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공간에 홀로 서서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났다.
나는 아이를 잠시 본가(부모님 댁)에 맡기기로 했다.
당시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학교 수업이 전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도 할머니 집에서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이에게 아빠가 엄마의 흔적을 지우는, 그 잔인하고도 슬픈 과정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텅 빈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적막이 나를 덮쳤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방문을 열었다.
그 방.
아내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리고 내가 그녀를 발견했던 그 방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시간은 며칠 전으로 되감기 되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내의 모습이 환영처럼 겹쳐 보였다.
다급하게 119를 부르며 울음과 탄식이 뒤섞인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던 나.
흉부를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하던 내 손끝에 남아있는 감각.
그때까지도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아내의 체온.
"제발... 제발..."
아무리 눌러도 돌아오지 않던 호흡.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떨었다.
이 공간은 더 이상 '안방'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처참한 이별이 각인된, 트라우마의 좌표였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야 했다.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이 방을 정리해야 한다!'
아내의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마다 느껴지는 떨림과 두려움, 후회와 슬픔이 파도처럼 번갈아가며 나의 가슴을 때렸다.
감당하기 힘들 땐 텅 빈 방바닥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다시 정리를 시작할 때면, 왠지 모르게 옆에서 아내가 함께 정리를 돕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보, 이건 여기다 두면 돼."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나는 자꾸만 허공을 돌아보았다.
먼저 아내의 옷장을 열었다. 택(Tag)도 떼지 않은 옷들과 가방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또 언제 산 거야? 입지도 않을 거면서 많이도 샀네..."
나는 허공에 대고 투덜거렸다. 마치 그녀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살이 빠지면 입으려 했을까... 아니면 우울한 마음을 쇼핑으로나마 달래려 했을까....'
화장대 서랍 깊은 곳에서는 비싼 브랜드의 헤어드라이기가 나왔다.
평소 검소하다 못해 궁상맞을 정도로 아끼던 사람이었다.
'이건... 너 자신을 위한 선물이었구나...'
나에게 사달라는 말도 못 하고, 혼자 큰맘 먹고 샀을 그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뒤늦게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정리는 계속되었다.
서랍 구석에서 그녀의 직업적 경력이 담긴 자격증 파일이 나왔다.
그리고 앨범 속에 끼워진, 나와 만나기 전 풋풋했던 어린 시절의 사진들.
특히, 낡은 다이어리를 발견했을 때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그녀가 좋아했던 시 구절, 힘들 때마다 꾹꾹 눌러쓴 다짐들, 삶에 대한 고뇌가 적혀 있었다.
'나는 아내를 정말 몰랐구나...'
십 년을 넘게 한 이불을 덮고 살았는데, 나는 그녀를 다 안다고 착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늘 그 자리에 있는 '상수(Constant)'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수많은 변수(Variable)를 품고 있던 복잡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그녀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늦은 후회인가.
정리를 마치고 밤이 깊어지면,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포털사이트에서 '사별', '배우자 사망' 같은 단어를 검색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카페(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모니터 불빛만이 켜진 캄캄한 방에서 나는 타인의 슬픔을 보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혹은 긴 투병 끝에 반쪽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 글들을 읽으며 나는 죽음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후 세계는 정말로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렇게 며칠 밤을 새우며 깨달은 것이 있다.
가족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지만, 배우자의 죽음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내 존재의 반이 뜯겨 나간 듯한 상실감.
하지만 동시에,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
동갑내기 동창이었기에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아내가 먼저 그곳으로 갔다고 생각하니, 죽음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질문'이 되었다.
나는 텅 빈 허공을 향해 자주 묻곤 했다.
"너 지금 어디 있어?"
"그곳은 어때? 여기보다 편안해?"
이제 죽음은 나에게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언젠가 나도 가서 확인해야 할, 그리고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될 '약속장소'처럼 느껴졌다.
아내의 물건이 모두 비워진 방.
가구와 흔적이 빠져나간 자리는 '마이너스(-)'공간이 되었지만,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건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먼저 간 너'를 향한, '남겨진 나'의 서글픈 안부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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