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감각을 따라잡기 위한 아빠의 '사이즈 함수'풀이법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었다.
아침 등굣길, 아이에게 얇은 긴팔 티셔츠를 입히고 현관을 나서는데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지난가을까지 예쁘게 맞았던 옷인데, 아이의 손목뼈가 껑충 드러나 있었다.
바지 밑단도 복숭아뼈 위로 훌쩍 올라와 있었다.
"아... 언제 이렇게 컸지?"
아이의 성장은 '연속 함수'처럼 매일 조금씩 일어나는데, 아빠의 인식은 '계단 함수'처럼 뚝뚝 끊겨서 작동한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 아들이 콩나물처럼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계절에 맞는 옷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그날부터 나는 '키즈 패션'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기 위한 사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영역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세계가 아니었다.
1. 단위의 혼돈 (140 vs 145)
어른들의 옷은 단순하다. 95, 100, 105. 혹은 M, L, XL.
하지만 아이들의 옷 사이즈는 도무지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브랜드는 140, 150으로 나오고, 어떤 곳은 135, 145로 나왔다.
심지어 A 브랜드의 140은 넉넉한데, B 브랜드의 140은 쫄티가 되었다.
도대체 이 숫자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키'인가? '나이'인가? 아니면 디자이너의 기분인가?
2. 계절의 미분 (Differentiation)
어른 남자의 계절은 단순하다.
덥다(반팔) → 춥다(패딩). 끝.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달랐다.
봄, 늦봄, 초여름, 한여름, 초가을, 늦가을, 초겨울, 한겨울...
이 미세하게 쪼개진 계절마다 입혀야 할 옷의 두께와 소재가 다 달랐다.
이 복잡한 변수들을 조합해서 '오늘의 코디'를 완성해야 한다니.
엄마들의 섬세함은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맞먹는 것이었나.
나는 결국 '아빠식 알고리즘'을 가동하기로 했다.
주말 아침, 아이의 옷장 속에 있는 모든 옷을 꺼내 거실 바닥에 널었다.
마치 통계 데이터를 분석하듯 하나하나 살폈다.
- 1단계 (데이터 수집): 지금 아이에게 딱 맞거나 조금 작은 옷의 '브랜드 태그'를 확인한다.
- 2단계 (변수 통제): 이미 검증된 그 브랜드명을 인터넷에 검색한다. 새로운 브랜드를 모험하지 않는다.
- 3단계 (값 대입): 디자인은 보지 않는다. 같은 브랜드에서 '사이즈만 한 단계 큰 것'을 골라 담는다.
이것이 내가 찾아낸 실패 확률 0%의 생존 방식이었다.
"아빠가 사준 옷은 왜 다 비슷해?"
라고 아이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넘겼다.
아들아, 그게 네가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게 하려는 아빠의 최선이란다.
하지만 옷을 샀다고 끝이 아니었다.
엄마 없는 티를 내지 않으려 나는 옷보다 더 신경 써야 할 '디테일'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실내화: 매주 금요일이면 실내화를 가져오게 해서 하얗게 빨았다. 뒤꿈치가 꺾였는지, 작아지진 않았는지 매주 확인했다. 더러운 실내화는 게으름의 증거가 될까 봐 두려웠다.
- 운동화: 세탁이 어려운 운동화는 무조건 '검은색'으로 샀다. 때가 타도 티가 덜 나게 하려는, 나의 작고 치사한 전략이었다.
- 우산: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확인해 강수확률이 30%만 넘어도 가방에 우산을 찔러 넣었다. 비를 맞고 뛰어오는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러던 어느 쌀쌀한 아침이었다.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려고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옆에 서 있던 다른 아이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엄마의 눈길은 내 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아주 꼼꼼하게 '스캔(Scan)'하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뭐가 잘못됐나? 옷을 거꾸로 입혔나? 양말이 짝짝이인가?'
그날은 제법 찬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다행히 나는 일기예보를 보고 아이에게 도톰한 겉옷을 챙겨 입힌 상태였고, 내 아들을 훑어보던 그 엄마의 아이는 얇은 옷을 입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엄마의 시선이 내 아들의 따뜻한 점퍼 끝에 머무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묘한 감정이 스쳤다.
'아, 엄마들은 정말로 다른 아이의 복장을 저렇게까지 보는구나.'
내가 그동안 거실 바닥에 옷을 늘어놓고, 사이즈를 고민하고, 매일 날씨를 체크했던 그 강박적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하지만 내 아이가 매일 저런 날카로운 시선 속에 평가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함'.
그 두 감정이 교차하는 신호등 앞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4년'을 보냈다.
어떤 날은 색 배합이 엉망이었을 테고, 아빠가 입힌 옷은 늘 '2% 부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엄마의 시선을 마주했던 날처럼, 부족한 2%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뒤에서 100%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은 매일 '교복'을 입는다.
세상에 교복만큼 위대한 발명품이 또 있을까? 아침마다 옷 입히는 전쟁이 사라졌다.
게다가 이제는 사복도 자기가 원하는 브랜드와 스타일을 콕 집어 말해준다.
"아빠, 요즘은 이게 유행이야."
가끔 훌쩍 커버린 아들의 등판을 보며 생각한다.
사이즈표 하나 볼 줄 몰라 쩔쩔매던 그 시절의 나에게, 참 애썼다고.
비록 2% 부족했을지라도, 그 빈틈 사이로 사랑은 충분히 스며들었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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