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생리학
나는 평생 수학을 공부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답이 있고, 그 답을 찾는 공식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6년 전, 아내를 떠나보낸 장례식장에는 어떤 공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덩그러니 남은 집, 이제 고작 열 살인 아들은 소파 구석에 앉아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여덟 살 때 키우던 금붕어의 죽음에 세상을 다 잃은 듯 울어대던 아들은, 정작 엄마를 잃고서 울지 않았다.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이제 네가 아빠를 지켜야지", "남자는 씩씩해야지"라는 말이 아이의 눈물샘을 꽉 틀어막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계산이 서지 않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대로 두면 아들의 마음이 고장 난다!'
이건 미분 적분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아들 옆에 앉았다. 그리고 가장 원초적이고 비논리적인, 하지만 가장 확실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 슬픔은 똥 같은 거야."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똥이라니.
"똥이 마려운데 억지로 참으면 어떻게 되지?"
"음... 배가 아파. 그리고 변비 걸려."
"맞아. 슬픔도 똑같아. 눈물 나고 슬픈데 억지로 참으면, 그 마음속에서 썩어서 병이 되는 거야. 똥 마려우면 시원하게 싸야 하듯이, 슬플 땐 시원하게 울어서 내보내야 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들의 입꼬리가 살짝 떨리더니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은 눈물의 수문이 열리는 신호였다.
아들은 곧 내 품에 안겨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울음으로 빨리 뛰는 아들의 심장 박동이 내 가슴에 그대로 전해졌다.
따뜻했지만... 작고 약한 두려움과 슬픔이 섞여 있는, 참... 아픈 느낌이었다.
'미안해... 너에게서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서...'
나도 아들을 안고 같이 울었다.
우리는 그날 밤, 서로의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될 때까지 마음껏 '배설'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이에게는 눈물을 멈추게 하는 부모가 아니라, 시원하게 울게 해 주는 부모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그로부터 6년이 지났고, 우리는 꽤 행복해졌다.
그 꼬마는 이제 내 키를 훌쩍 넘긴 16살 중학생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돈도 없고, 엄마도 없는 부족한 가정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건강하게 슬퍼하는 법'을 아는 가족이라고.
수학 공식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똥 이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해답이었다.
만약 지금, 슬픔을 억지로 참고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참지 마세요. 병 됩니다."
"오늘은 마음껏 싸버리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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