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장례식장에 배운 인생학

아내를 보내고 비로소 '아빠'가 되었다.

by 투박한 정리

장례식장의 공기는 무거웠다.

향 냄새 사이로 섞여 드는 흐느낌, 그리고 나를 향해 꽂히는 수많은 소리와 시선들.


"어떻게 사람이 그래?"

"남편 잘못 만나서... 불쌍해서 어떡해."


등 뒤에서 들여오는 수군거림.

정말 이런 말들이 들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몸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처가 식구들의 오열과 원망 섞인 고함.

장례식에 온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지, '사과의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의 소리들.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화살촉을 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시선을 직시할 수 없었다.

나의 시선은 '아내의 영정사진', '엄마 잃은 열 살짜리 아들', '딸을 잃은 처가 식구들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태어나서 처음 느낀 두려움과 혼돈 속에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내적, 외적으로 들리는 그 모든 소음과 시선들의 한가운데 서 있는 '과녁'이었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변명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이 100% 사실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진실의 무게'가 그들의 비난보다 더 무거웠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오랫동안 살얼음판 위를 걸었다.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날 선 말들이 오고 갔고, 집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스'가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분노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감당하기 너무나 버거웠다.


그날도 그랬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같은 싸움 끝에, 나는 숨이 막혀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갔다.

그녀가 쏟아내는 절규를 등 뒤로 한 채, '그냥 좀 식히고 오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불과 3시간.

내가 화를 식히고, 그녀의 고통을 외면했던 그 짧은 시간이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돌아온 집 안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내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을 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나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녀가 그동안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그날 내가 왜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면 나의 억울함은 조금 풀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지금 내가 입을 열어 나를 변호하면, 결국 그것은 떠난 아내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자라서 엄마를 기억할 때, '아빠를 힘들게 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아내를 힘들게 했던 사람일 테니, 나는 기꺼이 '나쁜 남편'이 되기로 했다.

남겨진 가족들이 쏟아내야 할 슬픔과 분노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받아낼 대상이 필요하다면, 그 대상이 내가 되기로 했다.

그것이 그녀를 외면했던 나의 3시간에 대한 속죄이자, 떠난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앵무새처럼 그 말만 반복하고 고개를 숙였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슬픔인지, 억울함인지, 죄책감인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조문을 온 친구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힘내라"는 뻔한 위로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어설픈 변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상주 완장을 찬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거칠고 투박한 그 손의 온기.

그 손길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다 안다. 네가 지금 어떤 지옥을 버텨내고 있는지.'


그 순간 깨달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남들에게 보이는 체면이나,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무너져 내릴 때, 그 곁에서 묵묵히 손을 잡아 주는 것.

그것이 그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다짐했다.


그날 현관문을 닫고 나갔던 나의 등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맹세한다.

이제 세상에 홀로 남겨진 내 아이에게만큼은 절대 등을 돌리지 않겠다고.

어떤 순간에도 아이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면 내가 온몸으로 막아내는 방패가 되어주겠다고.


그렇게 나는, 아내를 보내고 비로소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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