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과 서비스 음료수

타인의 시선이라는 오차범위

by 투박한 정리

집 안에서 아빠표 된장찌개와 볶음밥으로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들이 불쑥 제안을 했다.


"아빠, 나 집 앞에 새로 생긴 마라탕 가게 가보고 싶어."


평범한 가족에게는 "그래, 가자!"하고 슬리퍼를 끌고 나갈 아주 가벼운 외식이겠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내를 보낸 후, 아이와 단둘이 동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아직 내게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기 대문이다.

심호흡을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마라탕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그 짧은 대답을 내뱉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나는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이 우리 테이블을 흘끔거리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시선들이 '저 집은 엄마가 없나 봐'라고 확신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말 저녁, 엄마 없이 아빠와 아들 단둘이 식당에 온 모습에 대한 아주 가벼운 호기심이었을 확률이 높다.

'엄마는 약속이 있나?', '아빠가 주말에 애 보러 나왔나?' 정도의 시선들.


하지만 그 사소한 시선들조차 내게는 무거운 변수(Variabla)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옷차림이 혹시 후줄근해 보이지는 않을까, 내 표정이 너무 피곤해 보이지는 않을까.


'엄마 없는 티'를 내기 않기 위해 나는 짐짓 더 밝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더 많이 웃으며 과장되게 마라탕 재료를 골랐다.


우리가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식당 사장님이 다가오더니, 테이블 위에 아이스티 한 캔을 툭 올려놓으셨다.


"아빠랑 둘이 와서 밥 먹는 게 예뻐서 그래요. 이거 서비스예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아이는 음료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분명 감사한 호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콕콕 찔려왔다.

식당을 나오면서도 '서비스 음료수'를 주시던 사장님의 표정과 말투가 마음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정말 그냥 보기 좋아서 주신 걸까? 아니면, 아빠랑 단 둘이 밥 먹는 모습이 짠하고 안쓰러워서 주신 걸까?'


그것은 명백한 나의 '자격지심(Inferiority Complex)'이었다.

타인의 순수한 친절마저도 '동정'으로 해석해 버리는 꼬인 마음.

내가 우리 가족을 스스로 '결핍 있는 가족'으로 규정하고 있었기에,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렌즈에도 멋대로 색안경을 씌워버린 것이다.


사장님의 서비스는 그저 동네 장사를 하는 넉넉한 인심이었을 뿐인데, 내 안의 불안함이 그것을 동정이라는 오차범위 밖의 값으로 왜곡해 버렸다.

돌이켜보면, 나를 가장 움츠러들게 했던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시선'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훌쩍 자랐고 나 역시 꽤 단단한 싱글대디가 되었다.


이제 나는 그날의 마라탕 가게 사장님이 주셨던 아이스티의 의미를 더 이상 꼬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는 둘이서 어느 식당이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주말이면 단둘이 고깃집에 마주 앉아 찌개를 시켜 놓고 수다를 떨고, 방학이 되면 훌쩍 둘만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몇 분이세요?"라는 식당 주인의 물음에, 나는 이제 아무런 방어기제 없이 아주 경쾌하게 대답하다.

"두 명이요. 가장 완벽한 두 명."


타인의 시선을 더 이상 우리 가족은 행복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애쓰는 불쌍한 부자(父子)가 아니라, 서로의 입맛을 가장 잘 아는 훌륭한 밥 동무이자 완벽한 여행 파트너니까.

이제는 서비스 음료수가 없어도, 우리 둘이 마주 앉은 이 식탁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풍성하고 달콤하다.

서비스 음료수가 없어도, 우리의 식탁은 그 어느 곳 보다 풍성하고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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