 그걸 넘어서 스타트업들을 도와줄 수 있었고,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걸 인정 받았을 때 느끼는 보람이 아주 크더라. 내 판단이 옳았다고 스스로, 그리고 남으로부터 인정 받을 때.


 

 형이 VC 심사역으로서의 삶에 만족하시다 보니 너무 좋은 점만 드러난 것 같아요 ㅋㅋ VC에서 종사하는 것의 단점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지! 


 일단 금전적인 부분. 많고 적고의 이슈라기 보다는 불확실성의 이슈가 더 있을 것 같아. 기본적으로 받는 부분과 인센티브 (투자 성과에 따른)이 있는데, 후자의 임팩트가 더 크거든. 대기업이나 컨설팅에서 일할 때보다는 이 기본급 부분이 너의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어. 물론 투자 성과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다음 커리어 패스라는 것이 딱히 없지. 주로 커리어의 마지막 단계가 VC인 경우들이 더 많거든. 물론 요즘에는 또 달라지고 있지만… VC 심사역의 유일하다시피 한 넥스트 커리어는 본인이 창업자가 되거나, VC를 하나 차리게 되는 거야ㅋㅋ



 VC 업계 취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형이 조언을 주실 수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어요? 


 이직을 고민하는 분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VC와 연결되는 고리를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어. 일단 VC의 수 자체가 적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직종도 아니기 때문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VC 채용 공고 본 적이 없을걸. 그리고 VC 회사마다 특성이 많이 다르니 그만큼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고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도 있고. 소개를 받는 것이 어렵다면 벤처투자협회와 같은 VC 관련 사이트에서 열심히 기회를 찾아 보는 수밖에 없어.



 음… 먼저 아직 대학생이라면 VC 혹은 스타트업에서 직접 인턴을 꼭! 해보라 말해주고 싶어. VC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역할이야. 감독이 경기장에 뛰어들어 직접 공을 차는 순간 그 팀은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겠지? 감독과 코치로서의 역할을 이해 할 수 있으려면… 대학생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리스크도 적고 아직 기회도 많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라도 내부자가 되어 보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너무 내 방식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자신의 업이 무엇인가를 찾는 과정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방식을 취하면 좋을 것 같아.

 

 원칙은 ‘당장 돈을 받지 않아도 꼭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따르는 게 좋은 방법 아닐까 해. 더 중요한 것은, 그걸 찾기 위해 너무 오래, 깊게 고민하지 말고, 빨리 실행해서 겪어 보면 좋을 것 같아. ‘형, 저는 전략 기획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에요’와 같은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항상 ‘그러면 무슨일이 있어도 인턴을 해봐’야. 꼭 인턴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그에 대한 행동을 빨리 취하는 것이 고민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해.


지난해 한 IT매거진의 VC선호도 조사에 형의 이름이 나왔었다. 그렇다! 그는 소개팅 시장에서 인기 있는 남자였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형의 ‘실제’ 결혼식장에 가보니 수많은 대표님들이 오신 것 같아 보였다. 회사에서나 현실에서나 성공적으로 연애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한 형이 새삼 대단해보였다. 소개팅이란 참신한 비유로 VC업을 쉽게 설명해주고, 맛있는 식사까지 사준 형의 행복한 결혼을 기원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Disclaimer

Up Side의 인터뷰는 개인적 경험 및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특정 회사의 상황이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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