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초대, 그리고 널브러진 신발들
"아빠, 나 이번 주말에 친구들 불러서 파자마 파티 해도 돼?"
평온한 주말 오후, 소파에 누워있던 아들이 툭 던진 한마디에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파자마 파티라니.
남들에게는 흔한, 어쩌면 귀찮은 주말 행사일지 몰라도 우리 부자에겐 지난 6년간 금기어와도 같은 단어였다.
엄마의 빈자리가 혹여나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우리 집은 늘 굳게 닫힌 '비밀 요새'였으니까.
그랬던 녀석이 먼저 문을 열자고 했다. 그것은 단순한 놀이 제안이 아니었다.
세상 밖으로, 친구들 속으로 당당하게 문을 열겠다는 아이의 아주 용기 있는 '투박한 초대장'의 발송이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 식사를 한 적은 있지만 파자마 파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너무나 낯선 이 파티의 초대장을 승인하기 위해선, 아빠인 나에게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 친구들 오라고 해."
쿨한 척 대답했지만 내 머리속은 복잡한 수식으로 엉키기 시작했다.
'이불은 넉넉한가? 간식은 뭘 줘야 하지? 혹시 알레르기 있는 아이가 있다면? 층간소음 생기기 전에 아랫집에 양해를 구해야 하나?'
친구들이 오기로 한 날 아침, 우리는 비장했다.
평소엔 대충 넘어가던 거실 구석의 먼지까지 닦아 내고, 현관의 신발들도 각을 맞춰 정리했다.
단순히 집을 청소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 집에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부족함'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의 투박한 첫 초대가 완벽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묵묵히 걸레질을 했다.
청소를 마치고 깨끗해진 식탁에 앉아 인터폰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정적이 흐르는 거실에서 나는 아이에게 숨겨왔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후우... 아들, 아빠가 왜 이렇게 긴장되냐."
엄마 없는 집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운 탓일까, 아니면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되어서일까. 어른답지 못한 약한 모습을 보인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찰나, 아들이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나도 그래."
그 짧은 네 글자. 그리고 멋쩍은 미소.
그 순간, 막연했던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지고 가슴 뭉클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너도 떨리는구나. 너도 잘 보이고 싶고, 용기를 내고 있는 거구나.'
우리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넘어,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준비하는 '팀'이었다.
그 짧은 대답이 나에게는 가장 확실한 사랑의 증명처럼 느껴졌다.
딩동-
경쾌한 벨 소리와 함께 정적은 깨졌다.
우르르 몰려들어 온 사내 녀석들의 굵은 목소리, 땀 냄새,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순식간에 집안을 가득 채웠다.
"와! 안녕하세요!"
"야, 너네 집 신기한 거 많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우려처럼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았다.
그저 와이파이가 잘 터지고, 맛있는 치킨이 있으면 즐거운, 단순하고 명쾌한 녀석들이었다.
거실 한가운데서 친구들과 뒤엉켜 낄낄거리는 아들의 모습을 부엌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곳엔 엄마를 잃은 아이가 아니라, 그저 친구들과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16살 소년이 있었다. 그 평범한 웃음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코끝이 시큰해졌다.
현관을 바라보았다.
평소 아들과 나의 신발만 있었던, 깔끔하지만 빈 공간 사이로 정적이 흘렀던 현관은 오늘만큼은 아무렇게 벗어 둔 신발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 같으면 직접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질서한 현관이 나에겐 눈물겹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 보기 좋았다.
조용하고 정돈되어 있던 우리 집이 시끄럽고 무질서한 생명력으로 가득 찬 순간.
이 소란스러운 장면을 보기 위해 나는 지난 6년을 묵묵히 견뎌온 것이 아닐까.
'그래, 이거면 충분하다. 이게 내가 사는 이유다.'
누군가에게는 매 주말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일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우리 부자에게 이 난장판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학 난제를 마침내 해결한 듯한 벅찬 기쁨이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방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다. 나는 조용히 내 방 문을 닫아 주었다.
아이들의 완벽한 세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금, 나의 이 평범하고 투박한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기적 같은 순간일 수 있음을.
그 뻔한 진리를, 널브러진 신발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오늘 우리 집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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