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은 영양분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
"내가 좀 더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 유회승 부자(父子), <아빠가 아들에게> 가사 중 -
몇 해 전, 음악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가족 특집에서 가수 유회승과 그의 아버지가 함께 부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양희은의 원곡 '엄마가 딸에게'를 아빠와 아들의 시점으로 개사해 부른 무대였다.
무대 위의 아버지는 전문 가수가 아니었기에 호흡도 음정도 투박했다.
하지만 그가 떨리는 진심을 담아 저 가사를 내뱉었을 때, 객석의 관객들도 진행자도 나도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눈물을 쏟아 냈다.
그 투박한 고백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노래가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몰래 품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유독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마음의 기본값(Default)으로 장착하고 사는 것 같다.
남들처럼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못해서, 더 비싸고 맛있는 것을 사주지 못해서, 유행하는 장난감을 선뜻 쥐여주지 못해서 늘 미안해한다.
아들이 잠든 머리맡에 앉아 낮에 화냈던 일을 후회하며 "미안해"라고 속삭이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겪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아니, 나의 미안함은 보통의 부모들보다 더 깊고 무거운 심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 때문에 이 작은 아이가 엄마를 잃었다.'
누구에게도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그 서늘한 문장은 매일 밤 내 목을 조여 오는 거대한 죄책감이었다.
흔히들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애가 참 일찍 철이 들었네. 기특하기도 하지."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은 칭찬일지 모르나, 나에게 그 말은 가장 슬프고 잔인한 폭력처럼 들렸다.
엄마의 부재라는 거대한 결핍이 아이를 강제로 어른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뜻이니까.
나는 내 아들이 일찍 철드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내 아이만큼은 그 나이대 아이들처럼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도 쓰고, 밥 먹기 싫다고 투정도 부리며, 철저하게 자기 나이의 속도에 맞춰 자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빠로서의 나는 참 모순적이고 비겁한 존재였다.
마음속으로 그토록 뼈저리게 미안해하면서도, 정작 맑은 아이의 눈을 마주 보고 "아빠가 미안해"라고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나는 아주 그럴싸한 포장지를 하나 찾아냈다.
바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포장지였다.
미안하니까 더 부족함 없이 키워야 한다는 강박, 엄마 없는 티를 내지 않게 하려면 엇나가지 않도록 더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불안함.
그 모든 감정들은 결국 아이를 다그치고 통제하는 날카로운 잔소리가 되어 아이에게 날아갔다.
진짜 미안한 마음은 꽁꽁 숨겨둔 채, 나는 '너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 모순된 쳇바퀴를 돌며 아이와 수많은 밤을 부딪치고 나서야,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미안한 마음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될 수 있다.
부모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조금 더 인내하게 만들며, 아이를 향한 헌신을 이끌어내는 좋은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그 미안함이 양육의 '원인'이나 '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안함을 뿌리로 삼은 나무는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부모는 끊임없이 아이에게 보상하려다 지치고, 아이는 부모의 죄책감을 영악하게 무기로 삼거나 반대로 무거운 짐처럼 느끼며 자라게 된다.
양육의 뿌리는 오직 있는 그대로의 '사랑'과 단단한 '규칙'이어야지, 과거의 상실에 대한 '보상 심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속으로 덜 미안해하기로 했다.
아이가 떼를 쓰면 떼를 쓰는 대로 단호하게 훈육하고, 철없는 행동을 하면 그 나이다워서 다행이라고 웃어 넘기기로 했다.
아직도 가끔은 마음 한구석에서 찌르듯 미안함이 올라올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미안함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는 잔소리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영양분을 꼭꼭 씹어 삼키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오늘도 아빠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 엄청 사랑한다, 우리 아들."
미안함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낸 자리에는, 오직 단단한 두 남자의 오늘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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