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던 그래프를 다시 그리다.

양육자에서 인생의 선배로

by 투박한 정리

시간은 참으로 정직하게 흐른다.

내 품에 쏙 들어오던 꼬마 녀석은 이제 혼자서 밥을 챙겨 먹고, 자신의 일정을 관리하며, 아빠의 안색까지 살필 줄 아는 단단한 삶의 전우(戰友)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동시에 철저히 나의 사회적 그래프를 멈춰 세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졌을 때, 나는 사회적 성취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전업 아빠의 길을 택했다.

내 에너지의 유한함을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일 때문에 가족과 온전한 저녁 한 끼를 나누지 못하거나, 주말에만 간신히 얼굴을 마주하는 모순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당장의 생계를 외면할 수는 없기에, 우리 삶은 늘 일과 가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요구받는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가장 위태로웠던 그 순간, 내 삶의 무게 중심을 기꺼이 '일'에서 '아이의 오늘'로 옮기는 선택을 했다.

무너져가는 아이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내게 없었으므로.


물론 그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처음 4년은 가계 대출과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병행하며 간신히 생계의 방어선을 지켜냈다.

익숙하지 않은 집안일과 아이 양육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2년 전, 예기치 않은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위태롭게 버티던 가계가 크게 휘청거렸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집안에 갇혀 있다는 사회적 단절감'이 문자 그대로 내 목을 조여왔다.


역설적이게도 그 지독한 '결핍'은 나 자신을 아주 깊고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의 기반이 흔들리자, 역으로 내 존재의 근원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철학과 심리학, 영성, 종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파고들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함수(Function)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멈춰버린 삶의 좌표 위에서 나의 정체성을 묻고 또 물었다.

나를 알기 위한, 뼈아프고도 치열한 연산 과정이었다.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의미가 내 안에서 조금씩 변해갔다.

내 삶의 긴 시간 동안 이 말은 '네 주제를 파악하라'는 따끔한 충고로 이해되었고, 최근 2년 전까지는 '내 고유한 정체성을 찾으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삶의 단계마다 그 해석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삶의 기반이 흔들리던 치열한 고민의 끝에서, 나는 그 문장의 또 다른 깊이에 가닿게 되었다.


그것은 '무지(無知)의 지(知)'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뜻이었다.

내가 내일 당장의 현실조차 통제할 수 없는 유한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짜 나를 아는 것의 시작이었다.


내가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정체성이라는 관념의 동굴 속을 헤매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걸까.

나의 숨이 막혀오던 그때, 한 친구가 기꺼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말했다.


"일단 현실을 살아보자!"


친구는 자신의 사업 노하우와 자금까지 기꺼이 내어주며, 내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그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내 사전에서 찾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말 대신, 내가 다시 당당하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그 마음에 대한 가장 진솔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토록 고마운 친구를 내게 보내준 삶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도 완벽한 나의 정체성을 찾지는 못했다.

여전히 '나'라는 함수를 풀어가는 길 위에 서 있다.

내 삶이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의 그래프를 그릴지 나는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미래의 결과는 삶이 이끄는 물결에 기꺼이 맡기기로 했다.

미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기에, 오히려 당장 내 앞에 놓인 오늘이라는 현실에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집중하며 부딪힐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렇게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뿐이다.


아이도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지난 6년의 시간이 아이에게 '안정적인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보살핌의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부딪치고 땀 흘리는 '열정적인 아빠의 등'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아이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워야 할 청소년으로 아이가 자라났듯, 나의 역할 또한 밥을 차려주는 '양육자'에서 앞서 걸으며 길을 보여주는 '인생의 선배'로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이 치열한 모습은 내가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나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

숨죽이고 있던 나의 x축이 다시 시간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멈췄던 나의 그래프가 조심스레 우상향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3선택.jpg 단단한 현실의 땅을 딛고 서서, 멈췄던 내 삶의 우상향을 다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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